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만산 상한론 강의

제22강 태양변증과 그 치료원칙-1

臥嘗 齋 2025. 2. 26. 07:00

다음으로 우리는 태양변증變證과 태양변증의 증치證治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무엇을 변증이라 할까요? 우리가 상한론의 개론 곧 총론을 강의했을 때 일찍이 이에 대해 개념적인 소개를 했는데, 이른 바 변증은 육경병을 실치失治하거나 오치誤治했을 때 나타납니다. 실치는 때맞춰 치료하지 못하여 치료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며, 오치는 어긋난 치료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긋난 치료란 곧 발한해야 할 때 하법을 쓰거나 토법을 쓰는 것처럼 바르게 치료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오치, 실치하면 육경병의 임상증상에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 나타난 새로운 증후를 육경의 바른 이름으로는 명명할 수 없을 때, 곧 새로운 병증이 양명병, 소양병에 속하지도 않고 삼음병에 속하지도 않아 육경의 바른 이름 아래 거두어 명명하기가 어려울 때 후세의 의가들은 이들을 모두 변증이라고 했습니다. 이 병들이 태양병의 실치나 오치로 비롯되었다면 태양변증이라 했고, 소양병의 실치나 오치로 인한 것이라면 소양변증이라 했는데, 다른 경병經病의 경우도 모두 이렇게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므로 태양변증은 당연히 태양병을 실치하거나 오치해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이제 우리 교재 41쪽 원문 16조를 펴 봅시다. “태양병삼일, 이발한, 약토, 약하, 약온침, 잉불해자, 차위괴병, 계지부중여지야, 관기맥증, 지범하역, 수증치지 太陽病三日, 已發汗, 若吐、若下、若温鍼, 仍不解者, 此为壞病, 桂枝不中與之也. 觀其脉證,知犯何逆,隨證治之.”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먼저 변증變證의 치료원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태양병삼일太陽病三日”,태양병의 병정 중 이미 사흘이 지났습니다. “이발한已發汗”은 이미 땀을 내는 방법을 써 봤는데, 정해진 방법대로 땀을 내지 못했거나, 썼던 처방이 증상과 맞지 않아 병이 낫지 않은 것입니다. “약토, 약하, 약온침 若吐、若下、若温鍼”혹은 토를 시킨다든지, 설사를 시킨다든지, 온침을 썼다는 말인데, 온침은 화침으로 앞에서 이야기했던 화료방법火療方法의 하나입니다. “잉불해仍不解”,이런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방법을 썼지만 병사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차위괴병此为壞病”이라 했는데 이 “괴병壞病”이 바로 변증變證입니다. 후세 의가들은 중경이 이들을 괴병이라 부른 것은 곧 전형적인 육경병을 그릇된 복잡다단한 치료방법으로 육경체계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병정을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괴병은 바로 변증 중에서 같은 방법으로 여러 번 오치했거나, 여러 방법을 써서 오치하여 병정을 복잡하게 만들어 육경체계를 무너뜨렸으므로 붙여진 이름인 것입니다. 병정이 이미 복잡하게 되어 단순한 표증이 아니므로 “계지부중여지야桂枝不中與之也” 다시 계지탕을 주어도 낫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부중不中”은 불가不可와 같은 말로 초 나라 지방의 사투리이므로 낫게 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다시 계지탕을 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인데 왜 그럴까요? 증상이 이미 변화하여 이미 계지탕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잡하게 얽힌 병을 여러분은 어떻게 치료하겠습니까? 