곽란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장중경은 변증치료했던 분입니다. 양허陽虚라면 온양温陽하였고 습성濕盛하면 행수行水했습니다.
다음385조를 봅시다. “오한, 맥미이부리, 리지, 망혈야.사역가인삼탕주지. 惡寒,脉微而復利,利止,亡血也. 四逆加人蔘湯主之.” 라고 했군요. “오한惡寒”은 밖에 표증表證이 있기 때문이고, 맥미脉微는 리양裏陽이 허쇠虚衰한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에 다시 하리下利가 있습니다. 이랬을 때 우리는 이런 하리를 소음하리少陰下利의 병기病機로 해석합니다. 양허陽虚하여 화가 토를 따뜻하게 하지 못한 탓에 소화를 시킬 수 없어 설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사를 하다하다 설사가 멎는데 그것은 양기가 회복되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진액津液이 손상되어 설사를 하려고 해도 내보낼 것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장 속의 모든 내용물이 남김없이 빠져나온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경은 이를 “망혈야亡血也”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망亡”은 상傷이고,“혈血”은 바로 음액陰液인데 음혈陰血이 곧 음액陰液입니다. 이는 바로 곽란하리藿亂下利로 음양陰陽이 다 상하게 된 것입니다. 중경은 사역가인삼탕四逆加人蔘湯을 썼는데, 사역탕으로는 회양구역回陽救逆하도록 하면서 여기에 인삼을 보태어 음액을 보충했습니다. 본초학에서는 요즘 인삼을 익기약益氣藥 혹은 보기약補氣藥 으로 가르치는데, 지금 쓰고 있는 인삼은 확실히 보기補氣가 위주이며 양음작용養陰作用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서양삼西洋蔘은 양음養陰이 위주이고, 익기작용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상한론傷寒論》 속에 쓰였던 인삼人蔘 곧 장중경이 썼던 인삼은 현재의 인삼도 아니고, 서양삼도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전에 말했던 산서 상당上黨지방에서 산출되었다가 지금은 이미 멸종된 오가과五加科의 상당인삼上黨人蔘입니다. 이 인삼의 작용은 양음생진養陰生津효과도 매우 좋았고, 보기補氣하는 효과도 있었지만 드러난 조열작용助熱作用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호가인삼탕白虎加人蔘湯에서 인삼人蔘을 쓴 것은 그것이 생진生津, 보액補液하는 약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385조에서 사역탕四逆湯에 인삼人蔘을 넣은 것도 사역탕으로는 보양補陽하면서 이 상당上黨의 오가과 인삼으로 보음補陰하여 음양을 모두 보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데 지금 상당 인삼이 멸종되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는 정황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서양삼을 쓸 수도 있습니다. 음상陰傷에는 서양삼을 씁니다. 서양삼과 인삼을 같이 쓸 수도 있는데 정황에 따라야 합니다. -역자생각; 인삼에 대한 학선생의 학설은 이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삼人蔘을 기기식氣幾息혈장탈血將脫한 증상에 쓴다고 한 산보명의방론 독삼탕조를 참조하세요. `
다음은 386조를 봅시다. 386조는 곽란병편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조문입니다. “곽란, 두통발열, 신동통, 열다욕음수자, 오령산주지, 한다불용수자, 리중환주지. 霍亂, 頭痛發熱,身疼痛,熱多欲飲水者,五苓散主之,寒多不用水者,理中丸主之。”라 했습니다. “곽란霍亂、두통頭痛、발열發熱、신동통身疼痛”은 표증表證입니다. 곽란이라고 먼저 이야기 했습니다. 곽란은 토리吐利가 주요한 특징이므로 여기에 다시 토리라는 증상을 써 놓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곽란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았으니 구토와 하리 증상이 있으면서 승강升降이 역란逆亂한 것이 주요한 특징인 것입니다. 어떻게 치료했을까요? “열다욕음수자熱多欲飲水者”는 곧 발열이 뚜렷하면서 구갈口渴이 난다는 말인데 이는 이 발열이 태양표증太陽表證으로 안에 수결水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지만 안에 수결水結이 있으므로어 진액으로 바뀌지 못하고 뒤에 이 수액이 위장胃膓으로 스며들어 적심으로써 구토와 하리를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곽란은 수결水結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 수결水結은 어디에 있나요? 어느 부위에 있든지 모두 위장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이런 토사는 어떤 방법으로 치료해야 될까요? 리소변실대변利小便實大便하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이로써 수사水邪를 밖으로 몰아내어 수사가 위장으로 스며들지 않게 되면 구토도 자연히 그칩니다. “열다熱多“는 표증의 발열이며, 갈욕음수渴欲飲水는 리裏에 수결水結이 있는 것이므로 오령산五苓散으로 외소내리外疏内利하면 표리表裏가 둘 다 풀리게 됩니다. 수사水邪가 없어지면 장도膓道에 수사水邪가 스며들지 못하므로 토리吐利가 천천히 낫게 됩니다.
