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상한론 원문을 보면서 우리가 정리한 내용에 모두 개괄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봅시다. 교재 44쪽을 펴서 원문 90조를 보겠습니다. “본발한, 이복하지, 차위역야, 약선발한, 치불위역. 본선하지, 이반한지위역, 약선하지, 치불위역. 本發汗,而復下之,此爲逆也;若先發汗,治不爲逆。本先下之,而反汗之爲逆;若先下之,治不爲逆。”이 조문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표증 겸 이실表證兼裏實을 치료할 때 두 종류의 정황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발한”은 본당발한本當發汗이란 뜻으로, 원래 마땅히 땀을 내야 했다는 말이며, “이복하지而復下之”에서 복復은 반反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반復反,반복反復은 동의어입니다. 그러면 왜 이 복復을 ‘다시 부’로 새기지 않고 ‘도리어 복’으로 새겨야 할까요? 그것은 이 조문 속의 뒷 구절에서 “본선하지, 이반한지 本先下之而反汗之”라 하여 ‘반反’이라 썼기 때문입니다. 이 조문에서 복과 반이 함께 쓰였으면서 동일한 위치에서 쓰였으므로 이 복復자는 바로 반反자과 같은 의미라고 보아야 합니다. 표리동병에서 표증과 리실을 겸하였을 때는 원래 발한시켜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도리어 하법을 썼으므로 이것은 잘못입니다. 이렇게 해야 글이 매우 매끄럽게 통하고, 또 의미도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약선발한, 치불위역 若先發汗,治不爲逆” 이라 한 것은 만약 먼저 발한시킨다면 이를 잘못이라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조문의 뒷 구절은 표증이 리실을 겸했을 때 리증이 중하면서 급하고 표증이 비교적 화완할 경우로 그렇다면 먼저 사하해야만 합니다. “본선하지 本先下之”가 바로 원래 먼저 사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반하지 而反汗之” 곧 도리어 한법汗法을 쓰면 이것은 “위역爲逆”이니 이는 셈을 그릇되게 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약선하지, 치불위역 若先下之,治不为逆”이 되니 이는 만일 먼저 공하攻下한다면 이는 생각을 그릇되게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므로 그래서 제90조는 바로 우리가 칠판에 정리한 첫 번째 정황입니다.
제91조는 “상한의하지, 속득하리, 청곡부지, 신동통자, 급당구리: 傷寒醫下之, 續得下利,清糓不止, 身疼痛者, 急當救裏; 후신동통, 청변자조자, 급당구표 後身疼痛, 清便自調者, 急當救表. 구리의사역탕救裏宜四逆湯, 구표의계지탕救表宜桂枝湯”입니다
“상한의하지 傷寒醫下之” 곧 외감병에 의사가 하법을 썼더니 “속득하리, 청곡부지續得下利,清糓不止”하게 되었습니다. 이 하下는 동사이며, 이利는 묽은 것을 가리키므로 ‘하리下利’는 바로 묽은 변을 본다는 말입니다. 청清은 명사로 측청厠清의 청이지만 동사처럼 활용되어 본다, 싼다는 뜻을 가진 변便, 배排, 납拉과 같은 의미로 쓰였고, 곡糓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리下利”와 “청곡清糓”이란 이 동사와 목적어로 이루어진 두 병렬된 조합은 묽은 변을 보면서 그 내용물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이란 말이 됩니다. 이 청清은 형용사가 아니므로 청곡을 “청희清稀”한 곡식으로 보면 안 됩니다. 청희한 곡식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청곡에서 청清은 동사로 소화 안 된 음식물을 말하는 곡糓을 싸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세의가들이 혹시 뜻이 분명히 전달되지 못할까 봐 한 구절을 더 보태어 “하리청곡, 완곡불화 下利清糓,完糓不化”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정황이 나타날까요? 한의학에서는 중초中焦를 솥에다 비유하고, 하초는 화火로 비유하여 하초의 화가 쇠약해지면 “신양허쇠, 부숙무권腎陽虚衰,腐熟無權”이라고 합니다. 솥을 아궁이 위에 걸어놓고, 물과 쌀을 안친 다음 밑에서 불을 지피지 않았다면 한 참 뒤에 밥이 잘 지어졌으리라 믿고 솥을 열어 봐도 생쌀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초의 신양이 허쇠하면, 에너지 즉 화가 흙 곧 중초의 소화기능을 일으키지 못하므로 우리는 화불난토火不暖土란 구절을 중간에 넣어서 “신양허쇠, 화불난토, 부숙무권 腎陽虚衰,火不暖土,腐熟無權“이라 하기도 합니다. 밥이 지어지지 못한 것과 같으므로 우리가 먹은 곡식이 그대로 삭지 않고 나오는 것입니다. 먹은 게 좁쌀죽이라면 보아놓은 대변속에서도 한알 한알 좁쌀이 그대로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완곡불화 完糓不化”의 증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리청곡하는 증상이 보이면 이는 단순한 비양허脾陽虚가 아닙니다. 비양허는 대변이 묽을 뿐이고, 신양허腎陽虚가 있어야 비로소 “하리청곡, 완곡불화 下利清糓,完糓不化”한 증상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리청곡부지下利清糓不止”는 리허裏虚한 정도가 이미 매우 심해진 것입니다. “신동통 身疼痛”은 표증이 있다는 것이므로 이는 바로 우리가 말한 두 번째 정황인 표증 겸 이허表證兼裏虚입니다. “급당구리 急當救裏”에서 “구救”는 바로 다스릴 치治의 의미이니, 이런 표증겸리허에는 당연히 “허인상한건기중 虚人傷寒建其中”의 원칙에 따라 적극적으로, 시기에 걸맞게 바로 결단을 내려 리裏를 다스려야 합니다.