제16조에서 12자의 기본원칙을 내세우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관기맥증, 지범하역, 수증치지 觀其脉證,知犯何逆,隨證治之”입니다. “관기맥증 觀其脉證”은 바로 지금 나타나고 있는 맥상과 증후의 모습을 보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가 지금 드러내고 있는 맥증의 모습을 보는 것이지요. “지범하역 知犯何逆”은 바로 과거에 어떤 잘못된 치료방법을 사용하였는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이 역逆 자는 내가 전에 《광아소증廣雅疏證》이란 책에서 “역, 란야 逆,亂也”라 풀었고 이어서 “란역착야 亂亦錯也”-난은 그릇된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이것은 역 자에 대한《광아소증》의 해석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늘 역은 거스르는 것이므로 그렇게 해석하고 나서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잘못되었다는 뜻으로까지 확대해석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왔었지만 실제로는 역逆자의 본래 의미가 바로 흐트러졌다는 뜻이었습니다. 역란逆亂이란 바로 란亂을 말하는 것으로 란亂 스스로가 어긋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범하역 知犯何逆”은 바로 전에 어떤 어긋난 방법으로 치료하였는지 즉 오치하였는지를 여러분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수증치지 隨證治之” 는그런 뒤에 다시 지금 보이는 맥증脉證을 바탕으로, 과거에 그가 받았던 어긋난 치료방법을 살피고, 지금 환자의 구체적인 정황에 알맞은 딱 들어맞는 치료방법을 찾아 치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한론이 개체화된 치료방법과 치료원칙을 창립하였다고 했는데 이른바 개체화된 치료원칙이 바로 변증론치辨證論治의 치료원칙입니다. 변증론치라는 넉 자가 상한론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변증론치의 정신을 글자 상으로 가장 잘 드러낸 부분이 바로 이 제16조의 12자 “관기맥증, 지범하역, 수증치지 觀其脉證,知犯何逆,隨證治之”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과 학생들에게 이 12자를 반드시 외우라고 합니다. 우리의 문제 은행 속에는 괄호 넣기 형식으로 변증의 치료원칙은 무엇인가요? 또는 괴병의 치료원칙은 무엇인가요? 라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이때 여러분들은 이 12자를 써 넣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재를 편찬할 때는 변증, 괴병이 나타날 수 있는 정황이 있으면 총체적인 묘술을 해 놓습니다.
다음에 우리 교재 42쪽을 펴세요. “발한후, 오한자, 허고야, 불오한, 단열자, 실야, 당화위기, 의조위승기탕 發汗後,惡寒者,虚故也,不惡寒,但熱者,實也,當和胃氣,宜調胃承氣湯” 이것은 제70조입니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땀을 내지 못하면 허증이 될 수도 있고, 실증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발한 뒤 병정이 좋아지지 않을 때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요? “관기맥증 觀其脉證”해야 하는데 현재 오한은 있지만 이 오한에 이미 발열은 없어졌으므로 당연히 리양허裏陽虚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리양허는 발한한 뒤에 생길 수도 있습니다. “불오한, 단열자, 실야 不惡寒,但熱者,實也” 땀을 낸 뒤 오한하지 않고 열만 나는 이런 리실열裏實熱한 증후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리실열한 증후는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당화위기, 의조위승기탕 當和胃氣,宜調胃承氣湯”입니다. 수증치지隨證治之이므로 실열實熱이면 실열을 청사清瀉하고, 허한이면 온리산한温裏散寒하면 됩니다. 이것은 바로 수증치지 원칙을 체현한 것으로 어떻게 수증치지해야 하는지 장중경이 예를 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치 이후에 형성된 변증이 허한하거나 혹은 실열일 때 허한하면 허한에 따른 치료를 하고, 실열이면 실열에 맞는 치료를 해야 합니다. 왜 다 같은 발한의 오치인데 어떤 사람은 허한이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실열이 나타날까요? 이는 주로 환자의 체질요인 때문입니다. 이 환자가 평소 양기가 허했다면 오치 이후에 양기가 더욱 쇠약해져서 음한내성陰寒内盛이 될 수 있고, 평소 음허하여 양기가 항성한 체질이었다면 오치 후 음액이 더욱 손상됨으로써 양기가 더욱 치솟아 사기가 이 양기를 따라 열로 변하게 하여 건조한 실증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외인은 변화의 조건이 되고 내인은 변화의 근거가 됩니다. 