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소음경의少阴经义
소음경의少阴经义는 수족手足의 소음少阴을 아우른다. 족소음足少阴은 유시酉时에 용천혈涌泉穴로 부터 솟아난다. 용천涌泉은 소음少阴의 정혈井穴인데 매우 기이하고 특수한 곳이다. 왜냐하면 다른 정혈들은 모두 손발가락 끝에 자리잡고 있는데 오직 소음의 정혈만 발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용천이란 이름을 들으면 바로 소음이 물을 맡아보며, 샘물이 여기에서 솟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족소음은 유시가 되자마자 용천혈에서 솟아 유시가 끝날 때 가슴 앞의 수부혈俞府穴에서 그친다. 수소음手少阴은 오초午初에 겨드랑이 아래 극천혈极泉穴에서 솟아 오말午末에 새끼손가락 끝의 소충혈少冲穴에서 그친다.
3.소음장의少阴藏义
갑 甲、심心
수소음심手少阴心은 앞에서 매우 많이 얘기했으므로 여기서는 여러분들이 빠뜨리기 쉬운 문제들을 조금만 채워보겠다.
(1)천하만물생우유天下万物生于有,유생우무有生于无
심心과 다른 네 장藏은 어떻게 구별되나? 먼저 글자로 보면 다른 장은 모두 "월육月肉”방旁이 있어 다른 장藏과 부府가 모두 형체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므로 이것이 바로 “유有”이다. 그런데 심心은 이 “월육月肉”방이 없으므로 이것이 “무无”이다. 도가道家에서 이 유무有无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한 쌍의 개념으로 《노자老子》에서는 “천하만물생우유天下万物生于有,유생우무有生于无.”라고 했다. 그러니 “유有”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생활에서 모든 것들이 이 “유有”이지만 “유有”조차도 “무无”에서 온 것이라 했다. 그래서 도가道家의 사상은 무위无为를 강조하여 "도상무위이무불위道常无为而无不为"라고 말한다.
무위无为의 사상은 매우 귀하며 쓰일 데도 아주 많다. 이로써 학문学问에 쓰기도 하고, 처세处世에 써먹기도 하며,그리고 치국평천하治国平天下에도 이르기까지 모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확실히 못 할 것이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의 사람들은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개인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모두 “무소불위无所不为”하고 싶어 하지만 “무위无为”의 경지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어떤 방면에서 약간 나은 “장长”점만 있어도 바로 제 마음대로 “재宰”하려 하여, 《노자老子》에서 말하고 있는 “장이부재长而不宰”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이 약간 더 발달하여도, 군사력이 조금 더 강해도 바로 여기저기 파병派兵하고 무력을 사용함으로써 “재宰”하려 하는 것이 고금 국가의 속성이다. “병자兵者,불상지기야不祥之器也”며, “대군지후大军之后,필유흉년必有凶年”인 것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 군사력이 강대하다고 여기저기 침범하면 천하를 정복하고 공포를 없앨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끝내는 반드시 “완화자玩火者,필자분必自焚”-불을 갖고 놀다가는 반드시 스스로를 불태운다.-하게 된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강대국들은 모두 《노자老子》의 사상을 배워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생각을 버렸어야 한다. 군사력으로 억누르는 것은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힘으로 억누르지 않게 되고 그래야만 비로소 모든 사람과 나라들이 따르게 된다. 도道를 따르만 천하가 편안하고, 덕德을 따르면 천하天下를 화순化顺하게 할 수 있다.이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위정이덕为政以德,비여북신譬如北辰,거기소이중성공지居其所而众星共之。”-덕으로 다스리면 북극성이 제 자리만 지키는데도 뭇 별들이 받드는 것처럼 된다.-인 것이다.
