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경(驚)
경은 현대 정서심리학에서 말하는 느낌 중에 가장 앞서는 과정으로 사물의 변화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을 때의 놀람이며, 감각의 과정이다. 갑자기 큰 자극이 닥치면 기란(氣亂)해지게 되어 병리적인 기전이 나타나지만 만약 몸과 마음이 튼튼하거나 자극의 양이 경미하면 기운이 집중되게 될 것이니 이는 생리적인 반응이 될 것이다.
방20,34)은 경이 미처 정신적인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닥친 갑작스런 자극에 대응하고자 극도로 흥분, 불안해진 상태의 일종의 생명현상으로 본질이 기의 흐트러짐이기 때문에 정지가 존재할 상태가 아니며, 객관사물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과정이면서 정서를 생산하는 일종의 전주곡일 뿐이고, 또 경의 본질인 기란은 오행에 귀속되지 않아서 칠정 중의 다른 정지표현과 구별되며 한의(韓醫) 정지범주에 포함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장에도 소속되지 않으므로 감정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렇더라도 경은 놀람으로 직접적으로 정신에 충격을 주는데, 놀람은 생물이 살아가기 위한 본능적 반응이며 표정으로 나타나고 기의 흐름을 변화시키므로 정신활동의 한 과정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백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경은 오신 중 백의 영역과 일치하며, 또 오지의 선행감정으로도 볼 수 있다.
2)오지五志
칠정은 희노사비우공에 경을 더한 것으로, 희노우사비공은 오장의 생명활동이 기기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만들어낸 감정인데 다섯 가지가 되어야 할 것이 여섯 가지로 되어 후세 학자들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이 오장의 기기변화로 일어난 감정이 바로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본 정서의 정의와 거의 겹친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욱 오지를 정확히 비정할 필요가 있다.
내경에서 오지 발생의 기전이 자세하게 밝혀져 있지 않고, 또 오지를 확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내경의 기본적인 이론체계인 기일원론과 음양오행론에 따라 그 기기 변화를 유추하여 살피고자 한다.
간목기(肝木氣)는 수기(水氣)로 인해 폐장(閉藏)되어 있던 양기가 용출(湧出)하는 기운으로 음기의 속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많은 양기가 생성된다. 이 과정은 억압에 대한 반발이며, 모순과 대립의 과정으로 계절에 있어서는 봄이 된다. 봄은 그래서 목기의 체현으로, 만물이 싹트는 계절이며 발진(發陳)이라고 불린다. 이때의 용출하는 기운으로 나타나는 정서가 바로 노정(怒情)으로 이는 기성즉노(氣上則怒)라고 표현될 수 있다. 거통론에서 노즉기상(怒則氣上)이라 한 것은 정서가 기기의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이때의 기전은 생리적이다. 치솟던 목기는 어느 시기가 지나면 흩어져 퍼지게 되는데 이런 분열과 무장(茂長)을 특징으로 하는 기운을 화기(火氣)라고 하며 인체에서는 심(心)에 속한다. 목기에서의 순수하고 내실했던 용출력이 외관(外觀)을 수식하는 치장과 느긋함으로 바뀌게 되어 희정(喜情)이 나타난다. 계절로는 여름으로 번수(蕃秀)라고 하며 양기의 왕성함이 밖으로 드러나 외면은 화려하나 내면이 공허해지므로 쇠락의 바탕이 된다. 목, 화의 두 과정은 모두 생장하는 양의 과정으로 이제 음양의 승강이치에 따라 음의 과정으로 들어감으로써 변화의 도리를 완성하게 된다. 폐장에서 발진으로, 발진에서 번수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이를 변화시키는 힘이 필요하지만, 양의 과정에서 음의 과정으로, 생장(生長)에서 성숙(成熟)으로 바뀌는 이즈음에는 더욱 큰 힘이 필요하다. 이 때는 생장을 정지하고 성수(成收)로 전환하는 때일 뿐 아니라 화기(火氣)와 금기(金氣)가 부딪히는 때이기 때문이다. 