“후신동통後身疼痛”은 리양裏陽이 회복되었는데도 그 이후 아직도 “신동통身疼痛”이란 표증이 남아있는 것이고, “청변자조자清便自調者”에서의 이 “清”은 명사 측청厠清清 의 清(화장실)을 동사로 활용한 것이므로 변便, 배排, 납拉-변보다, 누다, 싸다-의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여기에서의 “변便”은 바로 대변인데, 대변을 보는 것이 스스로 조절된다는 말은 대변보는 것이 정상이란 말입니다. 대변이 정상이므로 리양이 이미 회복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급당구표急當救表”라고 하였으니 이 때는 얼른 다시 표를 풀어주는 치료에 들어가야 합니다. 왜 천천히 살펴보고 나서 치료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리양이 막 회복된 상태인 지금 바로 적극적으로 표를 풀어주지 않으면 표사가 머물러 풀리지 않게 될 수가 있고, 그로써 표사가 또 안으로 빠져 들어가 리증裏證을 재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한 조문에서 두 개의 청清자를 쓰고 있는데 하나는 "청곡 清糓”,하나는 “청변 清便”입니다. 어떤 책에는 청을 소변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이 청은 측청의 청으로 명사를 동사로 활용하여 보다, 누다, 싸다-변便, 배排, 납拉-로 보아야 합니다. 청곡清糓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을 싸는 것이고, 청변清便은 대변을 보는 것이니 청변자조清便自調는 대변이 정상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므로 이 말이 곧 대소변정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한 조문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하리청곡下利清糓"으로, 이는 신양허腎陽虚,화불난토火不暖土,부숙무권腐熟無權함으로써 나타난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변을 잘 보면 리양이 회복되었다는 뜻이 되므로 이때 바로 다시 표를 풀어주는 방법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구리의사역탕救裏宜四逆湯, 구표의계지탕救表宜桂枝湯” 이니 리를 다스릴 때는 사역탕으로 회양구역回陽救逆하고 , 표를 풀 때는 계지탕을 씁니다. 왜 마황탕을 쓰지 않을까요? 우리는 조금 전에 말했었습니다. 리양이 막 회복되었으므로 이런 표증에는 비록 땀이 없다하더라도 함부로 순전히 신온하여 발한하는 힘이 비교적 강한 마황탕을 쓸 수는 없습니다. 발한이 너무 지나치면 다시 양기를 손상하게 됩니다.
