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중의思考中醫

한의학의 학습과 연구-10

臥嘗 齋 2025. 1. 28. 10:20

2. 경전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을 쓸어내자.
이렇게 점점 버려져서 이미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어 버린 경전經典을 다시 중시하도록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모두들 현대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에 익숙해져서 새 것이 헌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강의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내고, 새 시대의 사람들이 옛 사람들보다 낫다-長江後浪推前浪 一代新人勝舊人-는 것이 통념이다.  우리가 경전이 시공을 초월하여 이 시대를 뛰어넘어 먼 후세까지 통할 수 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겠지만 전해오는 많은 영역 중에 실재로 존재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한 인식과정의 장애를 없애려면 그래도 이론의 구성으로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앞에서 우리는 한의학 경전이 이성적 사고를 통해 만들어졌을 뿐 만 아니라 게다가 이를 몸 안에서 증명하는 내증內證과정을 거치면서 이 둘이 완벽하게 결합됨으로써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말했었다. 이런 완전하면서 빈틈없는 결합이 양수명梁漱溟선생이 말한 인류미래문화의 조숙품早熟品을 만들어 낸 것이며 또한 이런 미래가, 이런 조숙품이 현재와의 차이가 너무 크기에 지금 우리가 이런 이론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형이상形而上의 영역을 현대과학이 이해하는 부분이 매우 적어서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모두 미신이라든지 가짜 과학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실재로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고 형이상이 이미 형이하形而下의 기세계器世界의 차원을 초월해서 그 인식범위가 형이하의 기세계에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순전히 기세계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그의 본 모습을 완전하게 보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원인은 형이상의 이런 실험이 일반적인 외증실험外證實驗이 아니라 내증실험內證實驗이기 때문이다.
얖에서 내증실험이 무언지는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었지만 진심으로 한의학을 탐구하려면 이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실험은 많은 돈이 드는 최신 기계를 설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실험실이 덩그라니 있어서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어려운 훈련을 거쳐 세워지는, 형체를 초월한 것이다. 이것은 잠재능력과 관계되는 문제이다. 며칠전에 왕동화王東華라는 작가가 쓴 발현모친發現母親이란 책을 보았는데 거기에 많은 자료들이 수집되어 있었다. 그 중 한 부분은 전문적으로 인간의 잠재능력을 다루고 있었는데 그 책에는 식물로 예를 들어 같은 종자라도 배양하는 조건이 달라지고, 배양하는 과정이 달라지면 얻어지는 결과에 차이가 매우 크다고 하였다. 우리처럼 농촌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 그루의 토마토에 얼마나 많은 열매가 달릴까? 내가 이 자료를 보기 전에는 이전 나의 농촌 경험에 비추어 많아도 백 개 정도 열릴 것이고 좀 더 잘 기른다고 하더라도 수 백 개 정도 밖에 더 열리겠냐고 생각했었는데 일본의 육종 전문가가 길러낸 토마토 한 그루에 무려 13.000여 개의 토마토가 열렸다는 것을 알고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 이 특수하게 배양된 토마토는 일본에서 전시되어 엄청난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고 새로운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여러분들은 이 현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이것이 바로 잠재능력이 아닐까! 똑 같은 하나의 종자인데 재배하는 방법이 달라짐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한낱 식물의 씨에 포함된 잠재능력이 이럴진데 사람의 잠재능력은 얼마나 클 지 생각해 보라. 대뇌大腦의 잠재능력은 얼마나 될까? 그 크기를 재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성적으로 완전하게 이런 내증실험이 존재하며, 특수한 배육培育과정을 거친다면 이런 내증의 조건이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미루어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이 있다면 경전에서 필요로 하는 각 종의 내증실험을 마음껏 실행할 수 있다. 내증실험에 이성적인 사고가 더해짐으로써 이런 경전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경전의 이론이 만들어진 뒤로 후세 사람들이 거의 다 그 이론을 배우는 것으로 그치고 직접 스스로 그 내증실험과정을 겪어 보지는 않았다. 