두 번째 정황은 “한다불용수자, 리중환주지寒多不用水者,理中丸主之”인데 ,“한다寒多”는 표사表邪는 심하지 않으면서 리양裏陽이 많이 허하다는 말입니다. 이 증상이 발열發熱하면서 오한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오한이 심하면서 발열은 가볍다는 것은 표사表邪가 심하지는 않으면서 리양裏陽은 많이 허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런 토리는 장중경이 리중환을 썼던 것으로 보아 중양中陽이 모자라 운화運化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승강升降이 문란紊亂하여 한습寒濕이 아래로 쏟아져서 만들어진 곽란으로 봐야 합니다. 중양이 부족하면 당연히 물을 마시려고 하지 않고, 입도 마르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태음병편太陰病篇에서 이미 이야기했던 277조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 “자리불갈자, 속태음, 이기장유한고야自利不渴者,屬太陰,以其臟有寒故也”란 조문과 현재 말하고 있는 “한다불용수寒多不用水” 는 그 임상증상이 같습니다. 그 “자리불갈자自利不渴者,속태음屬太陰”이라고 했던 277조에서 쓴 치법은 “당온지當温之”로 “의복사역배宜服四逆辈”라 했는데, 현재 이 “한다불용수寒多不用水 ”에서 쓴 처방은 리중탕理中湯입니다. 실제상으로는 같은 치료법입니다. 리중탕으로 토사를 치료하였고, 곽란을 치료한 것입니다. 오령산 이 처방은 우리가 태양병편에서 만나 보았습니다. 리중탕 이 처방은 우리가 태음병편에서 이야기했습니다만 그 처방구성과 복약방법은 아직 한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곽란병편에서 나오는군요.
지금 교재 216쪽을 열고 리중환방理中丸方을 봅시다. 이중환 처방구성은 “인삼人蔘、건강乾薑、감초甘草、백출白术 각 석냥各三兩”입니다. “상사미上四味,도사搗篩,밀화위환여계자황허대. 蜜和爲丸如鷄子黄許大” 라 했습니다. 요즈음에는 이를 무게 6g의 밀환蜜丸으로 만드는데, 계란 노른 자위 크기입니다. “이비탕수홉, 화일환以沸湯數合,和一丸”합니다. 이 말은 이 약을 먹을 때 몇 홉의 끓인 물에 이 약을 으깨어 녹인 다음 먹으라는 말입니다. “온복지温服之”하라 했습니다. 이 약은 끓이지도, 달이지도, 졸이지도 않고 또 끓인 물로 넘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복용방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어서 다음을 보면 “일삼사日三四,야이복夜二服”이라 했습니다. 낮에 3、4환, 밤에 2환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복중미열腹中未熱,익지삼사환 益至三四丸”이라 했습니다. ‘만약 약을 먹은 뒤 뱃 속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없으면’ 이라고 했는데, 이 말 속에는 이 증후는 원래 뱃 속이 차고 아파서 구토와 하리가 뱃 속이 싸늘한 증상과 같이 나타나며, 또 배가 부듯하고 그득해야 하고, 뱃 속이 은은하고 끈끈하게 아픈데, 이런 복만腹滿、복통腹痛은 따뜻하게 하고 손으로 눌러주면 나아진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이렇게 5~6환을 먹습니다. 낮에 3、4환, 밤에 두 번 먹으면 5,6환이 아닌가요? 그런데 그래도 배가 아직 따뜻해 지지 않으면 다시 3、4환을 더 먹는다고 했으니 8환에서 10환이 되겠네요. 이 때의 밀환蜜丸크기와 오늘날 우리의 밀환은 크기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둘 다 노른 자 크기인데 하루에 8환에서 10환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1환씩 먹입니다. 며칠이 지나 환자기 찾아와 ‘선생님, 선생님이 처방한 리중환, 부자리중환을 먹었는데도 계속 설사가 나서 효과를 못 봤어요.’라고 한다면 그건 우리가 용량을 너무 적게 썼기 때문입니다. 장중경은 하루에 6환에서 10환까지 썼는데도 그래도 탕약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양을 복용했음에도 탕약보다 효과가 못하다고 했습니다. 리중탕은 어떻게 만들죠? “탕법湯法,이사물의냥수절以四物依兩數切” 위의 리중탕 처방에서 말했던 그대로 각각 석냥씩을 잘 썬 다음 “용수팔승用水八升,자취삼승煮取三升,거재去滓,온복일승温服一升”이라 했습니다. 탕제로 만들 때는 위의 각 석냥이 세 번 치료할 분량이므로 한 번 복용량이 한 냥씩 입니다. 전에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했던 제량의 환산법으로는 인삼15g, 건강15g, 감초15g, 백출15g입니다.