92조는 “병발열두동, 맥반침, 약불차, 신체동통, 당구기리, 의사역탕 病發熱頭疼,脉反沉,若不瘥,身體疼痛,當救其裏宜四逆湯”입니다. “병발열두동病發熱疼”이라 했으니 이는 태양 표증입니다. “맥반침脉反沉”에서 왜 "반反”자를 썼을까요. 발열두동은 태양표증이니 맥이 부해야만 하는데 이 환자에게 침한 맥상이 보이는 것은 당연히 이상현상이며, 정상에 반하는 현상이므로 “맥반침脉反沉”이라 한 것입니다. “약불차若不瘥”이 병질엄疒을 더한 차瘥자는 실제로 군더더기를 붙인 것입니다. 상한론 원서에는 이 병질엄疒이 없는 차差자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고쳐놓았습니다. “차差”는 무슨 뜻인가요? 우리 《방언方言》을 인용해 봅시다. 방언에 “차差,간間,지知는 유야愈也”라 하여 이 세 개의 글자가 모두 병이 낫는다는 뜻이라 했으므로 “약불차若不差" 는 병이 낫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상한례傷寒例》에 “약불간若不間”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도 병이 만약 낫지 않으면 이란 말입니다. 알고 나면 매우 간단하지만 어떤 지방에서 상한론을 백화문으로 번역할 때 이 간자를 사이 간間의 뜻으로 해석하여 ‘만일 이 병이 간단間斷되지-끊어지지- 않으면’이라고 한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이 간자를 병이 낫는다는 뜻으로 읽어야 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바로 ’만일 병이 낫지 않으면’ 이라 하면 됩니다. 이 지知자는 마자인환의 처방 뒤에 나오는 복용방법에서 “음복십환, 일삼복, 점가, 이지위도飲服十丸 , 日三服 , 漸加 , 以知爲度”라 하여 마자인환을 먹을 때 처음에는 조금씩 먹다가 점점 갯수를 늘려 “이지위도以知𤔡度”하라고 한 데에서 보이는데, 이 구절을 ‘만일 느낌이 있으면 낫는 것이니, 더 먹지 말라“ 고 번역한 사람도 있습니다. 무슨 느낌일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知는 감각이 아니라, 바로 병이 낫는 것입니다. “차差,간間,지知는 유야愈也”니 이들이 다 병이 낫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의사들은 이 글자를 chuo로 읽기도 하는데, 우리는 학교 다닐 적에 차cuo로 읽었습니다. 어느 해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중앙인민광파전대 中央人民廣播電臺 방송국에서 한의학 강좌를 열었는데, 나는 이 강좌에서 상한론을 강의했었습니다. 내가 “변음양이차후 모복병맥증병치辨陰陽易瘥[chai]後勞復病脉證并治”편을 강의할 때가 되어 내가 전통적인 독법에 따라 “음양이차후병맥증치 陰陽易瘥[cuo]后病脉證并治”라고 읽자 당시 나와 함께 녹화하던 여자 아나운서가 기계를 끄더니 "교수님 이 글자를 왜 “[cuo]”로 읽습니까?" " 우리 스승님께서 “[cuo]로 읽으셨기 때문이죠." "[cuo]는 무슨 뜻입니까?" "[cuo]는 병이 낫는 거죠." 그는 곧 신화자전新華字典을 가지고 와서 "보세요. 이 글자 “차瘥”자를 병이 낫는다고 새길 경우는 [chai]라고 읽는데요. 다시 한 번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저는 감히 이 자전을 거스를 수가 없으니 저는 [chai]로 읽겠습니다." 그녀가 앞에서 먼저 해설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이 꼭 [chai]로 읽어야 겠다면 그런데도 내가 [cuo]로 읽을 수는 없으니 나도 [chai]로 읽겠소.“하고는 ”내가 돌아가면 내 스승님께 그가 [cuo]로 읽는 근거가 무엇인지 여쭈어보겠소.”라고 했습니다. 돌아 온 뒤 유교수님께. "교수님. 이 글자는 왜 [cuo]라고 읽습니까?"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 " 내 스승님이 그렇게 읽으셨네." "스승님이 그 분에게 왜 [cuo]라고 읽으시는지 여쭈어 보셨습니까?" 그가 말하기를 “내가 물어보았는데, 그는 그의 스승이 그렇게 읽으셨다고 하시더군." 실제로 한의들이 한 대에서 다음 대로 전해오면서 대대로 모두 [cuo]로 읽어 왔던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스승님 곧 다른 교수님들도 아마 [cuo]라고 읽으실 것입니다. 그래요, 안그래요? 그렇게 읽는 분이 있을 겁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이 글자를 그들 아나운서의 요구대로 [chai]로 바꿔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규범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내가 그녀에게 "이 뉵衄[nu]자는 현재 왜 다 [niu]로 읽지요? 그녀가 말하기를 "그렇게 읽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라고 하더군요. " 심마진荨[xún]麻疹은 본래는 담마진 “荨[qian]麻疹”이지만 왜 현재 모두 심[xún]으로 읽지요?" 그녀는 또" 그렇게 읽는 사람이 많아서 국가가 독음을 바꾸었기 때문이죠." 라고 하더군요. ’땅에는 본래 길이 없지만 가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된다. 