이런 변증, 괴병은 혹은 한하고 혹은 열하며, 혹은 허하고 혹은 실하여서 질병이 정해진 규율에 따라 발전해 나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치료할 때 관기맥증, 지범하역, 수증치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이어서 그 아래를 봅시다. “하지후, 부발한, 필진한, 맥미세, 소이연자, 이내외구허고야 下之後,復發汗,必振寒,脉微细,所以然者,以内外俱虚故也” 장중경은 이 예를 들어 오하誤下 이후에도 표리음양表裏陰陽이 모두 허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후, 부발한 下之後,復發汗”하여, 오하誤下로는 리음裏陰을 손상하고, 발한發汗으로는 표양表陽을 손상했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만일 표증이 있으면서 또 리증도 있을 경우에는 먼저 해표한 뒤 공하攻下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먼저 하下한 뒤 땀을 냄으로써 치료순서를 뒤바꾸었기 때문에 먼저 설사로 안에 있는 음액을 손상하였고 나중에 땀을 내어 바깥에 있는 양기를 손상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두 가지 증상에서 “진한振寒”은 양기가 손상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라 환자가 추워 덜덜 떠는 것이고, “맥미세脉微細”는 미微가 양허를 나타내고, 세細가 음허를 나타내므로-미주양허, 세주음허 微主陽虚,細主陰虚- 음양양상陰陽兩傷이 됩니다. 중경 스스로는 어떻게 해석했나요? 소이연자所以然者 즉 이런 정황을 만든 까닭이 바로 내외구허라고 했습니다. 내외는 표리를 말하는 것이고 구허하다는 것은 표리음양의 기운이 모두 허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증후에는 마땅히 사역가인삼탕四逆加人蔘湯으로 치료해야만 합니다. 사역탕四逆湯으로는 양기를 보하고, 여기에 익기생진보음액益氣生津補陰液하는 인삼을 더해 쓰는 것입니다. 오치 이후에 생긴 변증 혹은 괴병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허할 수도, 실할 수도, 한할 수도, 열할 수도 있으므로 치료할 때 수증치지해야 합니다.
아래 제11조를 보면 한열진가寒熱眞假를 대한 변별해 놓았습니다. “병인신대열, 반욕득의자, 열재피부, 한재골수야, 신대한, 반불욕근의자, 한재피부, 열재골수야 病人身大熱,反欲得衣者,熱在皮膚,寒在骨髓也;身大寒,反不欲近衣者,寒在皮膚,熱在骨髓也” 라 했습니다. 발열과 오한은 외감병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한 꿰미의 증상인데 우리는 앞의 제7조에서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발열오한자 발우양야, 무열오한자, 발우음야 發熱惡寒者,發于陽也;無熱惡寒者,發于陰也”를 모두들 기억하리라 생각합니다. 발열이 주요한 특징이면 양증이고, 오한이 주요한 특징이면서 발열하지 않으면 음증입니다. 이 조문을 해석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증후를 음양으로 나눈 것을 표현하는 말이라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한 조문 “병인신대열, 반욕득의자, 열재피부 病人身大熱,反欲得衣者,熱在皮膚”는 또 다른 특수한 정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환자의 몸을 만져보면 뜨거운데, 환자는 도리어 옷을 껴입고 이불을 덮어쓰고 불을 쬐어 몸을 따뜻하게 덥히려 한다면 이 열은 피부에만 존재하는 일종의 가상假象일 수가 있습니다. 피부는 질병의 표면현상이나 혹은 질병의 가상을 말하지만, 골수는 질병의 본질이자 질병 내부의 진실한 정황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열재피부는 이 열이 표면현상임을 말하는 것이며, 한재골수는 내부의 진정한 음한내성陰寒内盛을 말하므로 이것은 한증寒證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묘술한 것이 무슨 증후가 되나요? 이것은 진한가열증眞寒假熱證입니다. 어떤 이는 이를 음성격양증 陰盛格陽證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음성양부증陰盛陽浮證이라고도 합니다. 음이 안에서 왕성하고, 양은 바깥에 떠 있는데 양기는 열량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밖으로 열에너지를 가진 미세한 물질을 방출하기 때문에 피부가 뜨거운 것입니다. 허양虚陽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거부되어 체표에 떠 있으므로 체표에는 열상이 나타나지만 그러나 질병의 본질은 확실히 음한내성으로 한사가 성하며 진양이 쇠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이 골수에 있고 열이 피부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피부를 얕다고 하고, 골수를 깊다고 했습니다.
