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중의思考中醫

궐음병 강요-3

臥嘗 齋 2025. 1. 29. 16:56


(2)나무는 무엇을 뜻하는가.-목의木义

①나무는 굽혔다 폈다 한다.-목왈곡직木曰曲直
풍风의 뜻은 이미 위와 같이 말했는데, 그러면 목木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가장 앞서는 하나의 의미는 바로 《상서尚书·홍범洪范》에서 말하는 “목왈곡직木曰曲直”이다. 곡직曲直은 나무의 특성 중 하나로 모든 식물들은 다 곡직曲直의 성질을 가진다. 그런데 오행 중 다른 부류 들은 모두다 곡직曲直의 성질은 가지고 있지 않다. 《소문素问·음양응상대론阴阳应象大论》에서 “동방생풍东方生风,풍생목风生木,목생산木生酸,산생간酸生肝,간생근肝生筋。”이라 했고 또 “신재천위풍神在天为风,재지위목在地为木,재체위근在体为筋,재장위간在藏为肝。”이라 했다. 그래서 몸에 있어서의 이 근筋과 장藏에 있어서의 이 간肝은 다 곡직曲直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체의 근筋이 하는 가장 중요한 작용은 무엇인가? 바로 이 곡직曲直이다. 사람의 사지四肢는 어떻게 굽혔다 폈다하면서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근의 이런 작용이 매우 핵심적이다. 근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관절을 부드럽고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몸의 근筋은 주로 관절 주위에 몰려 있다. 그리고 슬관절膝关节은 근筋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므로 슬膝을 《내경内经》에서 “근지부筋之府”라고도 했다. 목木을 곡직曲直이라 하며 목은 몸에서 근筋이 되는데, 근의 이런 작용들은 확실히 목의 곡직하는 성질을 매우 충분히 드러낸다.  
다른 하나의 의미는 바로 《소문素问》의 여러 편들에서 말해진 종근宗筋이다. 종근이 포함하는 뜻은 비록 하나가 아니긴 하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전음前阴, 특히 남성의 음경阴茎을 가리킨다. 종근과 관련된 이 하나의 의의는 《영추灵枢·오음오미五音五味》편의 한 자락 경문으로 증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환자거기종근宦者去其宗筋,상기충맥伤其冲脉。”이 바로 그 것인데, 환자란 환관宦官으로 근세近世에서는 태감太监이라고도 불렸다. 태감은 궁에 들기 전 모두 고환을 제거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영추灵枢》에서 말하는 “거기종근去其宗筋”이다. 종근의 이런 뜻은 우리를 다시 위에서 말했던 풍风의 뜻을 생각하게 한다. 풍风은 암수가 서로 끌어당겨 생식번연生殖繁衍과 이어지고, 종근은 가장 주요한 생식기관이다. 이로써 하늘의 바람과 땅의 나무, 몸의 근筋,장藏의 간肝은 《노자老子》가 말한 “인법지人法地,지법천地法天,천법도天法道,도법자연道法自然”이 절대로 헛 말이 아니라는 것을 넉넉히 증명한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 어울리는 관계라는 증거를 여기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예기礼记·월령소月令疏》에서 “춘즉위생春则为生,천지생육성덕재우목위天之生育盛德在于木位。”라 했는데 《예기礼记》의 이 귀절은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생육성덕生育盛德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목木의 자리에 있다. 목이 종근을 맡아보는데  이 성덕盛德이 목의 자리에 있지 않으면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종근이 작용을 발휘하려면 곡직曲直이 잘 되어야만 한다. 현재 세계에서 양위阳痿를 앓는 환자가 갈수록 많아지는데 그것은 바로 종근이 구부러진 체 꼿꼿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구부러져 꼿꼿해지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매우 많은 원인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하나는 도덕윤리道德伦理방면의 심리적 원인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비아그라 로 해결할 수 없는데, 한의사로서는 마땅히 궐음厥阴에, 풍목风木에 마음을 써서 생각해 봐야 한다.  

