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만산 상한론 강의

제40강 양명열증-3

臥嘗 齋 2026. 4. 10. 00:33

우리 이제 원문을 봅시다. 먼저 태양병편의 제26조를 보려고 하니 교재 49쪽을 펴세요. “복계지탕, 대한출후, 대번갈불해, 맥홍대자, 백호가인삼탕주지. 服桂枝湯,大汗出后,大煩渴不解,脉洪大者,白虎加人蔘湯主之。” 라고 했습니다. 이 속에 대한출大汗出,대번갈불해大煩渴不解,맥홍대脉洪大의 삼대三大가 있으니 이것은 백호가인삼탕의 적응증입니다. 이제 교재의 105쪽 원문170조를  펴세요. “상한, 맥부, 발열, 무한, 기표불해, 불가여백호탕. 傷寒,脉浮,發熱,無汗,其表不解,不可與白虎湯。”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백호탕과 백호가인삼탕의 사용금기로 표한表寒이 아직 풀리지 않았을 때는 백호탕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무한불가용백호 無汗不可用白虎”가 되는데, 그 다음에 “유한불가용마황 有汗不可用麻黄”이란 한 마디로 댓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백호탕의 사용금기증에서 왜 무한에 백호탕을 쓸 수 없다는 것일까요? 무한은 한사가 표부를 봉쇄한 것인데 너무 일찍 석고로 리裏의 열을 식혀버리면 표에 있던 한사가 쉽게 빙복冰伏하기 때문입니다. 빙복이란 말은 언다는 빙冰과 잠복潜伏의 복伏으로 이루어진 말로 쉽게 표에 있던 한사가 빙복하면 한사가 더욱 울폐鬱閉되어 양기가 더욱 안으로 가두어지게 되므로 병정이 복잡화되거나 혹은 악화됩니다. “유한불가용마황有汗不可用麻黄,무한불가용백호無汗不可用白虎”는 옛사람이 정리한 사용금기입니다. “갈욕음수, 무표증자, 백호가인섬탕주지 渴欲飲水,無表證者,白虎加人蔘湯主之。”는 갈욕음수渴欲飲水에 중점을 둔 말로 백호가인삼탕 적응증 중에 반드시 갈욕음수 증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래의 169조를 보면 “상한무대열傷寒無大熱”이라 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앞에서 해석한 대로 한출이 너무 많아서 기표肌表의 열이 증발함으로써 만져보아도 열이 높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구조갈口燥渴,심번心煩이 있어 리裏의 열이 왕성한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배미오한背微惡寒”은 열이 성하여 기운을 소모시켜 기가 고표固表를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또 땀이 나서 기주肌腠가 소송疏鬆해진 것을 나타내므로 백호가인삼탕으로 신한절열辛寒折熱겸  익기생진益氣生津 해야 합니다. 168조의 “상한약토, 약하후, 칠팔일불해, 열결재리, 표리구열 傷寒若吐、若下後,七八日不解,熱結在裏,表裏俱熱”은 곧 백호가인삼탕증으로 심하면 백호탕의 발열형태처럼 보입니다. 열결熱結이 안에 있으므로 이 열은 당연히 온 몸에 퍼져 안팎을 채우므로 표리가 다 같이 뜨겁게 됩니다.  “시시오풍時時惡風”은 한출로 기주肌腠가 소송疏鬆해져서 풍의 침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갈, 설상건조이번, 욕음수수승. 大渴,舌上乾燥而煩,欲飲水數升”은 첫째 진액손상으로, 안에서 부족한 것은 반드시 외부에서 찾기 마련이므로 물을 마셔 스스로 버티려고 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그렇지만 기운의 손상되어 기운이 진액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으로 이런 까닭에 백호가인삼탕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제222조 “약갈욕음수, 구건설조자, 백호가인삼탕주지. 若渴欲飲水,口乾舌燥者,白虎加人蔘湯  主之。”는 첫 글자로 “약若”을 썼는데 이는 어느 곳을 이어서 말한 것일까요? 그것은 방금 우리가 말한 치자시탕증 중의 제221조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교재 103쪽을 펴세요. 103쪽의 제221조에서 “…약하지, 즉위중공허, 객기동격, 심중오뇌, 설상태자, 치자시탕주지…若下之, 則胃中空虚, 客氣動膈, 心中懊憹, 舌上苔者, 栀子豉湯主之.”라 했는데 이는 양명경맥에 열이 있을 때 사하시키면 위 중이 비게 되므로 객기가 흉격을 상하게 하여 심중오뇌가 생기고 혀에 누런 태가 앉는데 치자시탕으로 치료한다고 한 것으로 열이 상초에 있는 경우를 말한 것입니다. 그 뒤 현재의 106쪽 제222조에서 " 약갈, 구건설조자, 백호가인삼탕주지. 若渴,口乾舌燥者,白虎加人蔘湯主之。”라고 했으므로 이것은 양명경열을  잘못 설사시킨 뒤 열이 중초로 들어 간 경우를 말한 것입니다. 이제 이 두 조문의 원문을 한데 놓고 보면 이것은 양명경열을 잘못 사하한 뒤 열이 중초로 들어가고 그 퍼진 열사가 가득하여 진액과 기운을 둘 다 손상함으로써 구갈음수口渴飲水,구건설조口乾,舌燥와 같은 증후가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호가인삼탕은 백호탕에 인삼 한 가지 약만 더하여 만들어진 처방입니다. 