내가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교수님이 우리를 병실로 데려가 참관하도록 하셨습니다. 병실에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던 그 때의 나이와 같았습니다.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던 때는 18세였는데 그 젊은이도 18세였습니다. 그는 재생불량성빈혈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왜 이 젊은이에게 대한 인상을 간직하고 있었을까요? 우리는 같은 나이인데 나는 대학에 입학했고 그는 이런 심한 병으로 병상에 누워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졸업하고 나서(우리가 배울 때는 6년제였습니다.) 병원에서 수련의 생활을 하게 됐는데 그때까지 그가 입원해 있는 것을 봤습니다. 아마도 그 중간에 퇴원했다가 입원했다가를 반복했겠죠. 그 때는 이 병이 이미 말기가 되었는데 30년 전이라 이런 유형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현재와 비교할 때 많이 뒤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병이 이미 말기가 되어 그의 온 몸의 혈액량이 줄어들었을 뿐 만 아니라 혈액검사에서 헤모글로빈도 몇 그람 밖에 되지 않았으며 (정상범위 남성 : 13.5~17.5 g/dL), 백혈구도 겨우 몇 백 개 정도였습니다. (WBC정상범위 3,500~10,500 cells/μL) 그리고 출혈현상이 특별히 두드러져 양치질조차도 겁이나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를 닦지 않았는데도 잇몸에는 늘 피딱지가 앉아 있었는데 혈소판도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과 손톱에도 핏기가 없었으며, 추위로 꼬부리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 때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때로 기억하는데 이미 날씨가 매우 더워서 다른 환자들은 모두 겨우 담요 한 장만 덮고 있었습니다만 그는 담요를 덮고, 그 위에 솜이불을 덮고도 다시 솜을 넣은 겉옷을 덮고 있었습니다. 추워서 꼬부리고 있었습니다. 백혈구 수가 너무 적은 탓에 세균감염질환이 합병되어 열이 38도,39도, 심지어는 39 도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그 때 내 사수였던 의사는 한의학과 양의학에 모두 매우 정통했던 분이었는데 세균감염에 합병되었으므로 당연히 항생제를 썼습니다. 그런데 각종 항생제를 다 써 봤지만 열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약도 썼었는데 신량청해辛凉清解하는 약, 감한甘寒한 약, 고한해독苦寒解毒하는 약을 모두 써 봤지만 열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내 사수가 우리 경험 많은 교수님에게 회진을 부탁드려 보자고 했습니다. 내가 ‘선생님. 누구를 모실까요?’ 했더니 그는 송효지宋孝志 교수님에게 요청드리자고 했습니다. 송효지 교수님은 그즈음 우리 동직문의원에서 기이한 처방으로 기이한 병들을 치료하셨던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내가 전에 매년 5월1일 부터 11월 사이에만 발작했던 어느 과민성천식환자의 천식을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송 교수님께서 두 가지 약만으로 구성된 치자시탕을 쓰면서 그 용량을 각각 15g씩 하여 어느 정도 기간을 치료함으로써 이 환자의 천식이 다시 발작하지 않도록 하셨다고 했었죠. 기방奇方으로 기병奇病을 잘 치료하셨던 선배님이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을 모셨던 것입니다. 내가 송 교수님을 따라 병실로 갔는데 교수님이 " 젊은이 진맥하게 손을 내밀어 보게."하시자 젊은이가 이불 속에 꼬부리고 누워 천천히 손을 내밀었습니다. 교수님이 맥을 보시고 나서 물어보았습니다. "젊은이 목이 마른가? " "저는 늘 입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습니다. " "찬 물이 먹고 싶은가? 아니면 더운 물이 먹고 싶은가? "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찬 물과 더운 물 중의 어떤 물이 마시고 싶은지 말하지 못했습니다. 