②오행의 순서-오행차제五行次第
앞의 각 장章 속에서 우리는 수화토금水火土金에 치중하여 다루었는데, 이제 목을 더하게 되면 오행의 내용이 기본적으로 모두 다루어지는 셈이다. 오행五行을 살펴볼 때 각자가 포함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오행의 순서도 매우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오행의 순서는 《상서尚书·홍범洪范》 에 “일왈수一曰水,이왈화二曰火,삼왈목三曰木,사왈금四曰金,오왈토五曰土。”라고 이미 뚜렷이 밝히고 있으며 하도河图의 오행순서도 이와 같다. 그래서 하도河图에서 천일생수天一生水,지륙성지地六成之; 지이생화地二生火,천칠성지天七成之;천삼생목天三生木,지팔성지地八成之;지사생금地四生金,천구성지天九成之;천오생토天五生土,지십성지地十成之라 한 것이다. 오행에 왜 이런 순서가 있는가? 왜 일왈수一曰水,이왈화二曰火,삼왈목三曰木은 되고 일왈목一曰木,이왈화二曰火,삼왈수三曰水는 안 되는 것일까? 이것은 매우 핵심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오행의 이런 순서는 우리에게 지구 상의 모든 물질이 생긴 순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정해진 것이라 이런 순서는 우리가 지구를 연구하고, 인류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오행五行의 일수이화삼목사금오토一水二火三木四金五土로 세운 이런 순서는 무슨 문제를 설명하는가? 그것은 우리 지구에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 물이란 것을 말하는데 물은 모든 생명의 기초로, 지구를 태양계의 다른 행성行星들과 구별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물 뒤에 나타난 것이 바로 불이다. 왜 물과 불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일까?  《소문素问·음양응상대론阴阳应象大论》에 “수화자水火者,음양지징조야阴阳之征兆也。”라 했으므로 수화水火가 나타났다는 말은 음양阴阳이 나타난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음양자阴阳者,천지지도야天地之道也,만물지강기万物之纲纪,변화지부모变化之父母,생살지본시生杀之本始”라 했으므로 수화가 나타난 뒤로 매우 자연스럽게 오행을 화생化生하여 만물万物을 화생한다. 그래서 지구 상의 생명은 물불이 생긴 뒤 차차 생겨나게 되었다. 당연히 이 생명의 탄생은 먼저 식물 생명이 생긴 뒤 동물 생명이 생겨났다. 식물생명은 나무로 대표되며, 동물생명은 흙을 대표한다. 그래서 오행은 수화가 있은 뒤로 먼저 나무가 생기고 마지막에서야 흙이 생긴 것이다.
그 밖에 동물 생명만 가지고 말하자면 오행의 순서가 그들의 진화정황进化情况을 매우 잘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오행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동물이 수생동물水生动物이고, 그 뒤 점점 양서동물两栖动物로 발전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육생동물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오행은 물에서 시작되어 흙에서 끝난다.  앞에서 오행과 동물의 관계는 수水가 린충鳞虫이고,화火가 우충羽虫,목木이 모충毛虫,금金이 개충介虫,토土가 라충倮虫이라는 것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래서 동물생명은 린충이 가장 먼저 생겼는데 린충은 수생족 동물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우충, 모충, 개충, 라충의 순서인데, 라충은 어떠했던가? 사람이 라충 중에 가장 대표적인 동물이었다. 이로써 사람은 우리 지구 상에 있는 동물 중에 가장 진화된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과 현대과학에서 연구해낸 결론은 완전히 같다. 이런 결론을 마주한 우리는 고대의 이 이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까? 마땅히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만 하고, 마땅히 마음을 가다듬어 받들어야만 한다!