한 대에 쓰던 인삼은 내가 전에 이야기했듯이 상당지구의 오가과에 속했던 식물로 양음생진養陰生津하는 작용도 있으면서 익기益氣하는 작용도 있어 우리가 오늘날 쓰고 있는 서양삼西洋蔘과 동북인삼東北人蔘이 섞인 효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호가인삼탕을 이렇게 열이 많은데 썼지만 그 인삼이 열을 돕지 않고 익기생진益氣生津하였기 때문에 청열清熱하여 신한절열辛寒折熱하면서도 익기생진益氣生津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옛 인삼의 효과입니다. 매우 유감스러운 것은 이런 인삼이 지금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임상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여러분은 정황에 근거하여 기운의 손상이 뚜렷하면 현대의 인삼을 쓰고, 진액손상이 두드러지면 서양삼을 쓸 수 있습니다. 심지어 보기補氣  도 하고 싶고, 생진生津도 하고 싶을 때는 이 두 종류의 삼을 같이 써도 됩니다. 우리는 오늘날 융통성있게 대처해야 합니다.  
백호가인삼탕  처방은 우리 교재 제 50쪽 태양병편 50쪽에 있는데 여러분은 그 복용방법을 보면 됩니다. 그 밖에 백호탕은 상한론 중에서 여름철에  비교적 적합한 처방으로 입하立夏뒤 부터 입추立秋전 까지 쓰는데, 이때는 자연계의 기후가 매우 덥기 때문에 백호탕을 쓰더라도 중초의 양기를 상할까 겁내지 않아도 된다고 장중경은 주장합니다. 그리고 입추立秋 뒤 부터 입춘立春이전 까지 특히 겨울철 아주 추울 때 백호탕을 쓸 때는 추운 계절에 이렇게 찬 약제를 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중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여름에 수박을 먹을 때는 많이 먹거나 적게 먹거나 별 관계가 없어 배부르게 먹어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지만 겨울에 수박을 먹을 때는 두 조각만 먹어도 위가 아파지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는데 이는 이치가 매한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름에 백호가인삼탕을 쓸 때면 제량을 크게 해도 별 관계가 없지만 겨울에 쓸 때는 변증에 있어 정확해야 하고 용량도 너무 많으면 안됩니다.  
백호가인삼탕은 상한론의 조문 중에서 모두 “대번갈불해大煩渴不解”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이 처방이 매우 맵고 차가워서 대열증이 아니면 쉽게 쓸 수 없다고 느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마치 호랑이나 늑대같은 약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졸업한 뒤 일반적인 내과의 임상에서는 이 처방을 거의 쓰지 얺았습니다. 언젠가 내가 경험많으신 늙은 한의사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마주보고 있는 이 분이 환자에게 백호가인삼탕을 처방하면서 아울러 육미지황환과  합방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노선생님이 백호가인삼탕을 처방하는 것을 보고 환자가 반드시 사대 증상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나는 바로 환자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열이 납니까?" 환자가 얼떨떨한 얼굴로 열이 안 난다고 했습니다. "땀은 나나요?" "안 나는데요." 맥도 홍대하지 않았습니다. "목이 마릅니까?" "제가 당뇨병이라 목은 좀 마릅니다." 환자가 선생의 처방을 들고 간 뒤 그 노의사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사대四大에서 삼대三大가 빠졌는데 어째서 백호탕을 쓰셨나요?" 노의사가 어리둥절하면서 "사대에서 삼대가 빠졌다는 것이 무슨 말이지?" 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백호가인삼탕을 쓸 때는 사대증상이 모두 갖추어져야 쓰지 않습니까? 그 환자는 구갈口渴밖에 없는데 선생님은 어째서 그에게 쓰셨나요?" 노사가 말했습니다, "내가 그 처방을 쓴 이유는 그 환자가 위열胃熱이 있으면서 진액과 기운이 둘 다 손상된 증상이 있었기 때문일세. 그는 힘이 없어 그렇게 많은 물을 마실 수 없네. 나는 병기를 파악하고 약을 썼기 때문에 그의 사대증상이 갖추어졌는가를 보고 쓴 것이 아닐세." 나는 노사께서 이 사람에게 쓴 이 처방이 환자가 매 번 올 때 마다  거의 바뀌지 않았는데 2-3개월을 먹은 뒤 이 환자가 먹어왔던 다른 혈당강하제를 모두 끊고도 혈당이 정상으로 변하고 뇨당도 음성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한 수 배웠습니다." "무엇을 배웠는가?" "백호가인삼탕과 육미지황환으로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노사께서 매우 엄숙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자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네." 