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한의학 전문 대학원에서 8년 근무하고 정년한 뒤 대구로 이사오게 되었다. 대구는 내가 나서 국민학교를 마쳤던 고향 청도와 가까운 큰 도시로 국립의료원 의무기정으로 특채되어 20년 가까이 근무하기 전에 약 8년 정도 개업하고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사온 뒤 반 년 정도 일없이 빈둥거리다가 경제적 수요와 무료함이 괴로워 마침 자리가 난 신천 동신교 가까운 요양병원에 다닌지 5년이 되어간다. 근무조건은 근래 이년 간은 6시 반 출근 오후 한 시 퇴근으로 정하고 있는데 출근할 때는 지하철과 도보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퇴근할 때는 무린 줄 알면서도 걸어서 약 4시간 반 걸리는 집까지 걸어가기를 시도하여 대개 일주일에 닷새 정도는 걷고 있는 셈이다.
신천의 갓길을 따라 걸어 50여분 지난 뒤 앞산자락길에 접어들면 녹음과 더불어 한 3 시간 정도 걷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신천 에서는 한창 시절의 내 허벅다리보다 더 굵은 잉어 떼들이 퍼드득 거리고, 잿빛 혹은 흰 빛의 왜가리가 구부정하게 서서 송사리들을 노리고 있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이며, 간혹 자라가 해바라기하는 꼴도 볼 수 있다. 산 길을 걸을 때는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나 휘파람새들의 설익은 휘파람소리, 뻐꾸기 소리들을 들으며 뱀이나 다람쥐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피할 수 없이 큰 길가를 걷게 되는 때가 되면 맑은 물, 푸른 숲의 선경에서 차 소리, 사람 소리 가득한 속세를 마주하게 된 느낌이 든다.
우리 요양병원에 입원하시는 분들은 대개 80세 이상인데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여성 분이 남성보다 약 네 배 정도이며 남성은 대개 80대가 드물다. 혹 5,60 대 환자도 가뭄에 콩 나듯 입원하는 때가 있는데 오래있지 않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 하거나 돌아가신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두 분 다 치매를 앓으셨기에 환자들이 남같지 않은 마음에 모두 낫게 해 드리고 싶지만 부모님도 치료해 드리지 못했던 나는 회진 때가 되면 늘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절망한다. 좀 더 많이 배우고 열심히 살았더라면!
그렇지만 지금도 회진 시간만 지나면 다시 잊어버리고 게을러진다.
우리 요양병원은 서민이 대상이라 시설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간병인들이 환자들을 마구대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일이 워낙 힘든데다가 간병인 나이도 70대가 대부분이라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그래서 벌어놓은 돈이 많지 않은 나는 절대로 요양병원에 갈 정도까지 살지는 말아야 겠다고 자주 생각한다. 집에 따로 모시기에는 돈 없고 힘겨워 , 어쩔 수 없이 맏겨 놓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니 현대판 고려장이 아닌가? 그들이 매 달 부담하는 비용도 아마 무거울 것이다. 환자들이 사물함에 붙여 놓은 손주, 증손주들의 사진이 눈물겹다. 부모님에게 받은 것이 많은 나도 잘 모시지 못했는데, 잘 뒷받침해주지 못했던 자녀에게 무슨 염치로 아이들에게 고려장의 멍에를 지우겠는가! 내가 걸을 수 있고 내 힘으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 때 까지만 살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인생을 반추하고 후회하며 그 동안 저질렀던 숱한 잘못에 식은 땀이 흘리다가도 혹 즐거웠던 추억에 잠겨 미소를 머금기도 하며 짐짓 철학자가 된 양 삶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산자락을 걸어 큰 길에 들어서면 바로 눈 앞을 스치는 어지러운 세상의 모습에 그만 짜증난 늙은이로 바뀌는 스스로에게 아연한다. 저래서는 안되지 않는가? 왜 저러지? 제 주제는 돌아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가장 문맹율이 낮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통계가 매우 잘 못된 것이라 느낄 때가 많다. 그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비근한 예가 바로 우측통행이다. 전에는 좌측통행을 했지만 요즘은 우측 통행을 하란다. 그래서 길 오른 쪽으로 붙어 걷는데 굳이 맞은 편에서 왼 쪽으로 걸어와 비키라는 듯이 도끼눈을 치켜뜬다. 그리고 또 교통규칙을 밥 먹듯이 어기고 보행자를 위협하는 운전자들이나, 개를 모시고 산책나온 시종들을 보면 이런 통계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눈에 크게 띄어 속 상하다.