다음에는 리중탕의 가감加減을 보겠습니다.
“약제상축자若臍上筑者”라 했는데,“축筑”은 원래 악기樂器의 일종으로 이 악기는 오늘날 우리의 양금揚琴(타악기의 일종-서양에서 유래함)과 비슷하여 막대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의미를 넓혀 찧고, 두드리고, 때린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제상축臍上筑”은 배꼽 위를 무엇인가로 두드리고 찧는 것 같이 느끼는 것인데 실제로는 배꼽 위의 계동悸動으로 배꼽 위가 뛰노는 그런 느낌입니다. 배꼽부위가 펄떡펄떡 뛰는 것을 보고 중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신기동야腎氣動也”라 했습니다. 여기서 “신腎”은 수水를 대표하는데, 신은 수를 맡아보죠? 《상한론傷寒論》 속에서는 때로 이 신腎이 신장腎臟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水의 하나의 대명사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신기동腎氣動”은 바로 수기水氣가 허虚한 틈을 타고 위로 치솟아 오르려는 현상이라고 본 것입니다. 중양中陽이 부족합니다. 비토脾土는 강물이 넘치는 것을 막는 둑으로 작용합니다. 중초비中焦脾의 비양脾陽은 수액을 운화하는 작용을 하고 또 하초는 수액대사의 중요한 장소입니다. 비脾는 수액水液 곧 수습水濕을 운화하는 작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초下焦의 수사水邪가 상충上衝하여 상역上逆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중초비토中焦脾土를 강물을 넘치지 않게 하는 큰 댐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바로 강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 중초 양허中焦陽虚로 하초수기下焦水氣가 양허한 틈을 타고위로 치솟아 오르는 이런 경향 때문에 배꼽 부위에서 펄떡거리는 느낌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양병편에서 이런 조문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발한후, 기인제하계자, 욕작분돈, 복령계지감초대조탕주지. 發汗後,其人臍下悸者,欲作奔豚,茯苓桂枝甘草大棗湯主之”라 했는데, 아직 기억날 것입니다. 현재 장중경이 제상계동臍上悸動을 중양中陽이 부족한 증후로 水氣가 허를 틈타 위로 치받는 임상증상이라고 했는데 이때 그는 어떻게 가감했을까요? “거출 가계넉냥去术加桂四兩” 이라 했습니다. 백출을 빼고 계지를 넣어 한편으로는 온보심양温補心陽하면서 한 편으로는 강역평충降逆平衝했습니다. 당연히 여기에서는 강역평충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금방 말했던 태양병편의 그 령계조감탕苓桂棗甘湯證과 비교해 봅시다. 령계조감탕증苓桂棗甘湯證은 심양허心陽虚로 하초수기下焦水氣가 허를 틈타 위로 치솟아올라 제하계동臍下悸動이 나타날 때 썼는데 왜 령계출감탕苓桂术甘湯을 쓰지는 않았을까요? 그는 제하계臍下悸가 있을 때는 백출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백출을 뺀 것입니다. 그래서 령계출감탕 처방에서 백출을 빼고 대추를 넣어 건비健脾했습니다. 대추에는 보비補脾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토를 보하여 수를 눌러 주는데, 토가 수를 이깁니다. 건비健脾하여 보토補土함으로써 제수制水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배우는 이 조문의 가감加減에서 제상계동臍上悸動이 나타나는 것도 수기가 상충하는 증상의 하나임으로 중경은 이 경우도 백출을 빼고 계桂를 넣어 강역평충降逆平衝하였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제하계臍下悸든 제상계臍上悸든 장중경은 모두 백출을 쓰지 않았다고 봅니다. 후세의가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해석한 것이 있다고 전에 내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백출은 보기補氣하는 약이라기운의 흐름을 뭉쳐서 더디게 하는 작용이 있으므로 복부를 더욱 창만脹滿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이 그렇게 딱 들어맞는 것 같지는 않은데, 백출은 건비健脾하며 조습燥濕하는 약이지 않습니까? 