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1판교재에서 5판교재까지가 조개미의 번각송판상한론을 기본서적으로 삼아 만들어졌다면, 현재의 6판 교재는 모두 지금 존재하는 유도주선생님이 재편하신 상한론교주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의 5판교재까지는 그들이 번각송판상한론의 원래 모습을 보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판 교재는 무슨 책을 근거로 했나요? 그것은 현재 국가에서 인가한 상한론교주로 이 시대 상한론의 가장 좋은 근거본인데 1991년 출판된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상한론의 근거가 되는 책인 것입니다. 만약 다시 500년 쯤 지나서 조개미의 중경전서 중의 번각송판상한론을 모두들 볼 수 없게 된다면 그 때는 유본劉本-유도주선생이 재편한 상한론교주-을 말하게 되겠지요.
이제까지 말했던 강의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봅시다. 상한론의 유전과정에서 어떤 의가 를 반드시 기억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작자 장중경 기원200년 전후 상한잡병론 16권 을 썼습니다. 바로 이어 그의 학생 왕숙화가 그가 죽은 지 2-30년 뒤 스승 장중경의 상 한잡병론 16권에서 남겨진 부분을 수집, 정리, 편차하였는데 내용을 다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모아진 10권 22편 만으로 상한론이란 이름을 붙여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당 대에 의관국가고시에서 이미 광범하게 상한론 시험을 치렀지만 그 시대에 벌써 단독으로 된 상한론 책자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다행인 것은 손사막의 천금익방, 천금요방 과 왕도의 외대비요에 상한론의 내용이 모두 수록되었다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송 대 국가교정의서국에서 임억, 손기, 고보형이 송 치평2년, 1065년에 정식으로 상한론 10권22편을 교정을 보고, 글자를 깎아 찍어 낸 일입니다. 이로부터 상한론에 비로소 정본이 생기게 된 것인데 이 송판이 지금껏 유전될 수 있었던 것은 명 대 조개미 덕분 으로 그가 만력27년 즉 1599년에 중경전서를 서각할 때에 첫 번째 가는 저작이 번각 송판상한론입니다. 지금 시대에는 또 유도주교수가 주도하여 만든 상한론교주가 있어서 아마도 후세에 상한론의 근거가 되는 바탕 판본이 될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 국가고시 문제은행에는 아직 유본에 대해 다룬 문제는 없고, 다만 명 대 조개미의 의 판본에 대해서만 출제되어 있습니다.
송 대 교정의서국의 사업기간에 그들은 또 몇 부의 책을 각인했는데 이 몇 권의 책들과 우리 상한론의 판본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 부는 금궤옥함경金匱玉函經인데 여 덟 권으로 이름만 보아서는 금궤요략 속의 내용일 것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사실 내용은 상한론과 같아서 상한론과 몸은 같은데 이름만 다른 것입니다. 왜 몸이 같으냐? 내용은 같은데 이름만 다를 뿐이기 때문입니다. 금궤옥함경은 상한론과 동체이별명同體而別名 으로 그 특징은 ‘조론우전, 회방우후 條論于前, 會方于後’입니다. 곧 상한론10권22편은 예를 들어 "태양중풍, 양부이음약, 양부자 열자발, 음약자 한자출, 색색오한, 석석오풍, 흡흡발열, 비명건구자, 계지탕주지 太阳中风,阳浮而阴弱。阳浮者,热自发,阴弱者, 汗自出,嗇嗇恶寒,淅淅恶风,翕翕发热,鼻鸣干呕者,桂枝汤主之" 라 하고 그 아래가 바로 계지탕의 약물구성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보는 10권 22편 상한론의 원래 모습입니다. 그러나 금궤옥함경에서는 원문이 끝난 뒤 계지탕주지라 하고는 그 아래에 계지탕의 처방 구성이 없습니다. 처방구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뒤 쪽 두 권입니다. 