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강의 하려는 개론의 두번째 문제는 바로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이 지어지게 된 배경背景입니다. 역사상 천고千古에 걸쳐 유전 되면서 그 학과學科에 대해 거대한 공헌을 한 저서들은 그 어떤 저작 일지라도 그의 등장에는 모두 마땅한 사회배경社會背景과 학술배경學術背景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회 배경과 학술 배경으로 이 시대에 상한잡병론 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내려오면서도 사라지지 않은 저작이 어떻게 출현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회배경의 각도로 보면 우리가 조금전에 장중경이 살았던 시대의 배경을 이야기 했으므로 우리는 장중경이 동한 말년東漢末年에 살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동한 말년은 어떤 사회였습니까? 전쟁이 없었던 해가 없었으며, 천재天灾도 끊이지 않았던 사회였습니다. 내가 한 번 역사책에 기재된 자연재해를 살펴봤더니 장중경이 살았던 그 몇 십년 중에 사서에 기재된 가뭄, 홍수, 해수 역류, 강둑터짐, 지진, 태풍, 메뚜기떼, 산사태 등과 같은 커다란 자연재해가 무려 22번이나 되었습니다. 사서史書를 보고나니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자연계의 재해가 장중경이 살았던 시대에 일어났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서에 기재될 만한 것이라면 일부에 치우치거나, 조그만 재해는 아닙니다. 이런 재해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 까요? 생산력이 파괴되어 생산수준이 떨어지고, 따라서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떨어지며, 인체의 저항력이 낮아져 전염병이 많이, 오래, 널리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역사상 “대재지후 필유대역大灾之後,必有大疫” 이란 말이 있는 것인데 이것은 자연재해로 본 시대 배경입니다.
전쟁의 각도에서 보면 모두 아시다시피 동한말년은 삼국의 분쟁으로 해마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중국 역사에 “대병지후 필유대역大病之後,必有大疫”이란 말도 있는데 그것은바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자연재해가 쉼없이 이어졌기 때문에 전염병이 널리 유행했던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대사건을 기록한 《동한회요東漢會要》에서는 “중원대지 백골위적 인상식담中原大地,白骨委積,人相食啖” -온 나라에 백골이 쌓여 있고 사람이 서로 잡아먹었다.-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그런 사회배경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한회요에서 당시의 백성들이 “불사우병, 즉사우병不死于兵,即死于病”-전쟁으로 죽지 않으면 병으로 죽었다.-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건안建安시대에 문학文學으로 유명했던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사람인 왕찬王璨이 지은 《 칠애七哀》라는 시에 “출문무소견 백골폐평원 로유기부인 포자기초간 고문호제성 휘루독불환 미지신소왕 하능양상완 出門無所見,白骨蔽平原。路有飢婦人,抱子棄草間。顧聞號啼聲,揮淚獨不還。未知身所往,何能兩相完。”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길을 가다가 못먹어서 얼굴이 누렇게 뜨고 마른 한 부인이 안고 있던 아기를 길가 풀 더미에 버리고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지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되돌아서지 못하고 그냥 가버리는 광경을 그가 보았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미지신소왕未知身所往”스스로도 오늘은 밥을 먹더라도 내일은 또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의 목숨도 이어갈 수 없는데 “하능양상완何能兩相完?”어떻게 나와 아기가 모두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가슴이 메어지지만 아기를 버린 것입니다. 이런 사회이니 당연히 전염병이 널리 유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모두 《의고문醫古文》에서 《상한잡병론서傷寒雜病論序》를 배웠죠? 장중경의 상한잡병론서에 “여종족소다 향여이백余宗族素多,向餘二百” 우리가족은 대가족으로 200명이 넘었는데, “건안기년이래 유미십념 기사망자 삼분유이 상한십거기칠建安紀年以来,猶未十稔,其死亡者,三分有二,傷寒十居其七.” 건안 기년은 196년인데 건안 원년이래로 10년도 안되어 이 200여명의 가족이2/3가 죽고 이 2/3중에 7/10이 상한병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상한병傷寒病이란 외감병外感病을 총칭하는 말인데 이 뒤에 그 뜻을 자세히 이야기할 것입니다. 바로 전염병, 외감병에 죽은 것이죠. 그는 한 사람의 의사로서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는데도 이 전염병을 예방, 치료하여 친척과 백성의 생명을 구해 낼 방법이 없자 옛부터 내려오는 가르침을 열심히 찾고, 여러 방법들을 널리 모으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소문素問》、《구권九卷》、《음양대론陰陽大論》、《태로약록胎臚藥錄》에서 이론을 끌어내어 엮고, 아울러 스스로 평맥변증平脉辨證하여 이렇게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16권을 써낸 것입니다. 이런 사회배경이 장중경이 전염병을 탐색하고 방치防治하도록 격려하고, 독촉하였으며, 그가 많은 임상실천 경험을 겪고 깨닫도록 하였으며, 또한 당시 의사와 백성들이 전염병을 방치하였던 경험과 방법을 수집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지금 상한교연실傷寒教研室을 맡고 있는 사람이지 않소. 당신도 전염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책을 써 낼수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나는 ‘나도 책을 쓸 수는 있지만 실전경험을 이야기하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전염병이 현재에는 아주 드물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우안의원佑安醫院이나 북경지단의원北京地壇醫院에 입원해 버려서 우리같은 보통 내과 외래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장중경과 같은 그런 저작을 써 낼 수 없는 것은 그와 같은 사회배경과 실천조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전염병을 볼 수 없지만 장중경이 살았던 그 시기에는 매일 매일 보는 것이 이런 병이었기 때문에 그는 경험을 쌓을 기회가 있었고, 또 당시의 의사와 백성들의 전염병과 투쟁한 경험과 교훈을 수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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