地上本来没有路,走的人多了便成了路‘더니 이건 원래는 담마진 “荨[qian]麻诊”인 담荨[qian]을 ,심“寻[xún]”이라고 읽는 사람이 많아 심마진荨[xún]麻疹으로 고치고, 또 그 뉵혈衄血은 본래[nu로 읽어야 하는데 현재 [niu]라고 읽는 사람들이 많아 [niu]라 읽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글자를 우리가 모두 [cuo]로 읽어 이렇게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당신들 자전도 고쳐야겠군요." 그녀가"지금까지는 고쳐지지 않았네요. 현재 이 글자의 독음은 아직 안 고쳐졌어요." 그래서 나는 현재 돌이켜서 자전의 독음에 따라 [chai]로 읽고 있습니다. “약불차若不差“는 병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말인데, 이 약불차에는 중간에 한 단의 글자들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어떤 글월이 생략되었을까요. 왜 그가 만약 낫지 않는다면 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중간에 치료에 관한 한 단의 글월이 생략된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여기에서 이야기했습니다. 태소양감太少兩感에서 소음병이 결코 심하지 않고 다만 맥만 침하면서 그리고 “하리청곡, 수족궐역, 외한권와 下利清糓,手足厥逆,畏寒蜷卧”증상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표리를 둘 다 풀어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헸습니다. 그러면 표리양해表裏兩解에는 무슨 처방을 썼습니까? 이 역시 조금 전에 마황세신부자탕麻黄細辛附子湯을 쓴다고 했었습니다. 첫날에는 마황세신부자탕을 썼지만. 둘쨋날에는 마황세신부자탕을 쓰려다가 이 병이 그래도 낫지 않자 신양腎陽을 더욱 허쇠하도록 만들까봐 염려하여 세신을 더 쓰지 못하고 마황부자감초탕麻黄附子甘草湯을 씁니다. 이렇게 하면 더욱 온화하게 되는데 마황으로는 태양의 땀을 내어 태양표사를 풀어주며, 부자로 소음의 리양裏陽을 따뜻하게 하면서 소음의 리한裏寒을 흩어내면서, 여기에 감초 하나를 더함으로써 약물의 작용을 화완和緩시켰는데, 이것은 마황세신부자탕이 신양을 더욱 허하게 할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두 처방을 쓴 뒤에도, "병발열 病發熱,두동頭疼,맥침脉沉”하는 것은 태소양감太少兩感으로 이양허裏陽虚의 정도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마황세신부자탕麻黄细辛附子汤 마황부자감초탕麻黄附子甘草汤을 쓴 뒤에도 만약 낫지 않는다면 이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약불차若不差”앞에 한 구절이 생략되었다고 할 때 어떤 구절이 생략되었을까요? ’마황세신부자탕麻黄細辛附子湯、마황부자감초탕麻黄附子甘草湯으로 온경발한温經發汗했는데‘ 만약 그래도 낫지 않는다면 이라고 해야 하므로 ’ ‘ 안의 구절이 생략된 것입니다. “신체동통身体疼痛”이라고 하여 표증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당구기리當救其裏” 이므로 역시 먼저 리裏를 다스려야만 합니다. 치리治裏하는데 무슨 처방을 써야 하나요? “의사역탕宜四逆湯”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표증에 이허를 겸한 사람이 이허가 심하지 않아 표리동치하는 처방을 썼는데도 낫지 않으면 리裏를 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중경의 정기를 중시하고, 더우기 인체의 양기를 중시하는 그러한 학술사상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증겸리허表證兼裏虚를 치료할 때 그는 매우 조심스러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리허裏虚의 정도가 아주 가벼워 겨우 맥침脉沈증상만 보여도 먼저 마황세신부자탕을 쓰고, 이튿날은 마황부자감초탕을 주었습니다. 이 두 처방을 썼는데 그래도 듣지 않자 이 두 처방을 더 먹지 못하게 하고 직접 사역탕으로 보리補裏하였습니다. 표증에 경도의 리허를 겸했을 때라도 이렇게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었습니다. 만약 표증에 심한 리허를 겸하여 이미 “하리청곡, 사지궐역 下利清糓,四肢厥逆”증상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막 91조에서 말했던 바대로 “급당구리急當救裏”해야 하므로 ”의사역탕宜四逆湯”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표리동병에서 표증이 리허裏虚를 겸한 경우의 치료에 대한 중경의 생각방법이었습니다.
자! 이래서 우리는 태양변증太陽變證의 개념, 태양괴병太陽壞病의 개념으로 부터 현재까지 강의해 오면서 변증變證의 치료원칙에 대해 하나의 모두를 아우르는 논술을 말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태양변증太阳變證이나 괴병壞病은 한寒하거나, 열熱하거나, 허虚하거나, 실實하거나, 한열寒熱이 착잡錯雜하거나, 허실虚實이 같이 나타나거나, 장臟에 있거나, 부腑에 있어서 얽히고 설켜 복잡하고 변화가 다단하지만 기본원칙은 바로 “관기맥증, 지범하역,수증치지 觀其脉證,知犯何逆,隨證治之”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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