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배경의 관점으로 보면 의학저작은 두 큰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의경醫經으로 기초이론저작이며, 하나는 경방經方입니다. 여기에 말하는 경방은 경험방입니다. 반고의 한서 예문지에 동한東漢 이전의 의학저작이 의경7가醫經七家, 경방11가經方十一家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경7가는 황제내경黃帝內經, 황제외경黃帝外經, 편작내경扁鵲內經, 편작외경扁鵲外經, 백씨내경白氏內經, 백씨외경白氏外經, 그리고 백씨방경白氏傍經입니다.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황제내경을 보면 완전히 인체의 생리, 병리, 사람과 자연의 관계, 기본적치료원칙, 기본적치료대법과 같은 한의기초이론을 천술한 저작입니다. 그러므로 의경은 기초이론입니다. 그러면 경방은? 반고 한서예문지에서 말하는 경방은 우리가 지금 말하는 경방이 아닌거죠. 그럼 무엇일까요? 고대 의사가 자기의 경험에 의해 환자에게 낸 처방으로서 그 뒤 험증을 거쳐 효과있있던 것입니다. 사실 옛날 의사가 치료할 때에 현대 우리 농촌의 일부 기층의사基層醫師-중국의 경험으로 자기식대로 약을 쓰는 사람-와 비슷하여 이론을 말하라 하면 말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일찌기 아주 외진 농촌에서 한 의사를 보았는데, 이 의사는 환자를 잘 치료하여 효과가 좋았습니다. 일종의 감각에 의지하여 환자가 두통頭痛, 신통身痛, 발열發熱, 무한無汗하다 하면 곧 마황, 행인 등등의 약을 주는데 그 중 어떤 약 들은 그 지방에서 나는 약으로 약전이나, 한약서에서 볼 수 없는 약이었습니다. 내가 " 선생님, 왜 이런 약을 쓰는 가요?" 하니 "이런 약을 쓰면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라고 말하고 약을 쓰는데, 그 처방을 남겨 두더군요. 며칠 후 환자가 와서 "아 의사선생님 당신의 약을 먹고 났더니 땀이 난 뒤에 좋아졌습니다." 라고 하면 이 처방은 임상을 통해 효과가 있었다고 하여 남겨 놓습니다. 또 한 환자가 수종水肿, 별기憋氣,심황심도心慌心跳, 두훈두통頭暈頭痛으로 찾아왔을 때 처방을 하는데, 이뇨하는 처방을 하더니 또 "내 감각이 그래 "하고는 처방을 남겨 둡니다." 며칠 지나 환자 가족이 와서 선생님 그 약을 먹었는데도 조금도 낫지 않고 결국 환자가 죽었습니다."라고 하면 그 처방을 남겨 놓지 않고 저 쪽에 쑤셔넣어 놓았다가 이것이 많이 모이면 모두 태워버립니다. 이 쪽에 남겨 둔 것이 많이 모였을 때 책으로 만들면 나중에까지 유전되게 하는데 이것이 경험용방입니다. 그래서 경험용방은 고인이 자기의 감각에 따라 낸 처방으로 이론적 기반이 있을까요? 특별한 이론적인 지표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감숙甘肅에서 출토된 52병방五十二病方과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출토된 치백병방治百病方을 보면 모두 서한西漢 초기의 저작이거나 적어도 서한시대의 저서들입니다. 그것들이 바로 경방으로 경험하여 효과가 있었던 처방인 것입니다. 어떤 증상에 어떤 약을 쓰며, 혹은 어떤 병에 어떤 처방을 쓴다고 하여 이론적 체계나 계통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런 경험용방이 11가家가 있으며, 그 11가 중에 이윤의 탕액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중경은 바로 이 양가를 결합하여 경방과 의경 양가를 한 데 녹여 이법 방약理法方藥이 결합된, 이론, 치칙, 치법, 처방, 약물구성이 있는 변증론치辨證論治 체계를 창립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학술배경입니다. 장중경은 한 대漢代 이전의 의경과 경방 두 학파를 한 용광로에 녹여 이법방약이 서로 결합된 변증론치체계를 확립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한의 임상의학의 발전에 기초를 다졌습니다. 의경은 기초이론의 저작에 불과하여 임상의학이라 하기에는 거리가 멉니다. 경방은 경험용방에 불과하여 의학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장중경의 상한잡병론이 시작되어 비로소 이법방약이 서로 결합된 변증론치체계가 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의의 임상의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 장중경입니다. 개체화 치료방안個体化治療方案인 변증론치라는 이러한 치료방안의 기초를 놓은 사람 역시 장중경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중경이 한의학 발전사에서 일으킨 승전계후承前繼後의 중요한 작용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강의한 두 번째 문제인 《상한잡병론 傷寒雜病論》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인 것입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그 사회배경은 천재와 전쟁으로 비롯된 전염병의 대규모 유행입니다. 이것이 장중경이 당시의 의가들의 전염병을 방치한 경험을 수집하는데 조건을 만들었고, 장중경에게 임상을 할 수 있는 객관환경을 제공하였습니다. 학술상으로 그 때 의경저작이 많이 나왔고 경방저작이 많이 유전되어, 장중경이 의경과 경방을 결합시킬 수 있는 학술배경, 학술조건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장중경이 이법방약을 파악하여 이법방약이 서로 결합된 변증론치체계를 만들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임상의학의 전기인奠基人이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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