발전이 끝나 성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화기를 금기로 포장(包藏)하려고 해도 화가 금을 거부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를 중재(仲裁)할 힘이 필요한 것인데 이것이 토기(土氣)라고 하는 비장(脾臟)의 기운이다. 토기는 화해(和諧)와 중재의 기운으로 통일을 위해 양 방에 대한 무한한 배려가 있어야 하므로 정서로는 사모(思慕)의 사가 토정(土情)이 되는데 우리말로는 이 정서가 곧 그리움이다. 계절로는 환절기이며 네 환절기 중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때가 가장 중요하여 장하(長夏)로 표시된다. 공정한 토의 작용으로 통일의 단계로 접어들면 양기가 하강하게 되면서 표면은 굳어져 양을 포장하기 시작하는데 이 기운을 금기라고 하고 오장에서는 폐이며 계절로는 용평(容平)이라고 하는 가을이 된다. 이때는 확산되었던 화기가 거두어지고 아름답던 모든 것들이 쇠퇴하면서 천지가 쓸쓸한 기운을 띠게 되므로 비정(悲情)이 생긴다. 그러나 아직 속까지 굳어버린 것은 아니어서 금기에서는 양기가 아직 강하다. 만물의 수장(收藏)작용은 토기와 금기의 도움으로 수(水)에 이르러 비로소 통일작업을 완수하고 내부 깊숙이까지 완전히 응고하게 되는데 이로써 양은 완전히 음속에 수장되어 다음 변화를 창조하는 기틀을 만들어 낸다. 이때가 계절로써는 폐장이라 하는 겨울로, 생명들은 이 때 정(精) 혹은 핵(核)의 존재로 다음 생을 예비하면서 바짝 엎드려 있게 된다. 이런 마음이 바로 두려움으로 공정(恐情)이며 이런 변화를 인체에 있어서 맡아보는 곳이 신장이다.15,35,36)
거통론에서 감정으로 인한 기의 변화를 말했는데, 많은 의가들이 이를 병리변화로만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펴본 오행의 변화로 볼 때 거통론의 기술에서 노즉기상, 희즉기완, 비즉기소, 공즉기하, 경즉기란, 사즉기결(怒則氣上,喜則氣缓,悲則氣消,恐則氣下,驚則氣乱,思則氣结)은 특별히 병리적 변화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감정변화가 기기를 변화시키는 기전을 설명한 것으로, 또한 이 6가지 정서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그 뒤에 따르는 병기(病機)를 다룬 부분은 앞 문장의 주석적인 성격이 짙어 착간(錯簡)을 의심케 한다.
이렇게 볼 때 오지는 오장의 기기변화로 나타나며, 오지 또한 기기의 변화로 장을 변화시킴을 알 수 있다. 간의 지는 불끈하고 치솟는 느낌으로 노정이 되며, 심은 그 아름다움과 느긋한 기운이 정서에서는 기꺼운 희정으로 나타난다. 토기는 끌어 모아 변화시키는 힘으로 그리움이란 비정(脾情)을 자아낸다. 금기는 양기의 쇠퇴와 바깥 세계의 쓸쓸함으로 슬픈 느낌을 만들고, 겨울의 황량함은 두려움이 되어 수장(水臟)인 신의 정서가 된다. 이러한 정감발현의 기전은 거통론에서 말하는 기상, 기완, 기결, 기소, 기하의 기전과 완전히 같으므로, 음양응상대론에서 희, 노, 사, 우, 공을 오지라 하고, 옥기진장론, 선명오기편에 異說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남, 기쁨, 그리움, 슬픔, 두려움으로 번역되는 노, 희, 사, 비 공이 바로 내경 정서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오지의 정확한 이름이라고 생각된다.15)
3)우(憂)
이렇게 칠정에서 경과 오지를 제외하면 우가 남게 된다. 비록 내경에서 오지에 속한다고 한 곳이 몇 편이 되지만 오지를 비노사비공으로 볼 때 왜 우가 오지의 하나로 되어 있었는지가 의문으로 남게 된다. 이에 대해 내경이 한 시대 한 사람의 저작이 아니고 여러 다른 학파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논문들이 모아진 것이며, 또한 여러 차례의 산일과 교정, 보충을 거쳐 온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내경 전체를 관통하는 통일된 이론핵심이 부족하다는 견해37)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곧 황제내경은 그 이전까지 쌓인 풍부한 의학지식과 경험들이 서한(西漢)시대에 정기론(精氣論), 음양오행학설 등의 이론체계아래 정리되어 하나의 책으로 엮어진 것으로 그 연대는 기원전 99년에서 기원전 26년 사이로 추측되는데,38) 이 때 사계절 즉 사시이론에서 동중서의 의해 상생이론이 덧붙여진 오행이론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혼돈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다. 이 우를 넣어 칠정을 만듣 것은 진무택의 탁견으로 그 의미에 대해서는 유사칠정의 오신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4) 칠정의 문제점
