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안녕하세요? 이어서 강의하겠습니다. 먼저 강의에서 태양축수증을 강의하고 또 태양축혈증의 첫 번째 증후인 도핵승기탕증을 강의했습니다. 태양축수증에 대해서 우리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축수증의 형성원인은 태양표사가 경을 따라 리裏로 들어가 방광의 기화기능氣化機能에 영향을 끼친 것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표증을 앓는 기간 동안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 것일 수도 있는데, 태양표증을 앓는 동안에는 방광의 기능이 비교적 떨어져 있어 많이 마신 물이 방광에서 미처 다 기화되지 못하고 하초에 머물게 됨으로써 방광의 기화를 더욱 힘들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형성 원인이 모두 방광의 기화가 순조로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이렇게 방광의 기화가 불리하게 되면 폐수를 내보내는데 장애가 일어나 소변불리小便不利, 소변소小便少가 나타납니다. 방광의 기화가 어려워진 뒤로는 진액이 제대로 화생될 수 없어 충분한 수포상승輸布上承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위쪽에서는 구갈口渴、소갈消渴、갈욕음수渴欲飲水, 번갈煩渴과 같은 진액결핍津液缺乏으로 인한 증후가 드러납니다.
위로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데 아래로는 소변이 적어지면서 수액이 체내에 모여 머물게 됩니다. 이렇게 소변이 잘 안 나와 수사가 상역할 때, 중초기기中焦氣機를 더디게 하면 心下痞 증상이 같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런 증상을 후세 의가들은 수비水痞라고 했고, 위胃가 화강和降을 하지 못하면 목이 말라 물을 마셔도 바로 토하는 증상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런 증상을 중경은 수역水逆이라고 했습니다. 수액이 하초에 쌓여 하초의 기기가 제대로 흐르지 못함으로써 방광이 있는 소복부少腹部가 고리급苦裏急한 특징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당연히 맥부나 맥부삭脉浮數, 신미열身微熱과 같은 표증이 있어야만 하는데, 이런 증후는 외유표사外有表邪하고, 리유축수裏有蓄水한 증상에 속하므로 치료할 때 오령산五苓散을 써서 외소내리外疏内利하여 표리양해表里兩解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오령산은 발한시킬 수도 있으면서 리뇨利尿도 하게 하는 처방이지만 리뇨가 위주입니다. 그래서 오령산을 외소내리外疏内利하여 개귀문開鬼門, 결정부潔淨腑하므로써 표리동치表裏同治하는 처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태양부증의 두 번째 종류는 혈분血分의 증후로 태양표사가 풀리지 않고 리裏로 들어가면서 열熱로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사기가 리로 들어간 뒤 열로 바뀐 것일까요? 아니면 열로 바뀐 뒤 리로 들어간 것일까요. 역대 의가들은 대체로 이 두 가지 다른 해석 중 하나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온병温病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열로 바뀐 뒤 리로 들어간다고 말하면서 표에 있던 한사는 먼저 열로 바뀐 뒤라야 비로소 리裏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한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표에 있던 한사가 리로 들어간 뒤에 리裏에 있는 양열陽熱, 양기陽氣로 인해 양을 따라 열로 바뀐다고 보므로 늘 습관적으로 리에 들어간 뒤 열로 바뀐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습관에 따라 아직은 표사가 리로 들어간 뒤 열로 바뀌면서 하초에서 혈과 같이 얽힘으로써 태양축혈증이 만들어진다고 보기로 합니다.