우리는오장五藏의 글자만듦새로 “월육月肉”방이 없는 심心이 오히려 군주지관君主之官으로 지고지상至高无上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놓여진 모양에서 우리는 한의학에 도가道家의 사상思想이 깊숙히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의학의 기원이 사람들이 오랜 동안 질병과 싸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만 하는 것은 너무 겉핧기의 해석으로 실질적인 의미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의학은 어디에서 발원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한의학을 버팅기고 있는 핵심이 역易이라는 사람도 있고, 도道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둘 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로는 의医、역易、도道를 삼위일체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내경内经》속에서 우리는 매우 많은 역易 사상과 도가道家의 사상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문素问 》에 최초로 전면적인 주석을 달았던 사람은 당대唐代의 왕빙王冰인데 그의 주注는 현재까지 아주 큰 권위权威를 누리고 있다. 그의 주석注释 내용을 보면 도가道家의 냄새가 매우 짙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왕빙이 스스로 계현자启玄子라는 호를 지었는데, 이것은 도가道家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에서도 의医와 도道가 잘 찰떡 궁합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2)군주지관君主之官,신명출언神明出焉
《소문素问·지진요대론至真要大论》의 십구병기十九病机 가운데 다섯 조문이 오장五藏에 관한 전문적인 것으로, 그 중에 심에 관한 조문은 “제통창양诸痛痒疮,개속우심皆属于心”이다. 심心의 이 병기는 매우 중요하여 우리에게 무릇 통痛、양痒、창疮이라면 모두 심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모두 심의 조그만 이상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통痛과 양痒은 일종의 느낌이다. 이런 느낌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여 통양痛痒을 빼고도 창마胀麻도 있고,산초酸楚도 있으며 또 더 많은 정신적 느낌이 있지만 통양痛痒이 가장 전형적이며 느끼기 쉬운 감각이다. 그래서 기백岐伯은 통양痛痒을 대표로 든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정황은 통양만 심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느낌들도 모두 심에 속한다.
통양痛痒과 심의 이런 관계는 우리에게 통양 및 다른 모든 좋지 않은 느낌들이 비록 우리의 심신에 여러 불쾌감과 고통을 주고 심하면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하지만 이런 통양들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게 한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이는 몸에 약간의 작은 이상들이 있어 잘 맞아들지 않으면 바로 통양痛痒을 느끼고 마뜩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심이 맡아보는 신명神明이 밝지 않은 탓이라고 보아야 할까? 오히려 매우 밝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군주君主가 명군明君이라 조그만 일도 세밀하게 살피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 천하에 조그만 변화가 있어도 모두 알아차리고, 몸에 생긴 작은 이상이라도 통양痛痒으로 느낀다는 말이다. 갈등이 빨리 드러나 빠르게 해결되면 커다란 사고가 생기지 않게 된다. 그래서 통양痛痒을 이런 각도로 보면 좋은 일이 되는 것이다. 군주가 매우 신명神明하여 밝게 보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모두들 생각해 보자! 만일 위에 말한 것 같은 상황이 나타나지 않고, 몸에 조그만 이상이 있거나 심지어 매우 큰 병이 생겼는데도 아프거나 가려운 느낌조차 없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게 좋은 일일까? 이런 일은 여러분의 군주가 똑똑하지 않은 혼군昏君이라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심心이 통양痛痒을 맡아보는데, 통양해야 할 때 통양하지 않다면 멍청한 임금이 아니겠는가? 상황이 돌아가는 것에 마음을 열어두고 조그만한 이상이라도 알아차려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막아내야 명군明君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숱한 질병들의 정황이 바로 이런데, 이런 질병들이 검사로 드러나기 전에는 큰 느낌이 없이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가 검사로 드러나면 바로 말기 암이나 뇨독증尿毒症uremia인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엄중한 질병들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것은 여러분이 혼군昏君을 만났기 때문이다. 군주가 똑똑치 못하여 자세히 살피지 못하면 이런 결과로 나타나는데, 《소문素问·영란비전론灵兰秘典论》에서는 이를 “주불명즉십이관위主不明则十二官危,사도폐색이불통使道闭塞而不通,형내대상形乃大伤,이차양생즉앙以此养生则殃,이위천하자以为天下者,기종대위其宗大危,계지계지戒之戒之!”라고 말했다.
심은 신명神明을 맡아보는데, 신神이 밝으면 보지 못하고, 살피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래야 우리가 태음편에서 이야기했던 “간의지관谏议之官”도 비로소 제 작용을 다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소문素问·영란비전론灵兰秘典论》에서 말한“주명즉하안主明则下安,이차양생즉수以此养生则寿,몰세불태殁世不殆,이위천하지대창以为天下则大昌”이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건 여러분이 조금만 바뀌어도 심이 잘 살핌으로써 몸의 기능을 일깨워 그에 알맞은 처리를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매일 세포가 이상하게 분화하는 곳이 있는데 왜 종류肿瘤가 생기지 않는 것일까? 이상하게 분화하면 바로 알아차리고 체계가 조정하고 처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질병들도 이와 같으므로 우리의 “주主”가 똑똑하기만 하면 일찍 발견하여 큰 병이 되지 않도록 한다.