나는 그 당시 마음 속으로 이 선생님이 정말  보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일본의 보도를 보니 당뇨병 동물모델에 백호가인삼탕을 원래 약물구성대로 투여하여  매우 우수한 혈당강하효과를 얻었다고 하기에 이 보도를 선생님에게 보여드렸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더라도 선생님이 백호가인삼탕으로 당뇨병을 치료하시지 않았습니까. 보세요. 일본에서도 둥물실험을 해서 백호가인삼탕이 당뇨를 치료할 수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나는 그렇게 자네에게 가르치지 않았네." 하셨습니다. 나는 그때에도 선생님이 매우 새로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인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치료 병례가 있고, 나에게는 여기에 다른 사람이 동물 실험한 보고가 있는데 왜 백호가인삼탕이 당뇨병을 치료하지 못한다고 하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며칠이 지나 내가 환자를 들어오라고 번호를 불렀는데 번호를 부르고 나서 내 왼쪽 뒤편에 문이 있었기 때문에 듣기에 들어오는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돌아보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삐쩍마른 여자 환자를 두 사람이 부축해서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내가 놀란 것은 이 환자의 두 눈이 푹 기어들어가고 광대뼈가 툭 튀어 나왔으며 입술은 얇은데 두 줄의 하얀 치아가 드러나 있었고, 두 볼에 살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겁이 났던 것은 얼굴이 창백하면 우리가 병이 위중하다는 것을 알텐데 그녀의 얼굴은 창백한 것이 아니라 고동색이어서 였습니다. 나는 그때 우리 해부실습실의  시체가 걸어 나온 것처럼 느꼈습니다.  나는 그때 모골이 송연하여 벌떡 일어났지만 다시 앉았습니다. 나는 의사인데 왜 이렇게 참착하지 못할까라고 생각하고 다시 앉았고 그녀도 내 곁에 앉았습니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입술도 얇은데다 모두 갈라져 있더군요. "목이 말라요." 첫 마디가 그랬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커다란 보온병을 들고 있었는데 우리 이 보온병보다 더 커서 나는 그 보다 큰 보온병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그녀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자 꿀떡꿀떡 다 마셨는데 내가 두번째 질문을 하기도 전이었습니다. 보세요. 목이 마르다고 하니 주소는 갈증입니다. 내 그때의 지식으로는 30년 전이었으니까요.  곧바로 당뇨병을 생각했습니다. "뇨당이 양성인가요? 음성인가요. 혈당은 어때요? " " 나는 당뇨가 아니예요. 보세요. 내가 검사를 받아 보았는데 나는 당뇨병이 아니래요." "그러면 내분비검사를 해 봤나요? "뇨붕증 尿崩證도 아니예요. 지금 막 반제의원反帝醫院에서 오는 길인데요." 반제의원이 어느병원일까요? 이 이름은 문화대혁명 중에 협화의원協和醫院을 부르던 이름입니다. 협화라는 이름이 미국과의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협화의원을 반제의원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막 반제의원에서 왔고 뇨붕증은 아니라고 말할 정도니 의식은 매우 또렸했습니다.  "그러면 무슨 병이죠?" "반제의원에서 신경성다뇨증神經性多尿證이기 때문에 물을 안 마시면 된다고 해요." 말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습니다. 혀를 보니 빨갛게 반짝거리고 태가 없어 혀가 반짝반짝했습니다. "이 병이 어쩌다가 생기게 됐나요?" "아이. 말도 마세요. 작년에 우리 그 지방에 있던 기관의 간부들을 모두 한 곳에 보내 제방을 쌓고 저수지를 수리했는데 온 산과 들이 사람으로 가득했어요. 나는 여자간부였는데 평상시에 물 을 많이 마시는 편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게 우리가 그 곳에 도착한 뒤 가지고 간 물이 다 떨어지고 후방의 보급도 없었어요. 그 곳에는 근본적으로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어 갈증을 참을 수 밖에 없었는데 거기다가 소변이 보고 싶어졌는데도 참을 수 밖에 없었어요. 사방천지에 사람인데 화장실이 없어 남자들은 돌아서서 일을 보면 그만이지만 나는 실제로 부끄러워 갈증도 참고, 소변도 참아야 했어요. 집에 돌아오자 먼저 물을 마셔야 할 지, 소변을 먼저 보아야 할 지 몰라 물 한 잔을 들고 화장실로 갔거든요. 위로는 마시면서 아래로는 소변을 보았어요. 