또 다른 해석은 백출이 승양升陽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상계동이든지 제하계동이든지 수기가 허한 틈을 타서 위로 치솟을 때 백출에 승양하는 작용이 있어 쉽게 기를 상충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도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은데 내가 보기엔 백출은 어쨋든 건비조습健脾燥濕하므로 이 비위라는 둑을 튼튼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현재까지 중경이 제상계臍上悸、제하계臍下悸에 백출을 쓰지 않은 이유에 대한 해석으로 우리는 아직까지 여러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도 여러분들이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 할 과제 입니다. 왜 그럴 때 백출을 쓰지 않았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가 백출을 쓰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전의 학자들이 내놓은 해석이 있지만 이런 해석들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한론傷寒論》이 세상에 나온 뒤로 한의학의 임상의학으로서의 기초가 다져졌고,외감병 치료의 기초도 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한론 속에서 온열병温熱病의 변증과 치료 방법이 부족하였고, 그럼으로써 명明,청清의 많은 의가들이 온병학파温病學派를 창립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사실 상한론에는 숱한 문제들이있지만 우리는 오늘에 이르러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습니다. 이것들도 우리가 한의학을 한걸음 더 나가도록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백출을 이런 상황 아래서 왜 쓰지 않았는지, 쓴다면 어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올런지 이런 문제들을 우리는 아직 분명하게 연구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 또한 여러분들에게 연구할 공간으로 남겨드립니다.
“토다자吐多者,거출 가생강去术加生薑” 이라 했습니다. 토하는 것도 위기胃氣가 상역하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이 증상에도 백출을 쓰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욱 어떤 사람들은 백출이 승양升陽하는 작용이 있
기 때문에 수기水氣가 상역하든지, 위기가 상역하든지 간에 모든 기가 상역하는 증상에는 백출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설명들은 사실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생강을
넣은 것은 당연히 화위강역和胃降逆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다자환용출下多者還用术” 이라 했습니다. 비허기함脾虚氣陷한 경우에는 백출을 그대로 쓰는 군요 . 백출은 하리下利를 잘 치료합니다.
“계자悸者,가복령 두냥加茯苓二兩” 이 때의 “계悸”는 양허陽虚하여 수기水氣가 머물러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수기가 심心을 업수이 여겨 심황심도心慌心跳가 나타나는 것이므로 복령茯苓을 넣어 강심행수强心行水、강심리수强心利水합니다.
“갈욕득수자渴欲得水者,가출加术,족전성넉냥반足前成四兩半” 갈증이 나면 백출의 량을 넉 냥 반으로 늘리는데 그것은 백출이 건비健脾하므로 진액津液을 날라 퍼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중통자腹中痛者,가인삼加人蔘,족전성넉냥반足前成四兩半” 이 경우는 중경이 배가 아픈 환자에게는 늘 백작약을 쓰던 관례와는 다른데 우리 교재에서는 이 복중통은 기허氣虚하기 때문이므로 마땅히 인삼의 용량을 늘려 중기中氣를 보해야 한다고 했으니 참고만 하도록 하세요. 사실 중경이 인삼을 쓴 목적은 보기補氣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진補津하려고 한 것입니다.
“한자가건강寒者加乾薑,족전성넉냥반足前成四兩半” 이것은 온중산한温中散寒한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만자腹滿者,거출去术,가부자일매加附子一枚” 이는 마치 백출이 보기補氣하여 기운의 흐름을 옹체雍滯함으로써 복만腹滿을 일으키기 쉽다고 보아서 이를 겁내어 백출을 뺀 것처럼 보입니다. 부자를 넣은 것은 매운 맛으로 양기를 길러서 한기를 흩고 음기를 녹이려고 한 것인데 여러분들은 이런 상황에서 부자를 넣을 때 생부자生附子를 가 좋을까요? 아니면 포부자炮附子가 좋을까요? 포부자炮附子를 넣는 것이 맞습니다. 부자이중탕附子理中湯이 여기에서 나오는데 리중理中에 부자를 넣은 것이 실제로 부자이중탕附子理中湯이며, 그 부지리중탕의 출전이 바로 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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