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만산 상한론 강의

제59강 소음한화증-8

臥嘗 齋 2026. 4. 12. 01:05

우리 교재에서 나오는 소음한화증少陰寒化證의 일곱 번째 증후는하리활탈증下利滑脫證입니다. 하리활탈증은 원문306조와 307조에서 나옵니다. 306 조에서는 “소음병, 하리, 변농혈자, 도화탕주지少陰病, 下利,便膿血者,桃花湯主之 ”라 했고, 307조에서는 “소음병, 이삼일지사오일, 복통, 소변불리, 하리부지, 변농혈자, 도화탕주지. 少陰病,二三日至四五日,腹痛,小便不利,下利不止,便膿血者,桃花湯主之”라 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조문에서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문제일까요? 여기에서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신기허腎氣虚로 문이 꽉 닫히지 않아 하리활탈下利滑脫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비脾의 기氣가 허虚하고 비脾의 양陽이 허虚하여 피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굳게 지킬 수 없어 대변농혈大便膿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화탕 적응증의 가장 두드러진 두 개의 증상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신사이변腎司二便이라 합니다. 대변과 소변을 의식적으로 조절하여 나와야 할 때면  나오게 하고, 참아야 할 때는 참을 수 있는 것은 신과 관련된 하나의 생리현상으로 신장腎臟기운이 가득해야 문을 여닫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신기가 허약하면 문을 닫아야 할 때 제대로 닫을 수 없어 하리활탈下利滑脫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리활탈은 어떤 증상인가요? 그것은 환자가 자기의 대변을 조절하지 못하고 심지어 대변이 항문 밖으로 줄줄 새 전혀 막을 수 없는 것을 하리활탈이라 합니다 . 이 증상과 어떤 증상이 서로 반대되나요? 그것은 리급후중裏急後重입니다. 리급후중은 변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참을 수가 없어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반드시 대변을 보러가야 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리급裏急입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이것은 열熱이 있다는 말입니다. 화火의 성질은 급하여 좍좍 쏟아 내리므로 리급裏急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앉아 대변을 시원하게 보려고 하면 개운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가 무지룩하지만 대변이 보이지 않으므로 주먹을 불끈 쥐고 숨을 참으면서 힘을 주어도 힘들기만 하고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변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던가요? 왜 화장실 변기에 앉으니 안 나올까요? 한의학 임상에서는 이를 정좌노책, 해불출래靜坐努責,解不出来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 변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습사濕邪가 있기 때문입니다. 습사는 음사陰邪로 무겁고 걸죽하며 끈끈하여 눌어 붙습니다. 그래서 실상 변을 보려고 하면 아래가 무겁고 잘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리급후중裏急後重은 습열濕熱이 왕성한 것을 나타내며, 하리활탈下利滑脫은 문이 잘 닫히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리활탈에는 절대로 리급裏急이나 후중後重이 없으니 이 점에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일분리급, 취유일분열.有一分裏急,就有一分熱”、“유일분후중, 취유일분습. 有一分後重,就有一分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리활탈은 열도 없고 습도 없이 관문불고關門不固한 것일 뿐이므로 절대로 리급후중이 없습니다. 우리 상한론 문제은행 속에는 도화탕 적응증을 묻는 문제도 있는데, 우리가 지금 배우는 증상이 도화탕 적응증입니다.  ‘도화탕 적응증에 있어서는 안 될 증상이 무엇인가?’하는 물음 아래 다섯 개의 선택조문을 늘어놓고 그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하는 문제입니다. 