이런 상태로 세월이 흘러 이 내증능력을 마음을 써서 배양하지 않게 됨으로써 내증의 조건이 차츰 사라지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내증실험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장중경시대와 같은 초기에는 이런 내증실험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중경은 상한론의 서문 중에서 “여숙상방술, 청사사어余宿尙方術, 請事斯語”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장중경이 말하는 여기에서의 방술의 매우 큰 부분이 내증실험을 가리킨다는 것은 역사에서 고증할 수 있는데, 우리가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의 방술열전方術列傳을 보면 곧 바로 방술의 상당부분이 내증의 술법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사람들이 이 내증술內證術, 이 내증실험과정에 대해 더욱 어슴프레하게 되어 송나라 명나라 때 이학理學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내증에 대한 인식이 이미 흐려져서 이론理論로만, 사변思辨으로만 그 언저리를 돌게 된 것이다. 이학理學의 탄생이 내증內證의 실전失傳때문인지 아닌지는 송, 명시대 사람들이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해 내린 해석으로 판단할 수 있다. 격물치지에 대해 여기서는 자세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몇 개의 기본적인 원칙은 알아두어야 한다. 먼저 ‘지知’는 보통 배우거나 깊이 분석하여 얻을 수 있는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다. 여기서의 지는 ‘각覺’의 뜻으로 앞에서 말했던 심명心明의 상태인 것이다. 이는 바로 이런 심명, 이런 각에 의해서만 비로소 내증의 상태에 이를 수 있으며, 비로소 내증실험을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심명의 상태가 될 수 있을까? 격물格物을 통해 얻어지는데, 이 격물은 송명 사람들이 말한 궁구물리窮究物理-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연구하라-가 아니라 물욕物欲을 멀리하라는 말이다. 안습재顔習齋는 일찍이 격물의 격을 수격맹수手格猛獸-손으로 맹수를 막아낸다-라고 할 때의 격의 뜻과 같다고 해석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적 경지로 이런 경지에 다다라야만 비로소 내증의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지는 유가儒家, 불가佛家, 도가道家에 모두 존재한다. 공자가 말씀하신 ‘군자식무구포,거무구안君子食無求飽,居無求安’이 사실 이런 경지이다. 대학大學에서 ‘지지이후유정, 정이후능정, 정이후능안, 안이후능려, 려이후능득知止以後有定, 定以後能靜, 靜以後能安, 安以後能慮, 慮以後能得’이라 하는데 생각들 해 보시라. 이 ‘지止’, ‘정定’, ‘정靜’, ‘안安’이 ‘격물格物’이 없이 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이 ‘식무구포,거무구안食無求飽,居無求安’하지 않고 날마다 물욕이 휩쓸려 주식 값이 오르내리는데만 신경을 쓴다면 그치고, 멈추고, 조용하고, 느긋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얻고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는가? 도가道家에서는 노자老子가 ‘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 이지우무위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又無爲’라고 했는데 무엇을 덜어낸다는 말인가? 실제로 이는 바로 손물損物-물을 던다-는 말로 곧 격물格物이다. 또 이 격물을 불교에서는 모든 세상의 여덟 가지 법을 멀리 떠난다는 말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격물은 유불선에서 모두 말하고 있는데 그 깊이가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대체적인 뜻은 서로 가까우며 이것과 송명시대 사람들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격물은 내증의 능력을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이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거나 잘 못 이해하게 되면 내증은 절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
송명시대 사람들은 격물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파고들어 궁구窮究라고 해석했지만 이 한 기지로만 보더라도 이미 그들이 내증에 밝지 못했고, 그들이 실험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벌써부터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에서야 왜 한의학의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 확실히 알기 힘든가? 왜 우리는 늘 경전의 가치를 바로 보기가 어려운가? 한의학의 많은 부분들에 늘 의심스러웠던 것은 무엇때문일까?하는 것을 환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내증이라는 이 한 쪽 눈알이 빠져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이것이 바로 실제로 우리의 인식장애를 만든 관건 요소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의학에 대한 특히 한의학의 경전에 대한 비교적 공정한 인식을 갖기 위해 먼저 사고방식 속에서 이런 장애를 쓸어 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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