우리는 전번 수업의 마지막에 태양축혈증의 첫 번째 증후를 강의했는데 그것은 혈과 열이 처음 얽혀 열세熱勢는 심하면서도 급하고 어혈瘀血은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경우였습니다. 그 임상증상은 그 하나가 정신증상으로 기인여광其人如狂이었는데, 그것은 혈분의 어열瘀熱이 경맥을 따라 위로 올라가 심신心神을 어지럽힘으로써 심주신지心主神志의 기능을 실조시켜 만들어진 증상입니다. 또 하나의 증상은 소복급결少腹急結로, 어열이 소복, 하초에 얽힘으로써 하복부의 기체혈결氣滞血結을 일으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양방광축혈증의 첫 번째 증후證候는 바로 이 두 가지를 주증主症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혈과 열이 처음 얽혀 열세는 중하면서 급하고 어혈은 금방 형성되었기 때문에 치료할 때는 도핵승기탕桃核承氣湯을 써서 사열瀉熱을 위주로 하고, 화어化瘀를 겸합니다. 도핵승기탕 처방은 조위승기탕調胃承氣湯이 기본처방이라 사열을 위주로 하면서 여기에 도인을 가하여 활혈화어하고, 계지를 가하여 개결기開結氣합니다. 거의 다 한량한 약물들인데 그 중에 하나의 온통溫通하는 약을 넣음으로써 화룡점정하게끔 한 것입니다.
태양축혈증은 임상에서 볼 때 외감열병의 병증 중에 도대체 어떤 증후에 속할까요? 동일한 외감병증을 양방과 한방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조사해 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유행성출혈열流行性出血熱 환자에게서 정신광조精神狂躁,소복급박부적少腹急迫不適과 같은 증상이 나타났을 때 양의는 이것을 비뇨계통의 미순환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하고, 한의는 태양축혈증이라고 하는 보아 한의사와 양의사 간에 결코 서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한의사가 도핵승기탕이나 저당탕을 쓴 뒤 정신증상이 개선되고 소복부의 증상이 완해되었는데 한의사는 태양축혈증이 나았다고 말했고, 양의사는 한약을 쓴 뒤 비뇨계통의 미순환장애가 풀린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고 상한론 중에서 묘사한 태양축혈증은 외감열병 과정 중에서 박테리아 혹은 바이러스의 독소자극으로 비뇨계통의 미순환장애가 생긴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큰데, 그것이 신장기능에는 결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비뇨계통의 미순환장애때문에 매우 견디기 힘들게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핵승기탕은 임상에서 자주 응용됩니다.
20여 년 전이라고 생각되는데 22세의 한 젊은 여성을 그 어머니가 데리고 진료받으러 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병이었을까요? 매번 월경기가 되면 답답하고 불안해져서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할 정도였으며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병이 얼마나 됐나요?" "14살 때 처음 생리가 시작됐는데, 첫 번째 생리 때 답답하고 불안하며 조급한 마음이 들었었어요. 그 뒤로 부터는 늘 생리가 나오기 전부터 앉으나 서나 불안하다가 생리기간 중에는 감정조절이 안 되어 크게 다투거나 이리 저리 서성거리다가 심할 때는 맨발로 큰 길로 나가 뛰어다니기도 해요." "생리가 끝나면 정상으로 돌아오나요?" "평소와 같이 공부도 하고 일도 할 수 있어요." "병원에서는 뭐라고 진단하던가요? 어떤 치료를 받았죠?" "북경시에 있는 정신병원은 다 가 봤는데, 전기쇼크요법만 안 써 봤지 정신분열증치료제는 다 써 봤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어요." "생리는 정확해요?" "정확치 않아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 정기적이지 않아요." "언제 생리가 있을지 짐작할 수 있나요?" "알 수 있어요. 답답하고 싱숭생숭하면서 대변도 잘 안 나오고 밥맛도 없어지면 곧 생리가 있을 것이며, 제 병도 곧 발작할 거라고 알게 되요." "이 병을 양의들은 뭐라고 진단했죠?" "양방병원에서는 주기성정신성분열증周期性精神性分裂證이라고 진단했어요." 모두들 정신분열증이 잘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단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되면 그 일생이 우리 정상인처럼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병은 늘 사회능력을 떨어뜨립니다.