③ 나무가 불을 살린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목생화의木生火义
우리가 앞에서는 주로 의학적医学的인 관점에서 풍목风木을 이야기했는데, 좀 더 눈을 넓혀서 목木과 다른 오행과의 상생관계가 사회社会、환경环境에서 전체 지구방면에 까지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수생목水生木、목생화木生火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를 알아 보자.  나는 그 가장 큰 의의가 바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화제이기도 한, 우리가 계속 발전해 갈 수 있는가 하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목생화木生火는 지속발전持续发展에 가장 핵심적인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우리 한 번 같이 생각해 보자. 지속발전持续发展할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 핵심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사실 그것은 바로 에너지문제이다. 에너지가 지속될 수 있다면  이런 발전은 발전이 지속되겠지만 에너지가 재생되지 못하고 지속되지 못하면 발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에너지는 여러 방면들을 포괄하는데, 인류의 생존과 발전에 관계되는 가장 주요한 방면은 연료燃料이다. 연료는 오행에서 화火에 속한다. 오행의 화는 어디에서 생산되나? 목木이 만든다. 그래서 고대古代의 우리 선조들은 나무를 연료로 삼았는데, 이렇게 나무를 연료로 쓰는 것이 오행의 상생법으로 이런 상생은 매우 자연스럽다. 자연에 맞으면 당연히 지속될 수 있다. 과거에 농촌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이 점에 대해 매우 깊이 느꼈을 것이라 본다. 전에는 농촌에서 밥을 지을 때 모두 땔감을 산에서 가져다 썼는데, 올해가 지나면 내년에 다시 자라나므로 해마다 땔감을 해오더라도  언제나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한 마을에 몇 십 집으로 산이 사방에 있어 수 천년전부터 땔감을 해 왔지만  아직 이렇게 나무가 무성한데, 왜 그런 것일까? 왜냐하면 나무는 재생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UN환경보호기구는 지속적 발전에 두 기본 조건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첫번째는 우리가 이용하는 에너지원이 재생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두번째는 이용하고 난 뒤 분해될 수 있어야 한다. 나무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목木으로 화火를 만들어 낼 때는 이 두 조건에 아주 걸맞다. 그러므로 나무를 원료로 하는 발전방식일 때는 완전히 지속발전할 수가 있다.            
그러면 우리 다시 현대로 돌아와 살펴 보자. 현대의 발전모식发展模式은 어떤 모식인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연료는 주로 석유와 석탄인데,  앞에서 토론하면서 이들이 모두 수류水类에 속한다고 성질을 정했었다. 그래서 우리의 현재모식은 실제로 직접  “수水”로 써 화火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이 어떻게 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수 가운데 진양真阳이 있고, 용화龙火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우리가 때고 있는 것은 바로 감坎 가운데의 진양真阳이다. 이 진양은 앞에서 말했듯이 지구의 생기를 따뜻하게 감싸 길러주는 것으로 지구 생명의 뿌리가 이것으로 자란다. 현재 우리가 이것을 캐내어 일반 땔감으로 쓰는데 이 진양은 재생될 수 있는 것일까? 이건 재생될 수 없다! 이것은 나무처럼 올 해 베어내었는데 내년에 다시 자라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를 캐서 하나를 써 버리면 하나만큼 줄어든다. 거의 다 캐내게 되면 감坎 가운데 진양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지구의 목숨줄을 튼튼하게 할 자원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때 지구는 참으로 노쇠해져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은 멸망을 눈 앞에 두게 된다.
  전통传统에서는 나무에서 불을 일으켰는데, 현대에 와서는 바로 물에서 불을 끄집어낸다. 나무에서 불을 일으키는 것이 과거의 주요한 에너지원이었는데, 이 나무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물이 살린다. 이것이 바로 수생목水生木,목생화木生火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결국 물이야말로 에너지의 원천이다. 왜 오행의 순서가 물에서 비롯되나? 아마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물이 에너지원이 시작되는 원천이라면 앞에서 말했던 불을 얻는 두 가지 방식은 어떻게 구별될까? 매우 중요한 하나의 구별은 바로 목생화木生火의 과정이 대자연에서 완전히 제어하고 파악할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무엇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수생목水生木,목생화木生火의 과정을 살펴보자. 우리가 나무를 베어 불을 낼 때 이 과정은 완전히 사람이 하는 일이라 자연이 그 정도를 파악하여 제한할 방법은 없다. 얼마를 베어내든 찍어내든 완전히 사람 마음대로이다. 그렇지만 이 나무의 전체 량은 완전히 자연의 손길아래 있다. 물이 얼마나 나무를 길러 낼지 나무의 크는 속도가 어떨지도 사람이 짐작할 수가 없고 완전히 물에, 자연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사람이 많이 베어낼 때 자연이 키우지 않으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입산을 막고 숲을 가꿀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수생목水生木,목생화木生火의 과정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그것이 매우 의미있는 과정이라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물에서 바로 불을 얻는다면, 감坎 가운데 있는 진양真阳을 불로 삼으면 이 과정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 과정은 자연으로서는 파악할 방법이 없고, 완전히 인류의 마음대로, 오펙OPEC의 마음대로인 것이다. 캐내고 싶은 대로 캐네면서 원유原油 값만 신경쓰년 되고 감坎 속에 진양真阳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랑곳 없다. 그래서 이 과정은 자연이 파악하고 제어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겠는가? 앞에서 우리는 UN환경보호기구가 일찌기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 기본조건을 이야기했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 두 가지 조건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조건은 자연에 들어맞는, 그리고 자연이 제어할 수 있는 그런 발전이다. 그래야만 발전이 지속될 수 있는데, 만약 자연에 어울리지 않고, 자연이 파악하여 제어할 수 없는 발전이라면 지속될 수가 없다. 노자老子가 왜 “도법자연道法自然”을 가장 높은 경지라고 강조한 것일까? 하나는 노자가 사람이 자연을 벗어나 마음대로 하려는 것을 걱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자연의 도를 따라야만 참으로 오래갈 수 있다고 알려주기 위해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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