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만산 상한론 강의

제31강 결흉증-6

臥嘗 齋 2026. 4. 9. 18:57

이어서 137조에서 대결흉증大結胸證에서 병위病位가 아랫쪽에 치우친 경우의 임상증상을 보겠습니다. “태양병, 중발한이부하지, 부대변오륙일, 설상조이갈, 일포소소유조열, 종심하지소복경만이통불가근자, 대함흉탕주지. 太陽病,重發汗而復下之,不大便五六日,舌上燥而渴,日晡所小有潮熱,從心下至少腹硬滿而痛不可近者,大陷胸湯主之”입니다.“종심하지소복경만이통불가근 從心下至少腹硬滿而痛不可近”은 대결흉증에서 병위가 아랫쪽에 치우친 경우의 증상을 나타낸 것으로 이는 모든 복부에서 압통, 반도통, 근긴장이 보인다는 말로 실제로 미만성복막염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체징體微입니다. 장중경은 이를 매우 사실적으로 ”종심하지소복경만이통불가근 從心下至少腹硬滿而痛不可近”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실증은 누르는 것을 싫어하며 이런 환자는 특히 다른 사람이 배를 만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다른 사람이 가까이만 다가서도 바로 두 손으로 가리게 되는데, ‘딱딱하고 아파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은 누르는 것은 고사하고 다가가는 것 조차 무서워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실습병원에서는 자주 상소화도천공으로 인한 미만성 복막염彌漫性腹膜炎환자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환자들은 요즘에는 일반적으로 탈없이 하려고 약을 쓰지 않고 외과병동에 입원시켜서 수술로 구멍을 메웁니다. 환자가 입원하면 외과실습을 돌고 있는 학생들은 어느 병실에 복막염환자가 입원했는지 다 알게 되므로 학생들은 모두 이 미만성 복막염 환자에게 나타나는 압통, 반도통, 근긴장이 어떤 것인지 느껴보려고 저마다 환자의 배를 만져 봅니다. 만일 이 환자가 여섯 사람이 누워 있는 큰 병실에 입원하게 되면 환자는 문만 쳐다보다가 문여는 소리가 들리고 젊은 학생일 보이자마자 화들짝 놀라면서 외칩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가까이 오지 말라니 모두들 당신때문에 몰려왔는데? 이미 입원한 뒤에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뒤 의사가 검사를 못하게 할 수 있나요?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손을 배위로 가져가면 환자가 다급히 애원합니다. “선생님, 살살, 좀 살살해 주세요.” 느끼는 통증이 어떤지 보려고 꾹 누르면 환자가 고함을 지릅니다. “천천히 천천히 누르세요.” 손을 확 떼면 환자가 또 소리칩니다. 외과 학생이 다 보고 나서는 내과학생에게 병실에 위천공으로 복막염이 된 환자가 입원했으니 가서 압통, 반도통, 근긴장이 어떤 건지 보라고 말합니다. 내과 학생도 바로 찾아가 만져보기 때문에 환자는 문을 열리기만 깜짝놀라 식은 땀을 흘리게 됩니다. 이로 볼 때 중경이 “종심하도소복경만이통불가근 從心下到少腹硬滿而痛不可近”이라 한 것이 정말로 이런 환자를 직접 봤던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환자는 확실히 의사가 가까이 가기만 해도 놀라 “좀 멀리 떨어져 주세요! ”라고 하지만 사실 의사는 환자 본인을 보러 온 것이죠. 이것이 미만성 복막염의 체징입니다. 다만 무슨 증상과 함께 나타날 수 있나요? 앞에서 말한  “부대변오륙일, 설상조이갈, 일포소소유발열 不大便五六日,舌上燥而渴,日晡所小有潮热”로 이것은 양명부실증陽明腑實證의 특징입니다. “설상조이갈舌上燥而渴”은 양명조열陽明燥熱때문에 진액이 손상된 것인데, 양명조열이 안에서 왕성하므로 대변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일포소日晡所”의 일포日晡는 신시申時의 다른 말로, 신시는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까지 입니다. 일포소에서의 소所는 부정不定 지시대명사로 전후좌우前後左右라는 뜻이므로 일포소는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전후좌우 곧 신시 전후좌우라는 말이 됩니다. 이때는  양명경陽明經의 양기가 왕성하여 만일 양명에 열熱이 있어 조열燥熱한 상황이라면 정기와 사기의 다툼이 이 때 가장 치열합니다. 그래서 열의 세력이 뚜렷이 높게 나타나므로 매일 이때가 되면 열이 언제나 높아지는데 그것이 마치 바다나 호수의 밀물 썰물처럼 규칙적이라 “일포소발조열日晡所發潮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경우에  “일포소발조열日晡所發潮熱”의 열은 높을까요?