교수님은 그가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하자 나에게 더운 물 반잔과 시원한 물 반잔을 따라줘 보라고 하셔서 내가 두 잔에 물을 따라 침상 머리맡의 협탁에 놓아두었습니다. 누구든지 한 번 보기만 해도 어느 것이 더운 물인지 어느 것이 찬 물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그 젊은이는 천천히 물 잔 쪽으로 손을 뻗다가 찬 물 컵에 손이 닿자마자 얼른 손을 움츠리더니 다시 그 더운 물 컵에 손을 뻗어 따뜻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머금고는 삼키지않고 컵을 제 자리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물을 삼켰습니다. 교수님은 그제서야 진찰이 끝났다고 하시고는 의사실로 가셔서 나를 아랑곳 않고 한 장의 종이에다가 첫 번째 약으로 포부자炮附子10g을 쓰셨습니다. 나는 보자마자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우리는 금은화金銀花, 연교連翹, 포공영蒲公英, 자화지정紫花地丁, 석고石膏, 지모知母 등을 썼는데 송 교수님 은 처음에 바로 포부자를 쓰신 겁니다. 두 번째 약은 건강乾薑10g, 세 번째 약은 홍삼紅蔘 20g 이었습니다. 이 때 내가 "교수님, 이환자는 재생불량성 빈혈환자인데요. 이 사람 혈소판이 특별히 모자란 상태에서 세균에 감염되어 고열이 나는데 현재 체온은 39도입니다." 송 교수님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시더니 "자네, 한의산가, 아니면 양의산가?" 나는 이 분이 늙어서 멍청해지셨나봐. 반 년 전에 그이 밑에서 불러주시던 처방을 적었던 나도 모르시다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 , 제가 누군지 모르세요? 제가 아무게입니다. " 교수님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습니다. 사실 내가 나중에 생각하니 교수님은 내가 말한 이 말들이 한의학의 특징인 변증辨證에 어울리지 않아 싫어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 환자는 재생불량성빈혈환자인데 세균에 감염되어 비로소 발열이 되었다 했으니 한의학 교수님을 초청해 회진하게 하면서 완전히 서양의학적인 술어를 쓴 것이거든요. 송 교수님의 네 번째 약은 자감초炙甘草6g이었는데 이건 바로 사역가인삼탕四逆加人蔘湯이잖습니까?그는 처방한 종이를 거기에 두시고는 "자네가 쓸 용기가 있으면 써 보고, 없으면 쓰지 말게나." 하시고는 휙 가버리셨습니다. 나의 사수인 주임의사가 오기를 기다려 그에게 이 처방을 보여 줬더니 그 의사도 그것을 보고 멍하게 있다가 반나절을 생각하고는 " 이미 송 교수님에게 부탁해서 처방까지 내 주셨으니 우리 천천히 써 봅시다. 당연히 장기처방은 내지 말고 하루에 한 첩씩 처방을 내면서 그 다음날 상황을 보아 다시 한 첩씩 처방을 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왜 열약을 과감히 쓰지 못했을까요? 우리 마음속에는 출혈경향이 매우 뚜렷해서 걸핏하면 코피를 흘리고, 잇몸엔 늘 피딱지가 앉아 있는데 거기다가 고열까지 뜨는데 열약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함으로써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첫 날 약을 쓴 뒤 보니 상황이 매우 안정되었습니다. 출혈되는 낌새도 없었고 체온은 오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이튿날 약을 다 쓰고 나서 보니 보통은 오후에 체온이 39 °C쯤 이었는데 뜻밖에도 38.5 °C정도였습니다. 사흘째 약을 다 쓰고 났는데도 매우 안정되어 체온은 38 °C가 되어 내려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며칠을 쓴 뒤 체온은 점점 내려 정상이 되었고 일주일 뒤는 완전히 열이 뜨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임의사도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고, 우리 다시 송 교수님에게 왜 열약을 썼는데도 의외로 체온이 내렸는지 물어 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교수님에게 여쭈어 보러 갔습니다. 