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의가의 칠정
한의학의 원전인 내경에서는 거의 모든 편에서 정서와 관련된 부분이 산견되지만, 정서의 생리, 병리는 주로 소문의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 거통론(擧痛論), 옥기진장론(玉機眞藏論)과 선명오기편(宣明五氣篇), 천원기대론 (天元纪大論), 오운행대론(五運行大論)과 영추의 본신(本神), 구침론(九鍼論)에서 다뤄지고 있다.
그 중 음양응상대론과 천원기대론에서는 자연에 사시와 오행이 있어 생장수장(生長收藏) 과 한서조습풍(寒暑燥濕風)이 나타나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오장(五臟)이 있어 5가지 기운의 변화로 각각 희노비우공(喜怒悲憂恐), 희노사우공(喜怒思憂恐)이 만들어지는데, 오행이 돌아가며 오위(五位)에 분포함으로써 기후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듯이 인체가 오장의 기기변화로 감정이 나타나는 것도 생리적 변화로 보고 이렇게 나타나는 다섯 가지 감정을 오지(五志)라고 하였다.13,14) 한편 오운행대론과 음양응상대론에서는 각 장에서 발현되는 지를 희노사우공이라 하면서도 노의 상극 감정으로는 비를 말하였고 에서도 오장에서 발현되는 오지를 각각 말하면서는 희노사비공이라 하여 오지의 정명에 혼란이 있다. 이로 보아 내경에서는 이름이야 어떻든 다섯 가지의 감정을 기본 정서로 본 것으로 이것이 오지설의 근거가 되었고, 거통론에서는 특별히 희, 노, 비, 공, 사, 경 육기의 기기변화를 해설하여 이 6종의 감정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송 진무택이 거통론의 육기에 우즉기취(憂則氣聚)라고 하는 기기변화를 더하고, 이를 칠기(七氣)라 함으로써3) 한의칠정학설(韓醫七情學說)의 형태가 갖춰져서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1). 칠정 각론15)
①노(怒)
노는 기상(氣上)으로 기가 상승하는 것인데 이는 봄에 상응하는 기운이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므로 모든 식물들이 싹을 틔우는데 이에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막매사16)는 원양(元陽)이 봄에 올라오게 되는데 양기가 오르려 하나 양의 반이 밑에 있고 음의 반이 위에 있어 얼른 오르지 못하고, 마땅히 왕성해야 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으므로 이를 창통하게 하기 위해 우레(雷霆)가 생긴다고 하고, 이처럼 사람도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이 부글부글 끓게 되는 것을 노의 모습이라고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노는 봄과 상응하는 간의 지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노는 좋지 않은(負的) 감정으로 인식되어 주로 노로 일어나는 병리에 대해 설명되고 그 생리적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고려는 생략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만일 노의 기운이 없으면 겨울의 응칩(凝蟄), 폐장(閉藏)된 기운을 풀어낼 길이 없으므로 노는 생리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는 일상적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생리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강하면 노기가 폭발하여 갑작스런 기의 상승으로 급성 질환을 야기하는 폭노(暴怒)가 되고, 이를 억눌러 참으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화병 등으로 터져나오게 되는 울노(鬱怒)가 된다.13,17)
②희(喜),
희는 기완(氣緩)으로 기가 화완(和緩)하여 기분이 좋은 것이다. 여름에는 왕성한 양이 위에 있고 미약한 음이 아래에 있어 양기가 가득하므로 음을 가볍게 여겨 찌는 듯 더우면서 모든 것이 펴지고 뻗어 나가게 되는데, 사람도 하던 일이 다 이루어진 것 같아 기쁘게 되는 희의 모습이 나타난다.16)그러나 지나치면 기기(氣機)가 환산되어 심신(心神)이 허약해지게 되므로 정신을 집중할 수 없고, 정신이상, 광란 등의 증상이 생기게 된다.13)
③사(思)
사는 기결(氣結)로 마음에 둔 바가 있어 정신이 그곳으로 쏠리는 것이다. 사를 사고(思考), 사유(思惟)로 인식하면 칠정정지의 범위에 속할 수가 없다.13) 그렇지만 왕18,19)은 인식심리학적 관점을 끌어들여 사고의 의미를 가진 사가 인지과정의 중심에 있어 인지(認知)가 심리활동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과 같이 칠정의 사가 중앙 비토(脾土)로서 그 밖의 육정(六情)의 생성과 활동에 관건적인 영향을 발휘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한편 두13)는 사를 비(悲), 우(憂), 수(愁) 등 소극정서의 개괄이라 하고 상비(傷脾), 기결(氣結) 등의 병리기전으로 보아 사는 병을 일으키는 정서이며 그 실질이 우울이 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고, 교17)는 사가 사려과도를 가리키며, 생각하던 문제가 풀리지 않거나 사정이 아직 해결되지 않던지, 또는 간과 비가 기의 울체로 기능이 저하되었을 때 생기는 걱정되고 불안한 심정으로 사려와 불안의 복합정서라고 보고 있다.