뒤의 두 권이 전부 처방이고, 앞 여섯 권이 원문이라 앞에 논조가 있고 뒤에 처방을 모아놓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상한론의 다른 판본인 것입니다. 내가 한번은 우리 중의약대학 도서관의 교사열람실 서가에서 금궤옥함경을 찾으려 하였는데 상한론을 모아둔 서가 에서는 아무리 해도 이 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왜 이 책이 없지?’ 왜냐하면 이 책은 청 대 진세걸陳世杰이 번각한 이후 인민위생출판사에서 영인했는데 나는 이 영인본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도서관 사서가 혹시 이 책을 금궤요략으로 잘 못 알고 금궤요략 서가에 꽂아 놓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금궤요 략 서가에 가 보니 금궤요략 서가의 첫 번째 책이 바로 금궤옥함경이었습니다. 그 뒤로 도서관 사서에게 금궤옥함경은 상한론의 별본이므로 상한론서가에 두어야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송 대 국가교정의서국에서 상한론 10권 22책을 간행하고서 왜 또 금궤옥함경을 간행 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고서를 정리할 때 많은 서적들이 역사서에 이름은 있는데 실 제는 없어져 매우 아쉽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치 있는 책이 있으면 차라리 더 각인하거나 겹치더라도 쉽게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앞으로 상한론 10권 22편이 사라지더라도 금궤옥함경 8권이 있다면 그래도 상한론 의 내용을 전할 수 있는 거죠. 그러나 지금은 상한론10권22편이 널리 유전되어 금궤옥함경을 알거나 읽는 사 람이 점점 적어지고 있는 겁니다. 다만 지금까지 유전되어 옴으로써 상한론을 교감하는 서적의 하나로써 매우 귀중한 의의와 가치가 있습니다.
송 대 국가교정의서국은 작업기간 중 또 하나 상한론과 관련된 중요한 작업을 했습니 다. 바로 한림학사 왕저汪諸란 사람이 국가도서관에서 고서를 수집, 정리하면서 한 무더 기의 벌레 먹은 죽간을 발견한 것 때문입니다. 벌레 먹고 망가진 죽간 위에는 금궤옥함 요략방론3권金匱玉函要略方論三卷 이라 쓰여 있었고, 언제 어떤 사람이 베낀 것인지 모르겠지만 상권은 상한병, 외감병을 논하였는데 이미 출판된 상한론 10권 22편과 비교하니 상한론의 적록摘錄이었습니다. 이로 볼 때 중권과 하권은 잡병 부분의 적록과 부인병 방면의 적록 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왕저가 이를 임억, 손기, 고보형의. 국가 교정의서국에 갖다 주었더니 그들이 살펴 본 뒤 상권의 상한 내용부분은 없애버리고, 중권, 하권 두 부분의 내용 바로 잡병 부분과 부인병 치료부분과 그 처방을 다시 상중하 세권으로 나누어 이를 그대로 금궤옥함요략방론이라 하였는데 줄여서 금궤요략 이라 이름 붙이고 각판 발행하여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유전되는 바로 그 금궤요략입니다. 송 대 국가교정의서국은 상한잡병론의 유전과정중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했습니다. 송 대국가교정의서국의 작업 이후에야 상한론은 비로소 상한론10권22편과 금궤요략3권 으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상한론 유전과정의 대체적인 상황을 오래 소개하였는데 여러분들은 특별히 다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왕숙화는 상한잡병론을 정리하여 상한론을 만들었다.
송 대 국가교정의서국에서 처음으로 상한론10권22편을 교감, 각인하였고 그 뒤로 상한론의 고정된 모습을 가진 정본이 만들어졌다.
명 대 조개미가 번각송판상한론을 그의 중경전서에 포함시켜 우리들에게 송판상한론의 대체적 원모를 알게 해 주었다.
이런 분들은 상한론의 유전과정에서 모두 상당한 공을 세웠으므로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마땅하며 우리 문제은행에 이분들의 성명이 모두 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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