나도 이 정신분열증에는 매우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병을 치료한 경험이 별로 없는데 20여 년 전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죠. 먼저 생리를 바로 잡는데서 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생리에 핏덩이가 많나요?" "많아요." "생리 전에 몸에 어떤 증상이 있나요?" "생리 전에는 배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있을 때도 시원하게 나오지 않으면서 답답하고, 마음이 안정이 안 되면서 짜증이 나는데 그러고 나면 변이 굳어져요. " 음식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자세히 물어 보았더니 입이 쓰다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생리 전에 이런 증상들이 있기 전에 이 약 세 첩을 드세요." 하고는 도핵승기탕을 썼습니다. 대변이 굳은 것을 보고 쓴 거죠. “이렇게 약 세 첩(3일분)을 먹는데 만약 이틀 째 2첩 째를 다 먹었을 때 생리가 시작되면 생리 첫 날에는 세 번째 첩을 먹을 수 있으므로 다 드세요. 만약 세 첩을 먹고 나도 생리가 없거나, 아니면 막 있을 것 같다면 다시 한 첩을 더 지어가시는데, 생리가 나올 그 날 까지 계속 그렇게 하세요. 약을 다 먹지 못했는데 생리가 시작되더라도 생리 시작 첫 날까지는 먹어도 됩니다. 둘째 날 뒤로는 먹지 마세요." 첫 번째 월경주기에는 세 첩을 지어가서 약이 떨어진 다음날 이틀째 약이 없다고 했는데 뜻밖에 그 날 바로 생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약을 먹을 때 대변이 아주 잘 나와서 첫날 약을 먹고 나서 대변을 하루 3, 4번 보았고, 이틀 째는 2, 3번, 사흘 째는 1,2번이었는데, 그녀가 느끼기에 이번에는 생리 전의 심번心煩, 조광躁狂등이 과거보다 많이 좋아진 것을 느꼈으며, 스스로를 자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리가 지난 뒤 이 첫 주기에는 큰 발작은 없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기에도 증상이 막 시작되려고 할 때 또 약을 먹기 시작하여 역시 약 세 첩을 먹었는데 증상이 첫 주기때 보다 더 가벼웠습니다.
세 주기를 치료한 뒤 기본적으로 별로 발작하지 않는 것을 느꼈지만 생리가 끝난 뒤 과거보다 피곤했는데 아주 피곤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다시 나를 찾아와 ”내가 선생님이 시킨 대로 세 주기 동안 계속 약을 먹었더니 확실히 정신증상은 잡혔지만, 생리가 끝난 뒤에는 전보다 훨씬 피로하여 아주 아주 피곤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느 이 처방에 들어간 약재가 거의 활혈화어약活血化瘀하고 사열瀉熱하는 약들인데다 월경 전에 이런 약들을 쓰므로써 생리 후에 기혈이 많이 부족해진 까닭이라 보고 그 뒤로는 생리가 끝난 뒤 양혈養血, 익기益氣, 화담化痰하는 약들을 먹도록 처방했습니다. 왜 화담하는 약을 썼느냐 하면 괴병怪病은 대개 담이 빌미가 되기 때문이죠. 이렇게 화담하고 비위를 조화시키는 처방을 일 주일 정도 먹였는데 일 주일만 먹이고 더 먹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생리 전에는 도핵승기탕을 쓰고, 생리 뒤에는 양혈養血, 조기調氣, 화담化痰하며 비위脾胃를 조보調補하는 처방 일주일 분 씩 썼으므로 합해서 대개 6개 생리 주기인 반년 남짓을 썼는데 이 때부터 그녀의 주기성 정신분열증의 증상이 가라앉아 양약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1977년 국가대학 압학고시제도가 재개되었는데 그녀는 경무대학經貿大學 즉 대외경제무역대학對外經濟貿易大學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던 것으로 볼 때 그녀의 당시 지적발육이 무척 좋았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병 때문에 결혼도 매우 늦었는데 뒤에 그녀가 결혼할 때 나를 결혼식에 초대하였습니다. 