칠정은 이제까지 주로 병리적인 관점으로 해석되었지만 칠정의 기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리적 인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윤39) 등은 한의학에서 병을 일으키는 감정을 칠정으로, 이러한 병리적 손상과 관련 있는 손상을 칠정상(七情傷)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그 중 가장 광범위하게 인지되는 것이 기기(氣機)의 실조로 일어나는 신체증상을 주로 다룬 소문 거통론의 칠정상개념이라고 보았다. 이 개념은 기 중심모델로서 감정의 과극이 기기의 실조를 일으키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칠정은 ‘스트레스’의 개념과 유사하여 기기실조를 일으킨 시작점으로서의 의미가 있을 뿐으로 정신이 이 과정에서 하는 작용과 기전이 불명확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와 달리 정신적인 문제로 일어나며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영추 본신편의 패턴이 있다고 보았으며, 이 패턴이 ‘문제의 발생-감정발생-문제의 미해결로 인한 병리적 상태(정신/신체) 유발’의 과정으로 질환을 다루지만 이 역시 과정과 원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보고 현대 정신의학적 개념을 도입하여 융(Jung)의 신경증에 대한 고찰에서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이런 칠정내상개념은 한의 심리학의 생리부분에 대한 해석과 기기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생긴 것으로 정지(情志)의 병을 단지 희노우사비경공칠종 정지에만 국한시켜 칠정을 치병정지(致病情志)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정 스스로의 활동이나 그 지나친 반응이 인체 기능에 영향을 주는 병기에 집중하다 보니, 칠정의 과도한 반응을 일으키는 개체 내외의 원인과 개체가 가지고 있는 심리나 생리적 상황의 특수성이 칠정치병에 미치는 작용에 대한 인식을 소홀히 하거나 빠뜨리고 있다.
그래서 이40)는 정지학설이 이론의 적응범위가 좁고 이론의 철저성이 결핍되어 임상을 지도하는 세 가지 한계를 말한 것이다. 첫 째는 단일 정지가 아닌 복합 정지로 인한 발병이 적지 않아 어떤 특정 정지가 특정 장기를 상해한다는 이론을 적용하는데 무리가 따르므로, 단일 정지에 특정 장기를 완전히 묶어버리기엔 한계가 있고, 둘 째는 정지상승요법을 두루 적용하기에는 우연성, 특수성이 많아 적용에 한계가 있으며, 재현성이 부족하여 보편적으로 사용하기가 어렵고, 셋째는 실제로 정지학설 원리를 준수해서 치료한 의안도 많지만 오히려 원리에 거슬러 치료한 경우도 많아 칠정학설의 원리로 모두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한41)은 이 외에 4 가지의 칠정학설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 제시하였는데, 첫째는 칠정을 정량화(定量化)하고 칠정의 시공을 초월하는 표준을 만들어 칠정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며, 둘째는 뇌심설(腦心說)과 의학심리학을 연구하여 칠정학설을 발전시키는 것이며, 세 째는 근, 현대의 심리학에서 연구된 정감、정서 지식을 받아들여 한의학의 기초이론을 제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이상적인 동물모형을 만들어 동물실험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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