높지 않습니다. 일포소소유조열日晡所小有潮熱이라 했으므로 여기에서의 양명부실증은 결코 심하지 않습니다. ”부대변오륙일, 설상조이갈, 일포소소유조열不大便五六日,舌上燥而渴,日晡所小有潮熱”이라 했으니 여기의 양명부실이 결코 심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다만 ”종심하지소복경만이통불가근從心下至少腹硬滿而痛不可近”한 이 대결흉증은 심하로 부터 소복에 이르기까지 병변범위가 넓고 임상증상이 심하여 비교적 심한 결흉증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결흉의 중증인데 이렇게 결흉증에 또 양명부실증상이 같이 나타났습니다. 이 때 승기탕承氣湯을 써야 될까요 아니면 함흉탕䧟胸湯을 써야 할까요? 당연히 대함흉탕大陷胸湯을 써야 하는데 왜냐하면 대함흉탕은 사열축수瀉熱逐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 열사를 장도膓道를 거쳐 배출되도록 하므로 양명의 리실열裏實熱을 내보내 양명을 맑게 하는 승기탕의 효과도 거둡니다. 그러나 승기탕은 그렇지 못하여 양명만을 청사清瀉할 수 있을 뿐 사열축수할 수는 없어 이 결흉중증結胸重證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 지금은 결흉증이 심하면서 급해서 대함흉탕으로 치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두 조문을 정리해 볼 때 어떤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결흉증結胸證은 대시호탕증大柴胡湯證과 서로 감별해야 하고,  또 승기탕을 쓸 수 있는 양명부실증陽明腑實證과도 서로 감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시호탕증과의 감별은 결흉증에서는 왕래한열이 없는 것인데, 또 어떤 사람은 결흉증에서 일포소조열이 없을 수 있다고도 하지만 결흉증이 양명부실증과 동반할 때는  일포소발조열日晡所發潮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만 양명부실증에서는 반도통과 근긴장이란 임상증상이 없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양명부실증에서는 요제통繞臍痛과 복만통腹滿痛이 있고, 복부에 압통이 있어 누르면 아프다고 느끼므로 그것이 실증實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반도통과 근긴장은 절대 없습니다. 양명부실증에서 병의 위치는 장도膓道 곧 소화도消化道에 있는데, 결흉증에서의 병의 위치는 복막腹膜,복강腹腔에 있으므로 이 두 증후는 분명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해남도海南島의 한 의사는 외과과장이었는데, 한의학을 배우던 중에 양한방 결합 방식으로 일부 급복증急腹證을 해결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한 소책자小册子에서 비痞、만滿、조燥、실實、견堅을 다 갖춘 것이 대승기탕의 적응증이라 한 것을 보고나서 , 그 뒤 임상에서 이런 임상증상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는 소화도 천공으로 일어난 복막염환자는 상하가 창만하여 통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느끼므로 비痞의 특징과 들어 맞고, 창만脹滿이 있으며, 만满하면 조燥가 뒤따라 대변이 늘 조결燥結하므로 조燥한 상황도 있으니, 이것이 실증이 분명하고 또 배도 굳어 딱딱하므로 이를 대승기탕증大承氣湯證으로 보고 대승기탕을 썼습니다. 그런데 병의 증세가 악화되고, 심하면 빠르게 감염중독성 쇼크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 뒤 그는 얼른 수술치료로 바꾸었는데 그가 외과과장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섯 사람을 치료했습니다. 대승기탕을 쓴 뒤 마지막에 모두 개복수술로 전환했지만 수술한 다섯 사람 중 두 사람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에 대해 한 편의 보고문을 썼는데 그것이 20년 전입니다. 그는 비痞、만滿、조燥、실實、견堅을 다 갖춘 것이 대승기탕의 적응증이라 한 것은 잘못된 것으로 그것은 대승기탕의 적응증이 아닐 뿐 아니라 대승기탕의 금기증이라 해야 된다는 내용의 그 보고문을  남방의 한 학술지에 보냈습니다. 그는 글 중에서  비痞、만滿、조燥、실實、견堅을 다 갖춘 것이 대승기탕의 적응증이라 한 분의 이름을 밝혔는데, 그 분은 우리 학교 교수님으로 당시 전국에서 매우 유명하셨던 분이라 이 학술지가  함부로 발표하지 못하고 이 보고문을 먼저 그 교수님께 보이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때는 이 분이 일본에 가 계실 때 였습니다. 