그 중 하나에 리급후중裏急後重이 있는데 리급후중이 있어서는 안되므로 이 조문을 골라랴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증후에 삽법澀法을 쓰지만 리급후중裏急後重증상이 있으면 삽법을 가볍게 써서는 안 됩니다. 삽법을 쓰는 것은 문을 닫아 걸어 도둑을 머물러 있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변 농혈大便膿血은 엄격히 말하자면 비脾의 양陽이 허虚하고 비脾의  기氣가 허虚하여 기氣가 혈血을 잡아두지 못하고 양陽이 혈血을 잡지 못하여 일어난 대변출혈인데 이런 출혈은 점액粘液과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옛 사람들은 이를 농혈膿血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과 습열濕熱때문에 아래로 쏟아지는 하리下利, 곧 습열이 혈락血絡을 썩혀 부스러뜨린 그런 대변농혈大便膿血과는 대변의 성질과 모양으로 볼 때 같지가 않습니다. 이런 대변농혈은 어두운 빛으로 밝지 않으면서 약간 비릿한 냄새를 맡을 수 있으나 다른 고약한 냄새는 없지만, 습열濕熱로 인한 하리는 늘 농혈의 색갈이 비교적 맑고 밝으면서 냄새가 비교적 심하므로 이로써 구별해 낼 수 있습니다.  하리가 오래되면 음액이 소모되므로 소변으로 바뀔 원천이 부족하여 소변이 잘 나오지 않게 됩니다. 여기서 소변이 잘 안나온다는 말은 소변량이 적다는 말입니다. 하리활탈로 인해 수액水液이 모두 대장으로 빠져 나가므로 소변은 줄어들 수 밖에 없죠.  또 하나의 증상은 바로 복통腹痛입니다. 음한陰寒이 안에서 뭉친 곳이 배이므로 복통이 나타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의 증상은 마침 상한론 원문 306조 “소음병, 하리, 변농혈자, 도화탕주지. 少陰病,下利,便膿血者、桃花湯主之”와 307 조 “복통, 소변불리, 하리부지, 변농혈자. 도화탕주지. 腹痛,小便不利,下利不止,便膿血者,桃花湯主之”이 두 조문에서 묘사한 주증이 모두 개괄된 것으로, 이 네 개 증상은 바로 하리활탈下利滑脫、대변농혈大便膿血、소변불리小便不利、복중동통腹中疼痛입니다. 이것은 허虚하기만 하고 사기邪氣는 없는 증후입니다. 그러면 중경은 무슨 방법으로 치료했을까요? 삽법澀法 가운데서 온삽고탈법温澀固脫法을 썼는데 그 처방으로는 바로 도화탕桃花湯을 썼습니다. 도화탕은 적석지赤石脂、건강乾薑과 멥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적석지는 삽장고탈澀膓固脫하는 약입니다. 이것은 바로 도기陶器를 굽는 흙인  고령토高嶺土로  삽장澀膓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적석지赤石脂를 쓸 때 한 근을 반은 그냥 있는 그대로 쓰고, 반은 체로 쳐서 걸러 가는 가루로 만들어 둡니다. 먼저 그냥 쓰는 반을 솥에 넣고 달입니다. 나머지 체로 걸러낸 가루는 어떻게 할까요?  “상삼미, 이수칠승, 자미령숙도거재, 온복칠합, 납적석지말 방촌비.上三味,以水七升,煮米令熟都去滓,温服七合,内赤石脂末方寸匕”라 했으니 그것은 탕약에 이 적석지 가루를 타 먹으라는 말입니다.  학명으로는 고령토라하는 도토陶土 즉 도기를 만드는 흙인 적석지 가루를 직접 탕약에 타서 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장관으로 흘러들어가면 위장관의 점막에 보호막이 생기는데 이것을 피복작용被覆作用이라 합니다. 위장관의 조그만 궤양이나작은 출혈점의 표면을 덮어 위장관점막을 보호합니다. 그래서 장관의 이런 피가 배어나온 출혈 곧 삼혈渗血에 지혈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 외 또 흡착작용이 있어 장관의 과도한 수액을 흡착하고, 장관의 독소를 흡착하여 하리를 치료합니다. 이 하리활탈은 순허무사純虚無邪한 증후로 이런 증후에는 아주 좋은 차료효과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의사들은 그가 써 놓은 의안醫案 속에서 이 적석지가루를 쌀밥에 섞어 먹여 고질적인 하리활탈을 고쳤다고 써 놓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적석지는 먹기 힘들지만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니까요. 나는 이렇게 바로 적석지가루를 먹인 것은 상한론 중에서 도화탕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봅니다. 또 이 하리활탈下利滑脫의 원인 가운데에 비脾의양기陽氣가 허虚 하여 섭혈攝血이 안 된 까닭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중경은 건강과 갱미粳米이 두 가지 약을 같이 써서 온중고탈温中固脫하도록 하였습니다. 왜 이 처방을 도화탕이라 했을까요? 그것은 적석지를 도화석桃花石이라고도 블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 이 자리에 있는 학생들은 약재실에서 적석지를 본 적이 있을 텐데, 그 색갈이 복사꽃 색이었을 것입니다. 뿐 아니라 이를 넣어 달이면  그 달인 약도 복사꽃 색이 됩니다.