그 때 내가 특별히 신경써서 그녀가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에 혹시 여광如狂과 같은 증상이 있는지를 살펴봤는데, 혼례시 아주 예의바르고 모든 일을 사정에 알맞게 잘 처리하더군요. 그래서 슬며시 "예전같은 증상은 지금 전혀 없네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학선생님. 여기서 내 과거를 아는 분은 선생님 뿐이시니 꼭 비밀로 해 주세요."하고 말합디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과거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사람이 짝을 찾아 결혼한다면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꺼리게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비밀을 지키겠다고 했죠. 뒤에 아들을 낳았는데 얘가 금년에 14-5세 쯤 됐을 것입니다. 그녀는 미국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그곳의 스트레스가 매우 심할 텐데도 아직 한 번도 재발하지 않았고 생리도 정상이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도핵승기탕으로 통경痛經을 치료하고, 부녀의 생리기간 중에 나타나는 정신조광精神躁狂을 치료하면 뛰어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 한 학생이 밥 먹는 중에 다른 동기가 웃기는 얘기를 해서 웃었는데 갑자기 위가 매우 아파져 밥그릇을 든 채로 식당에 쭈그리고 앉아버렸습니다. 모두들 그에게 "무슨 일이야. 조금 전에 웃고 떠들다가 지금 장난치니?" 하다가 자세히 보니 얼굴이 창백하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어 황급히 떠 메고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응급실에서 보니 배가 아프다고 하긴 하는데 무슨 병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내과, 외과의사가 모두 진찰하고 관찰해 보기만 할 뿐이었는데 몇 시간이 지난 뒤 배가 엄청나게 더 아파지면서 복부에는 압통壓痛, 반도통反跳痛, 근육긴장이 모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게 무얼까요?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걸까요? 밥 먹다가 웃었을 뿐 평소에 위병의 병력도 없었습니다.
한 외과의사에게 갔더니 배를 만져보는데 온 배가 모두 아프다고 하자 배꼽을 지나는 가로 직선을 옆으로 긋고 이 위가 더 아픈가 아니면 이 밑 쪽으로 더 아픈가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환자가 좀 생각하다가 아랫쪽이 더 아픈 것 같다고 말하자 다시 배꼽을 지나는 세로선을 긋고 왼쪽이 더 아픈가 오른 쪽이 더 아픈가고 물어보니 다시 한 번 만져보라고 한 뒤 오른 쪽이 더 아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외과의사가 그러면 충수염이 천공되어 복막염이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술실에서 배를 열었는데 충수돌기를 보니 멀쩡하였고 다만 복강내에 삼출물이 있었고, 또 적지 않은 혈액이 고여있었습니다. 이거 어딘가 구멍이 났고, 그곳에 작은 혈관이 끊어진 것 같은데 어디에 구멍이 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수술한 칼자국이 너무 작아 위쪽으로 점점 더 잘라나가면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수술수준은 매우 뒤떨어졌습니다. 아무래도 몇 십년 전이었으니까요. 결국은 위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구멍이 난 그 곳은 원래 궤양이 있었던 자리였고 그 곳의 작은 혈관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에 복강에도 피가 고이고 소화도에도 피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이 수술은 매우 간단한 문제라 위를 꿰매고 끝냈습니다. 