사모님께서 학술지에서 이 보고문과 같이 부친 편지를 보시고는 교수님을 비평하는 글인지라 약간 긴장하셔서 교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해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학생들은 이 편지를 내게 가져와 보였는데, 내가 이건 그 교수님의 잘못이 아니라 그 외과의사가 상한론을 확실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대함흉탕증을 대승기탕증으로 잘못보고 대함흉탕을 써야할 때 대승기탕을 잘못 썼기 때문에 병이 나빠진 것은 당연합니다. 그 말을 학생들에게 해준 뒤 나는 이 말 그대로 학술지 편집부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중에 학술지에 당연히 이 논문은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격이라고나 할지, 아니면 인연이 아직 끊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요. 몇 년이 지난 뒤 이 사람이 또 논문을 한편 써서 중의잡지사中醫雜志社에 기고하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중의잡지사에서 이 논문을 나에게 보내 자문을 구했습니다. 내가 상한을 강의하고 있고, 그가 쓴 논문도 상한론 속의 내용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참에 우리가 양명부실증에 대해서 토론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그 때가 79년대인지, 80년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논문을 발표하는데 동의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일차 토론을 진행하여 무엇이 양명부실증陽明腑實證인지, 무엇이 결흉증結胸證인지 여러분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먼저 내가 글을 발표하고,  산동山東의 이극소李克紹가 글을 발표하고, 서원의원西菀醫院의 시진성時振聲선생님이 글을 발표했으며, 남경南京의 진역인 陳亦人선생님도 글을 발표했는데 모두 ”위가실胃家實”을 토론했었습니다. 어느 해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잇달아 칠, 팔편의 글이 발표되어 기본적으로 토론이 분명하게 마무리되었지만, 현재까지 해남도의 그 외과과장이 분명히 그 두 처방의 적응증을 잘 구분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확실히 관건이 되는 점은 복막자극징후인, 압통, 반도통, 복근긴장으로 이것이 대함흉탕증이며, 이것이 결흉증입니다. 복막자격징腹膜刺㦸徵이 없이 다만 복만, 복통 만 있으면서 압통이 보이고, 일포소발조열과 섬어, 대변 못봄 등의 증상만 있으면 이것은 양명부실증입니다.
왕계인王季寅이란 청나라 말엽의 의사가 있는데 평소 만성적인 위통이 있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진찰을 나갔는데 안 맞는 음식을 먹었던지 돌아오는 길에 위통이 갑자기 발작하였는데, 이때의 발작이 그가 느끼기에 과거의 발작과는 다르게 칼로 후비는 듯이 아파 참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겨우 집으로 돌아와 인근의 침구의사를 오라하여 배가 너무 아파 견딜 수 없으니 침을 좀 놓아 달라고 하여 침 맞았는데 네 시간 뒤에도 계속 배가 아팠습니다. 이 침구의사가 "왕선생. 당신 배가 이렇게 돌처럼 딱딱하니 침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신이 내과의사이니 스스로 처방해 보시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틀 동안 대변을 못 봤고 이렇게 아프면서 배가 돌처럼 딱딱하니 대승기탕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대승기탕 처방을 내고 또 자기가 개업하고 있는 의사라 약제실이 있어 스스로 대승기탕을 짓고 달인 뒤 마셨습니다 . 마시고 난 뒤 대변은 조금 봤지만 배는 여전히 매우 아파 나아지지 않자 좀 더 먹어야 하나보다 하고 다시 대승기탕을 한 첩 더 먹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두 첩째 대승기탕을 먹은 뒤 땀이 줄줄 흐르고 이리저리 몸을 뒤채면서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려 곧 기운이 완전히 빠지려 해서 빨리 독삼탕 을 달여 먹었더니 음. 정기가 회복되고 허탈증상도 가라앉았지만 복통은 여전했습니다. 이때 그는 생각했습니다. 