교수님은 바로 나에게 “'신대열, 반욕득의자, 열재피부, 한재골수야'라는 말을 자네 배웠는가? "하셨습니다. "대학 본과시절에 상한론 중에서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본과 동기들이 대학을 다닐 적에는 열심히 강의를 듣고 교수님이 시키시는 대로 상한론 원문을 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과 2학년 때 배운 것이라 그 뒤 내과를 배우고 임상각과를 배우고 여기에다 번거롭고 복잡한 임상실습을 다니느라 저학년 때 배웠던 이런 수업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이 조의 원문을 외우실 때 상한론 속에 이런 원문이 있다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습니다. "이 환자가 이렇게 담요, 솜이불, 솜 겉옷을 두껍게 덮고 있으니 비록 그가 고열이 나긴 하지만 이것이 바로 신대열身大熱, 반욕득의反欲得衣가 아니겠는가? " 내가 생각해보니 그랬습니다. 그러나 내가 날마다 병실을 회진하며 날마다 이런 정황을 봤는데도 결코 이런 상황을 변증하는 하나의 중요한 근거로는 결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가 속으로 번열煩熱을 느꼈기 때문에 찬 물을 마시려고 찬 물 컵으로 손을 뻗었지만 찬 물 컵을 잡았을 때 찬 것을 느끼고 곧 움츠려들었으니 이것이 진한眞寒이 아니겠는가? 그가 허열虛熱이 있어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왜 찬 물인지 더운 물인지 분명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속이 답답하여, 속에 허번虛煩이 있어 찬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차가워서 마실 수가 없었으므로 미적미적 자기가 마시고 싶은 물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야. 내가 자네에게 잔 둘에 하나는 더운 물 반 컵을 따르고 하나는 찬 물을 따르게 한 것은 그가 도대체 더운 물을 마시고 싶은지 찬 물을 마시고 싶은지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일세. 그가 찬 물 컵을 집으려 하다가 곧 움츠려 찬 물을 건드리지도 못하는데 다시 그에게 금은화, 포공영, 연교, 자화지정, 석고, 지모 등을 주었으니 자네가 그 사람을 해치려고 한 것인가? 아니면 구하려고 한 것인가? " 송 교수님은 이렇게 매우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대열, 반욕득의자 身大熱,反欲得衣者”이며, 이것이 바로 음성양부陰盛陽浮입니다. 음성양부, 송 교수님은 음성격양陰盛格陽이라 하지 않고 음성양부라고 하셨는데 책에 이런 말은 없습니다. 노선배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허양이 바깥으로 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발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발열은 허양이 바깥으로 떠 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이 젊은이는 이 때 인삼사역탕을 쓴 뒤 열이 내리고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열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질병들이 있고 이들을 치료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꼭 생명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삼 개월 뒤 이 젊은이는 뇌일혈로 죽었습니다. 이렇게 뇌일혈로 죽게 된 것은 그 질병 스스로가 발전된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혈소판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이런 출혈 경향이 반드시 발생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었죠. 이렇게 하여 그는 나에게 매우 심각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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