어떤 일들이 가장 눈에 거슬리는가?
첫째, 건널목 메너이다. 내가 운전할 때는 혹시 건널목에 사람이 있는지 보고 신호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걷는 사람으로서 보는 운전자들의 메너는 정말 나를 냐화나게 한다. 버젓이 신호를 받고 건너는 사람이 있는데도 쌩 지나갈 때는 정말 깜짝 깜짝 놀라게 된다. 다행히 요즘은 우회전 할 때 반드시 멈췄다가 가도록 하는 법이 생겨 좀 덜해지긴 했는데 그렇지만 여전히 막무가내인 운전자들도 숱해 금융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많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둘째, 일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그들은 인도를 쌩쌩 달리면서 보행자는 안중에도 없다. 좁은 인도를 맞은 편에서 달려오다가 미쳐 피하지 못하면 도끼눈을 뜨고 흘겨 본다. 뒤에서 다가오는 자전거에도 놀랄 때가 많은데 어떤 사람은 뒤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꾸짖는 바람에 간떨어질 뻔 한 적도 있었다. 자전거는 바퀴가 달려 있기 때문에 차도로 달려야 한다고 본다. 시골도 아닌 도시에서 인도로 달릴 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앞에 사람이 있으면 내려서 끌고 지나간 뒤 다시 타는 시민의식은 언제쯤 생기려는지. 그러니까 자전거지란 말도 생긴 모양이다. 얼마전 차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백인 여성을 본 적이 있는데 역시 자전거 문화가 몸에 배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무척 부러웠다.
셋째, 애견인들의 사랑이다. 개는 나도 옛날 어렸을 때 키워 본 적이 있어 그렇게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개를 유모차 같은 달구지에 싣고 다니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 며칠 전에는 유모차에 실린 개가 나를 보고 계속 짖어대어 내가 그렇게 도둑처럼 보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도척의 개가 공자를 보고 짖었다는데 하고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힐수 밖에. 새벽에 걷다 보면 개똥이 길에 밟히길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는 수가 가끔 있다. 아마 그 개 주인은 어두워지면 개똥 치우는 것이 갑자기 싫어지는가 보다. 개를 끌고 다닐 때는 개똥을 치울 마음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 개목줄과 입마개에 관해서도 개주인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보기에 덩치크고 우락부락하며 주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세 보이는 개에게는 꼭 입에 마개를 씌우고 다니길 부탁드린다. 목줄은 어째서 그런 걸 팔게 놔 두는지 모르겠지만 돌돌 풀려 한없이 늘어나는 목줄을 채운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제발 선진 애견문화를 가진 나라 사람들 처럼 짧은 목줄을 매어 단속을 잘하면서 데리고 다니길 바란다. 요즘도 개에 물려 죽거나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 관한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개나 개주인이나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만 편하고 나에게 이롭기만 하면 다른 사람은 불편해도 피해를 입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사회를 각박하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듣기로 옛부터 예의의 고장으로 군자가 가득한 나라라고 칭송되어 왔다고 한다. 서로 생각해 주고 서로 양보하며 남의 어려운 일을 내 일처럼 도우는 사람도 물론 많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서 다같이 즐거운 대동사회를 이루었으면 하고 절실히 바란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나 스스로도 남 들에게 수없는 폐를 끼치고 살아왔던 일들이 다시 선하게 떠오르면서 남들도 나를 비평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란 생각에 뜨끔해 진다. 남의 잘 못이 한 가지면 자기 잘 못은 열 가지라고도 하며, 달아메인 돼지가 누운 돼지 나무란다고 했다. 남에게 지적질 할 때는 사리를 분명히 따지면서 내 잘못에는 관대해지지 않도록 늘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 동안 적조했던 우리 60회 동기들의 건강한 행복과 이미 타계한 동기들의 명복을 빌면서, 동기회장의 격려에 힘입어 졸필로 대구 한 구석에서 근황과 소회의 편린을 전한다.
2023년 5월 29일 밤 11:35 성우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