나의 이 병은 사기를 공격해도 허탈해져서 안되고 보해도 안되네. 독삼탕을 먹고나니 땀은 안나고 불안하며 가슴이 뛰는 것은 잠시 좋아졌지만 복통은 그대로 참을 수없을 정도여서온 침대를 대굴대굴 굴렀기 때문이지요.  보補해도 안되고, 공攻해도 안되니 내 목숨이 여기까지가 끝인가? 끝났나? 이때 갑자기 의학공부를 할 때 일찌기 상한론을 외웠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종심하도소복경만이통불가근자 대함흉탕주지 從心下到少腹硬滿而痛不可近者,大陷胸湯主之” 그래서 배를 한 번 만져보니 정말 가까이 할 수가 없을 정도였고, 심하에서 아랫 배까지 단단하고 빵빵해서 그럼 이게 대결흉증인가? 대함흉탕을 써야 하나? 그가 반 평생을 의사로 지냈지만 책에서만 본 것은 아무래도 절실하지 않았고, 또 이런 일은 처음이었고 변증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나한테 쓰는 것이니 어때. 이왕 대승기탕으로 안되니 대함흉탕으로 시험해 볼 밖에.라고 생각하고 만일의 희망을 품고 최후의 시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대승기탕은 대황, 망초, 지실, 후박이잖아? 지실, 후박을 빼고 감수로 바꿔 넣는다고 내 병이 고쳐질까? 아무튼 스스로 겪어보지 뭐. 그 뒤 대황, 망초 넣고 달여 감수 가루를 타 먹었더니 그가 이 약을 먹은 뒤 이 약의 작용이 대승기탕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승기탕은 마시고 나자 직접 아랫배로 내려가 30분도 안 돼서 설사를 했는데, 이 약은 마시고나서 약의 힘이 흉격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한참 뒤에야 내려갔는데 반나절이 걸렸고 반나절이 지나서 비로소 면실유같은 즙을 반 사발 쯤 쏟았습니다. 이는 분명히 상소화도에 천공이 생겨 출혈이 있었기 때문에 대변에 잠혈潜血이 생긴 것으로 면실유는 매우 검은 기름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흉격 사이가 시원해지면서 동통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시원해져서 이제야 내 병을 치료할 처방을 찾았구나 생각하고 반나절이 지나 다시 한 번 복용하니 흉격 사이의 동통이 더욱 더 가라앉았고 다음 날 다시 먹고, 세쨋날도 먹고나니 배도 말랑말랑해지고, 압통과 반도통도 없어졌고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 약 정말 좋네. 아직 배가 완전히 시원치는 않아 마지막으로 이 약을 먹었는데 왠걸 마지막에 먹은 이 약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말자 심장이 울렁거리고 폐가 펄떡거려 오장이 부글부글 끓는 솥같더니 그 뒤로 가슴이 뛰고 불안하며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땀이 물흐르듯 흘러 또 허탈되어 쇼크가 올 것 같았습니다. 또 급히 독삼탕 한 사발을 들이키니 정기가 회복되어 배도 물러지고 아프지도 않아 이 병이 나은 셈이었습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함흉탕이 사열축수파결瀉熱逐水破結하며 결흉증을 치료하고, 소화도 천공으로 생긴 복막염을 치료한다는 것입니다. 이 약은 확실히 효과가 있지만 아주 독한 약입니다. 매우 독한 약으로병을 치료할 때는 60%정도 , 보통 독한 약으로 치료할 때는 70%, 약한 독으로는 80%, 독이 없는 약으로 치료할 때는 90%정도 병이 나으면 나머지는 고기, 채소, 과일 등의 음식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약을 지나치게 쓰게되면 정기를 상합니다. 우리 이분 왕선생은 처음 약을 쓸 때 대승기탕을 쓴 것이 증상에 들어맞지 않아 허탈에 빠질 뻔 했고, 나중에 쓴 대함흉탕은 증상과 맞아떨어졌지만 어느 정도 나은 뒤 그치고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하는데,  궁지에 몰린 병기를 뿌리채 뽑으려고 먹은 마지막 약이 정기를 손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그가 의사라 독삼탕이 있었기 망정이지그렇지 않았다면 좋지 않은 일을 당하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이런 종류의 처방은 효과가 있으면 어느 정도 쓰다가 그쳐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는 임상에서 어떻게 대함흉탕을 쓰고 있을까요? 우리 다음 시간에 이어서 강의하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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