한 편으로는 마시면서 한 편으로는 소변을 보면서 그 곳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상황 아래서 이 사람이 어떤 상황이었을 지를 뚜렷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밤에 한 숨도 못자고 마시면서 소변 보면서 지냈고 그 때로 부터 밥도 못 먹고 물만 마시며 살아와 몸무게가 82kg에서 나를 찾아 왔을 때는 35kg으로 줄어 있었으니 어느 정도 말랐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심한 병에 나는 백호가인삼탕을 쓰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물실험에서 보면 백호가인삼탕이 혈당을 동물의 혈당을 내린다고 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혈당이 원래 정상인데 이 약을 먹고 나서 혈당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이 때 내가 맞은 편에 계신 노의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맞은 편의 선생님은 일찌감치 내가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셨는데 선생님은 역시 선생님이라 그는 벌써 거기에 약 처방을 써 내려갔습니다. 다 쓴 처방을 보니 백호가인삼탕에 상표초, 익지인을 더하고 여기에 다시 맥문동, 오미자를 더한 처방이었습니다. 이 처방은 바로 백호가인삼탕, 생맥음에 상표초, 익지인 두 가지의 축천환縮泉丸재료를 넣은 것이었습니다. (축천환은 오약, 익지인이 본 방으로 산약을 가하기도 하는데 상표초를 가한 경우도 있는 듯 함.) 내가 처방을 못 냈는데 선생님은 처방을 내렸습니다.  나는 당연히 매우 공경스로운 태도로 선생님의 처방을 환자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 내신 처방이니 이 처방을 드셔 보세요." 환자가 아랫층으로내려 간 뒤 앞에 계신 그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 " 선생님 동물실험에서 백호가인삼탕이 혈당을 내릴 수 있다고 했는데 이 환자가 먹고 나서 이렇게 여윈 환자가 혈당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눈을 치떠 나를 보면서 " 자네는 한의사인가? 양의사인가?" 이 때 나는 이 분의 말투에서 나를 마땅찮아 한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이을 용기가 안 났습니다. 나는 혼자 가만있지를 못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우리 약제실은 일층에 있었는데 환자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고, 보호자는 약을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환자 옆에 앉아 "환자분 주머니에 늘 사탕 몇개를 준비하셨다가 우리 약을 먹다가  혹시 불안하면서  가슴이 뛰고 식은 땀이 나면 사탕을 바로 드세요." "선생님. 나는 목이 마를 뿐이지 사탕은 원래 잘 안 먹어요." "아무리 그래도 몇 개쯤 준비해 놓으세요."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정말 몇 개의 과일 캔디를 사서 호주머니에 넣었는데 그 때는 과일 캔디 밖에 없었습니다. 칠일 뒤 환자가 다시 왔는데 이때도 두 사람이 같이 와 한쪽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날은 노선생님이 안 계셨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살고 있는 그 곳에서 대개 약을 두 마대麻袋 정도 먹었는데도 갈증을 참을 수 없었는데 지금 선생님들이 주신 약을 먹고 나서는 20분 동안이나 물을 참을 수 있으니 내게는 이게 많이 좋아진 거예요. " "효과가 있으면 계속 드셔 보세요." 나는 원 처방대로 베껴주면서 말했습니다. " 이 일주일 동안 불안하고 가슴이 뛰면서 식은 땀이 나고 손발이 떨리는 증상은 없던가요?" 그녀는 퍼뜩 그날에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해 내고 말했습니다. "없었어요. 한 번도 없었어요." 이 환자는 이렇게 북경에서 삼개월 동안 있으면서 기본상으로 이 처방 그대로 특별한 변화없이 썼는데, 중간에 간혹 감기가 걸렸을 때 내가 조금씩 처방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보호자도 가버리고, 이 환자의 안색도 점점 발그레하고 윤기가 돌고 혀에도 태가 약간 끼기 시작했으며 식사량도 차차 늘어났고 물도 갈수록 덜 마시게 되어 매우 기뻐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뒤에 그 노선생님이 복귀했을 때 나는 그 분에게 "그 환자는 당뇨병이 아니었는데도 백호가인삼탕으로 잘 치료되었습니다."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한 번도 백호가인삼탕이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 적이 없네. 내가 그 처방을 그 신경성다뇨증에 썼거나 당뇨병에 썼던 이유는 환자가 위열이 있으면서 진액과 기운이 다 손상된 병기病機를 보고 쓴 것일세!" 이때서야 나는선생님이 왜 그가 나에게 백호가인삼탕이 당뇨병을 고친다고 가르쳐 준 적이 없다고 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임상에서 처방을 쓸 때 반드시 병기를 파악하고 나서 한의학 변증논치의 사로思路 아래서 경방을 써야 한다는 것을 주의해야만 합니다.
자 이만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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