④우(憂)
막16)은 원양은 가을에 거두어지는데 가을에는 양의 반이 위에 있고 음의 반이 밑에 있어 양기가 날로 약해지므로 음기의 박해를 받는 가운데 날로 음기가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처절한 기운이 드러나는 것이니, 사람도 이에 응해 일이 실패할 것처럼 느껴져 그 정지가 쓸쓸(殷殷)한 것이 우의 모습이며, 가을이 폐에 응하므로 폐의 지가 우가 된다고 하였다. 두13)는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심정이 가라앉으면서 자비감(自卑感)이 드는 복합정서상태라 했으며, 교17)는 여기에 더하여 칠정을 오장에 나누어 배속할 때 우와 사(思)는 다 같이 비지(脾志)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방20)은 우와 사가 같은 종류의 정신상태라고 하였다.
⑤비(悲)
비의 기소(氣消)는 양기가 줄어드는 것이다. 양기가 줄어드는 것은 바로 신(神)이 부족해지는 것이니 절로 슬픈 마음이 들게 된다.이는 생리적 작용이지만 지나치면 肺를 상하여 폐기를 선강(宣降)하지 못하고 모상(耗傷)하게 되는 병기변화를 일으킨다.13)대개 우(憂)와 비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고 보고 다 같이 폐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비는 우와 달리 좋아하던 사람이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나 추구하던 원망이 깨어졌을 때의 슬픈 정서체험이므로13,17) 각기 다른 정서이다.17)
⑥공(恐)
공은 기하(氣下)로 기가 하강한 상태이며, 심하면 기불행(氣不行)한다. 원양은 겨울에 갈무리되는데 미약한 양이 아래에 있고 왕성한 음이 위에 있는 상태이므로 양기가 음이 해칠까 봐 스스로 겁내어 조용히 피해 있는 것으로, 사람도 일이 이미 실패해버린 것처럼 두려워하는 것이 공의 모습이며, 또 겨울이 신(腎)에 응하므로 신의 정지가 공이 된다.16) 공은 위험을 만나 대응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두렵고 불안한 정서체험이며,13,17)자기 스스로 겪지 않아도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정서체험이 일어난다.13)
⑦경(驚)
경은 기란(氣亂)으로 마음 둘 데가 없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생각이 정해지지 않는 것이다. 대개의 학자들이 경을 일상이 아닌 사변을 갑자기 만나 정신적으로 바짝 긴장하는 일종의 정감체험으로 보고 있으며, 공(恐)이 내부에서 오는 자극으로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을 경우의 정서인데 반하여 경驚은 외부에서 모르는 상태에서 겪은 사건으로 나타나는 정서라고 하였다.13,15,21,22,23) 이24) 등은 정지개념이 정(情)과 지(志)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칠정은 기체가 안팎의 자극을 받은 뒤 밖으로 표현되는 칠종의 다른 정감들로 오지의 기초 위에 생산되어 풀어져 나온 병의 원인이며, 그래서 경과 공은 정과 지의 관계로 공은 신지(腎志), 경은 심정(心情)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방20)은 경이 미처 정신적인 준비가 안된 에서 닥친 갑작스런 자극으로 정신이 고도의 준비상황에 놓여 흥분, 불안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일종의 생명현상인 경은 본질이 기의 흐트러짐이기 때문에 정지가 존재할 상태가 아니며, 객관사물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과정이면서 정서를 생산하는 일종의 전주곡일 뿐이라고 보았다. 경의 본질인 기란은 오행에 귀속시킬 수가 없으며 이 때문에 칠정 중의 다른 정지표현과 구별되며 한의(韓醫)의 정지범주에 포함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장에도 소속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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