처음 수술을 시작할 때 했던 마취는 허리마취였지만 뒤에 충수의 천공이 아닌 걸 발견하고 마취를 더 했기 때문에 마취가 지나치게 세게 되어 버려 위장의 연동운동이 늦어지고 따라서 그 위장의 연동을 알리는 gas의 배출도 늦어져 수술 후 일주일 만에 배기排氣를 하였지만 줄곧 대변은 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수술자국은 잘 아물고 복막염의 체징體徵도 순조롭게 나아가 일 주일 뒤에 실밥도 뽑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그 학생이 미친듯이 날 뛰면서 잠을 안 자고 선생님을 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 학원의 학생이었고, 외과선생은 그 선생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들이 무슨 외과 의사냐. 진단을 잘 못해서 내가 분명히 위천공胃穿孔이었는데 여기서 잘라 들어가서는 게 말이 되냐. 만약 더 위에 있었다면 머리 꼭대기까지 잘라 올렸겠네? " 저녁에 시끄럽게 수술한 선생님을 욕하다가 갑자기 나를 욕하는 것이었습니다. "학만산이 내게 상한론을 가르칠 때 나하고 사이가 좋았는데, 내가 이런 큰 수술을 했는데도 아는지 모르는지 콧배기도 안보이네." 다른 학생이 그가 내이름을 말하는 것을 듣고 다음 날 학교로 쫓아왔는데 그 시기에는 전화하기도 어려워 나를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 동기가 수술을 했는데도 저녁에 욕하면서 선생님도 욕했습니다." "어떻게 욕하던가?" "선생님이 문병 안온다고 했습니다." "나는 몰랐네.그럼 내가 문병을 가야겠군. 그런데 양의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뭐라고 그래." "양의 선생님들은 천공 후 약간의 피가 장위도에 쌓였다가 여기에 수술과정 중의 마취때문에 이 것들이 체외로 배출되지 못하고 분해된 뒤 대량의 암모니아가 혈액순환에 스며들게 되고 이 암모니아가 대뇌를 자극한 것이 정신을 광조하게 한 것이라 하면서 무슨 새로운 항생제를 쓰던데요." 그 때는 현재처럼 이렇게 많은 항생제가 있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항생제로 장도腸道의 세균을 억제하려 했는데도 효과가 없었고, 관장으로 몇 덩이의 변을 빼냈지만 역시 효과가 없었습니다. 소장 내에 쌓인 피떡을 관장으로는 빼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서 보니 낮에는 정신이 맑아 "아유 학교수님. 어떻게 이렇게 힘들게 오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자네가 낮에는 멀쩡한데 간 밤에는 욕을 많이 했다던데." "욕한 적 없는데요." 그러자 나를 찾아왔던 학생이 "너 간밤에 학교수님을 욕했잖아." "난 몰라." 그가 알든 모르든 밤에 미친 듯 나댔었다는 것은 장도의 혈액이 분해된 뒤의 암모니아가 혈액 속으로 들어가 대뇌를 자극하여 생긴 일종의 정신증상이었던 것으로 기인여광其人如狂입니다. 내가 이런 증상을 보고,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는 수술 후 장도내에 남아있던 혈액 때문인데 관장으로 안된다면 도핵승기탕을 쓰면 될걸세. 한 첩을 먹어 보게." 내가 오전에 가 봤기 때문에 오전에 바로 학생들이 약을 지어서 약방에서 달이지 않고 기숙사에서 달인 뒤 다 달여지자 정오에 먹였습니다. 밤이 되자 이 학생이 측간에 가서 싸는데 그 측간은 쪼그리고 않는 방식이라 그 학생의 말에 따르면 한 번 싼 것이 변기에 반이나 차는 지독한 냄새가 나는 설사였다고 했습니다. 그 날 밤 우레같이 코를 골면서 잘 잤고 그 뒤로 사람들을 다시 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도핵승기탕은 이런 정황에서 장도 내의 어열, 어혈을 깨끗이 배출하는 매우 좋은 처방입니다. 정말 단 한 번 먹였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습니다. 도핵승기탕은 논문보고를 보면 정신분열증에도 쓰이고, 자궁축혈에도 쓰입니다. 소장의 어열瘀熱, 어혈瘀血이 소장에 쌓였을 때도 쓰이는 등 임상에서 응용밤위가 매우 넓습니다. 이것은 사열瀉熱、화어化瘀하는데 매우 훌륭한 처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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