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학문의 전승傳承
이어서 학문의 전승, 구체적으로 한의학의 전승을 이야기해보자. 여기에서 전승이란 말을 쓴 것을 비교적 구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하나의 학문을 온전히 전해 내려가게 하려면, 이를 오롯이 넘겨주고 이를 남김없이 이어받는 전승이란 과정이 반드시 잘 이루어져야 한다. 학문의 전승은 중요한 문제이므로 아래에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 토론해 보자.
1. 한의 현대교육의 모식模式-모델
전승을 현대적 용어로 바꾸면 교육인데 우리 먼저 현대의 한의 교육을 보기로 하자. 무엇이 현대 한의교육인가? 이런 현대의 구분은 당연히 중의고등원교中醫高等院校(전문대 과정)가 세워진 뒤 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의고등원교는 1956년에 계획을 시작했는데 , 그러면 지금까지 이미 40년이 되었다. 중의고등원교가 걸어온 이 40여년의 교육역정으로 우리는 그 이점과 폐해를 약간은 보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형식면으로 보자.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고등원교에서 배우는데, 그 채택한 교육형식, 교육방법이 기본적으로 양방 의과 대학과 차별이 별로 없다. 현재 모든 중의고등원교에서 양방과 한의의 두 가지 학문을 동시에 배우고는 있지만 형식으로 볼 때는 양방 의과대학과 무슨 별다른 구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현대 한의 교육은 실제로는 현대의학을 모방한 교육방식이다.
그렇다면 현대의학은 어떤 특색이 있을까? 교육이란 문제는 학과와 서로 연관이 있어 학과의 성질이 교육에서 어떤 모식을 채용할지를 결정한다. 앞의 첫 부분에서 양진녕교수가 일찍이 이야기했던 현대의학과 전통문화와 다른 하나의 매우 특수한 방면이 바로 그 수리 로직체계, 그 연역쳬계였다. 이런 로직체계는 매우 엄밀하며, 공리公理적 성격이 매우 강하고, 매우 투명하므로 교육할 때 매우 쉽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또 달리 구별되는 방면은 현대과학이 일종의 중개성中介性 과학이라는 것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으로 현대과학의 매우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중개는 저장의 기능과 복제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인류의 사유, 인류의 지혜는 모두 이런 일부 중개매체에 모아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가 바로 이런 중개체이다. 그 뒤 다시 중개를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개조하며 인류에게 봉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과학을 중개과학이라고 부른다. 이런 중개가 있기에 복제가 가능하여 컴퓨터는 기판의 설계로부터 출현한 뒤 대량 생산이 가능해 졌다. 이것이 바로 복제의 과정으로 다시 우리가 한 대 한 대 씩 새로 만들어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복제성複製性이 매우 강하다는 것인데 복제성이 규모성規模性을 결정한다. 현대 교육이 이렇게 큰 규모를 가진 것은 현대과학의 이런 특성에 잘 맞아 떨어진다. 또 다른 한 방면은 현대 과학은 분과가 아주 세밀하게 나누어져 있다는 것으로 이 또한 현대 교육의 분과성分科性이 아주 강하다는 특성을 결정한다.
근현대과학의 이러한 특성은 서양문화의 각 방면에서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그림 예술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서양의 유화 한 폭을 볼 때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 그것들은 우리에게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인체는 적나나하게 우리 눈앞에 드러나 어떨 때는 심지어 털구멍까지 뚜렷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동양화는 어떤가? 동양화는 인체를 그리지 않는다. 한 폭의 일반적인 산수화를 펼치면 노자老子가 황혜, 홀혜, 기중유상恍兮, 惚兮, 其中有象이라고 말한 것처럼 가는 비가 적시듯이 보일 듯 말 듯 아른아른하게 느껴진다.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서양화는 실제 대로 그리는 것을 중시하고, 동양화는 뜻을 담아 그리는 것을 중시한다. 하나는 척 보면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고, 하나는 아른아른 보이니 이것이 바로 동서문화의 차별을 만들어 낸다. 또한 이런 차별이 우리에게 동서문화의 교육, 한의와 서의의 교육에도 구별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한다.
현대 한의학의 교육을 보면 갈수록 세밀하게 분과화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한의학기초이론 과목도 몇 개로 나누려 하고 있고, 침구학도 경락학經絡學, 수혈학腧穴學, 구자학灸刺學으로 나누고 있다. 이런 학과의 분화가 원래 가겼던 이런 학과들의 교육질량과 교육효과를 높일 수 있을까? 규모로만 본다면 많은 학사, 석사, 박사들을 배출한 것에서 한의학교육이 확실하게 전에는 없었던 융성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현재 많은 중의원교들이 잇달아 대학으로 승급하고 있는 실정인데 규모는 커졌지만 과연 교육의 내용도 향상되었을까? 요 몇 년간 4학년 학생들이 실습에 들어가기 전에 내게 강의를 해달라고들 하는 과목이 있는데 그게 무슨 제목일까? 이 또한 앞에서 강의했던 ‘ 어떻게 해야 한의학을 잘 배울 수 있을까?’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들이 한의학에 대해서 아직 곤혹스러워 하며, 아직 모호하다고 느껴 실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연하기 때문이다. 4년 시간이 짧다고 할 수는 없다. 전에는 포보주蒲輔周 선생처럼 3년을 교육받은 뒤에도 개업을 한 경우도 있었다. 포선생은 15세에 할아버지에게 한의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그 3년 뒤에 따로 독립하여 개업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4년을 배우고도 곤혹스럽고, 모호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우리가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는 원인이다. 앞에서 우리가 학과의 성질이 교육의 모식을 결정한다고 했는데 이런 문제를 충분히 고려해 본 것일까?
-당시 중의는 대체로 4년제 였었다. 현대라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한의학을 현대에서 배우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우리는 6년을 배우지만 그래도 개업이 쉽지 않다. 한의학적 사고라야 한의학을 잘 할 수 있는데,현대는 어려서부터 현대 문명에 젖어 있어 한의학적 사고를 한의과 학생이나 한의사들이 받아들이고 지켜나가는 것이 자못 어려운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 (역자 주)
'사고중의思考中醫'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의학의 학습과 연구-8 (0) | 2025.01.28 |
---|---|
한의학의 학습과 연구-7 (0) | 2025.01.28 |
한의학의 학습과 연구-5 (0) | 2025.01.28 |
한의학의 학습과 연구-4 (0) | 2025.01.28 |
한의학의 학습과 연구-3 (0) | 2025.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