이제 여러분은 “군주지관君主之官,신명출언神明出焉。”“제통양창诸痛痒疮,개속우심皆属于心。”이라고 한 내경의 말이 매우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확실히 매우 중요하다. 이 문제들을 뚜렷이 알고 있으면 몸에 생기는 매우 많은 큰 질환, 특히 종류肿瘤같은 병을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한의학에 논문 거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깊이 파고 들어 연계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3)동통疼痛
위에서 통痛과 심心의 감춰진 연계를 이야기하였고, 아울러 그 연계에서 한 걸음 더 나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우리가 문자文字에 좀 더 주의를 하고, 평상시 쓰는 말에 좀 더 주의하여도 이런 관계는 훤히 드러나 있으므로 알아내기가 어렵지 않다.
예로 통痛과 자주 이어서 쓰이는 단어로 고통苦痛이 있는데, 고苦는 남방南方의 맛이라 심미心味이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쓰는 일상적인 단어라 할지라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 속에 매우 깊은 의리医理와 철리哲理가 감춰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역周易》과 《노자老子》그리고 《논어论语》등의 책을 보면 대개 매우 보통인 일상적인 언어로 씌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평상적인 말 가운데서 매우 깊은 도리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큰 스승님들께서 지으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성인圣人께서 지으신 책인 것이다!
그 밖에 늘 통痛과 이어 쓰여 한 단어가 되는 말은 무엇이 있을까? 동疼이다. 이 늘 볼 수 있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왜 동통疼痛은 대개 이어져 쓰일까? 왜 동疼이 통痛으로 불리거나 통痛이 동疼으로 불리는가? 동疼은 성부声符로 “동冬”을 쓰고 있는데, 겨울기운은 차다. 동통과 한寒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소문素问》에 전문적으로 동통에 대해 토론한 한 편篇의 문장이 있는데 바로 “거통론举痛论”이다. 이 편에서는 열 몇개 동통을 예로 들고 있어 “거통举痛”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열 몇개의 례 가운데 하나만 뺀 나머지가 모두 한기寒气로 통증이 생긴 경우이다. 그 밖에 《소문素问·비론痹论》에서도 “통자痛者,한기다야寒气多也,유한고통야有寒故痛也”라 하여 《소문素问》이 통痛에 대해 “유한고통야有寒故痛也”라고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통痛이 왜 동疼이라고 말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동疼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그 한寒을 말한 것이었다.
이밖에 통痛이란 글자의 만듦새도 연구할 만하다. 통痛의 성부声符는 “용甬”인데,“용甬”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용甬은 길이다. 현재 “녁疒” 방 속에 “용甬”자를 넣은 것은 길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된다. 길에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 길은 다니기 위한, 서로 왔다갔다 하기 위한 쓰임새를 갖는다. 길에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다닐 수 없다. 다닐 수 없어 막힌 것이 바로 통痛이다. 이것과 한의학에서 늘 말하는 “통즉불통痛则不通,불통즉통不通则痛”은 완전히 같은 뜻이다. 그래서 통痛이란 글자, 동통이란 단어는 그 글자의 만듦새에서 이미 완전히 통痛의 원인과 기전转을 말해주고 있다. 그저 여러분이 알지 못하므로 “신身”의 밖에서 그 법칙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동통疼痛은 많은 질병들에서 공동적으로 느껴지므로 질병이 사람에게 끼치는 가장 큰 문젯거리 중 하나이다. 숱한 질병들, 더우기 말기암환자와 같은 질병들에서는 동통이 너무 심하여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安乐死로 스스로의 생명을 끝내고 싶어 한다. 이것은 통증을 멈추는 것이 확실히 의료계의 매우 중요한 임무이자, 매우 시급한 임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우리가 앞에서 토론했던 내용들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쉽도록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심心의 문제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