송 대宋代의 그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에도 상한론의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나는 태평성혜방에 수록된 상한론의 내용이 형남국荆南國의 국주國主인 고계충高繼衝의 집안에 간직했던 그 상한론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하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송 조宋朝로 통일된 뒤에도 작은 지방에서 할거하고 있던 무장세력인 이런 작은 제후국諸侯國들이 더러 있었는데 차차 송 조에 항복하게 되었거든요. 그 중 형남국은 양자강 유역의 매우 작은 나라로 마지막 임금이 고계충입니다. 고계충이 차지했던 땅은 양자강 유역으로 지나가던 배들을 모두 막고 세금을 걷는다는 이름으로 싣고 있던 금은 보석이나 돈과 쌀 등을 얼마 정도씩 뺏았는데, 특별히 그 속에는 어느 정도의 책도 있었습니다. 고계충이란 사람은 욕심도 많았지만 또 책을 좋아하여 책도 빼앗았던 것입니다. 그는 수상강도처럼 적지 않은 물건들을 뺏다가 마지막에는 송 조에 항복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형남국의 마지막 국주 고계충이라 합니다. 그는 송 나라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자기가 뺏은 금은보석, 돈, 쌀 등을 조금씩 송 황제에게 바치다가 마지막에는 빼앗은 상한론도 갖다 바쳤습니다. 그는 비록 황제에게 이 책을 바쳤지만 황제는 국가도서관에 갖다 놓아버리고 자기의 책상머리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국가도서관에 갖다 두기만 했고 아무도 이를 교정하여 펴내지는 않았습니다.  송 나라 국가교정의서국國家校正醫書局의 임억林億、손기孫奇、고보형高保衡등이 《상한론서傷寒論序》에서 무슨 문제를 설명했나요? 고계충이 일찌기 바쳤던 그 상한론은 교감校勘-여러 책을 비교하여 교정함-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은 송 조의 교정의서국에서 교감校勘한 상한론의 원본이 고계충의 이 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강의를 시작할 때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임억이 이미 분명하게 대대로 서고에 두어 둔 채로 누구도 교수校讎-교감校勘-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당 대唐代에 의관고시醫官考試를 치렀는데 당 대唐代에 많은 의사들이 상한론 시험을 쳐야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 때의 필사본이 하나 둘이 아니라 매우 매우 많았을 것이고, 고계충이 바친 이 책을 바쳤다는 것도 문무대신들도 다 알고 아래 위 모두가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임억으로서는 서문을 쓰면서 반드시 이 책이 교정되어 간행되지 않았다고 언급해 두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교간했을까요?  원본은 시험을 보였던 표준본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는 이런 말을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그는 다른 대신들이 고계충의 그 책은 어째서 사용하지 않았느냐고 물을까 봐 그 때 서고에 있었지만 착오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교감도 되어있지 않았으므로 내가 그 책을 원본으로 쓰지 않았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나는 송 조에서 쓰였던 원본이 무엇인지 강의할 때 고계충의 그 상한론이 원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태평성혜방에 수록된 상한론은 고계충의 그 책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본과에서 가르칠 때는 강의시간이 충분치 않아 여러분 들에게 이 고증 과정을 모두 강의할 수는 없습니다. 태평성혜방 속에 수록된 상한론 내용 중 도화탕에서는 그 처방 구성 중의 적석지가 도화석이라고 고쳐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태평성혜방에 수록된 상한론의 내용에서 방약의 약물의 용량은 모두 송 대의 용량으로 바꾸어 놓았고 한 대의 용량을 계승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점은 내가 당연히 여러분들에게 깨우쳐 주어야만 할 사항입니다.
이제 소음한화증의 주요증후를 모두 이야기했습니다.앞의 다섯 개 증후를 전형적인 소음한화증이라고 해야 마땅하며, 여섯 번째 증후는 한역극토증寒逆劇吐證으로 위한기역胃寒氣逆증후의 하나입니다. 그 즈상에 토리吐利、수족궐냉手足厥冷、번조욕사煩躁欲死가 있어 소음병과 비슷하지만 소음병이 아니라 소음류증입니다. 하리활탈증下利滑脫證의 경우는전형적인 소음한화증은 아니고 신기허腎氣虚,관문불고𨶹門不固와 중양中陽、중기부족中氣不足으로 섭혈攝血하지 못하여 일어난 하리활탈下利滑脫,대변농혈大便膿血입니다. 상한론 중에서 이를 소음병이라 했고 우리도 이를 소음의 류사증이라 볼 수 있어 소음한화증 속에 붙여 놓음으로써 진정한 소음한화증과 감별하기 편하도록 했습니다. 소음한화증의 주요 방증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나머지 약간의 조문은 비교적 내용이 흐트러져 있고 중요하지 않아 스스로 공부하면 됩니다. 308조에서 는 “소음, 하리, 변농혈자, 가자. 少陰,下利,便膿血者,可剌”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주가들의 견해가 갈려 어떤 사람은 열증熱證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한증寒證이라 합니다. 이는 침구针灸로 치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우리가 임상에서 하리下利 증후를 보았을 때 한증이든지 열증이든지 모두 침鍼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급성리질急性痢疾환자에게 침구법으로 족삼리나 제삼침臍三鍼을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배꼽 양 쪽의 천추혈天樞穴과 배꼽 아래의 기해氣海를 합하여 제삼침이라 하여 급성이질의 복통에 사용하는데, 설사와 복통을 그치게 하는데 매우 효과가 좋습니다. 여기에 족삼리를 배합하면 하리의 열증을 치료하는 처방이 됩니다. 그런데 비위허한脾胃虚寒한 증후에는 상한론의 시각으로 본다면 허한증은 구법을 많이 써야 하고  침법은 드물게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관원, 기해 같은 곳에 침을 찌른 뒤 온구温灸를 하는데 침 자루에 쑥 뜸을 끼워 불을 붙입니다. 족삼리에도 침을 놓아 허한증을 치료하기도 합니다. 상한론에서는 허한증에 구를 많이 하고 실열증에 침을 많이 놓기는 했지만 우리는 요즘 침자를 실열증에도 쓰고 허한증에도 써서 상한론 시대보다 쓰임새를 조금 더 넓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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