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전염병과 한의학

臥嘗 齋 2018. 3. 8. 15:42

1. 전염병과 감염

 전염병(傳染病:Communicable disease)은 바이러스. 리케차.스피로헤타.세균 등의 병원체에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로 부터 그 病毒이 직접 전염되거나, 또는 파리, 모기와 같은 매개동물 혹은 음식물. 혈액.수건 등과 같은 비동물성 매개체에 의해 간접적으로 면역이 없는 인체에 침입하여 증식함으로써 일어나는 질병을 말한다.

 침입한 병원체가 인간이나 동물의 장기(臟器)에서 증식하는 것을 감염이라고 하며 이 감염에 의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감염증이라고 한다. 감염에는 증상이 나타남이 없이 면역만 생기는 불현성 감염과 증상이 나타나는 현성 감염(顯性 感染)이 있다. 감염증과 전염병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감염증 가운데 매우 전염력이 강하며 소수의 병원체로도 쉽게 감염이 되면서 단기간내에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옮아가는 질병을 특히 전염병이라고 한다.

 물의 오염으로 인한 장티프스. 이질, 공기 전염에 의한 감기.홍역. 디프테리아.결핵, 모기에 의한 일본 뇌염.말라리아, 성적 접촉에 의해 감염되는 성병 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염병이다.

 전염병은 그 속성 상 지역사회나 국가에 끼치는 피해가 크므로 우리나라는 전염병의 발병과 유행을 미리 방지하고 국민 보건을 향상시키고자 전염병 예방법을 1954년에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이 법에서는  법정 전염병과 지정 전염병을 명시하고 예방을 위한 여러가지 방법과 처치 뿐 만이 아니라 경비부담, 벌칙까지 규정하고 있다. 법정전염병은 병의 심각성에 따라서 9가지의 제1종, 14가지의 제2종, 3가지의 제3종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지정전염병은 렙토스피라, 후천성 면역결핍증, B형 간염등 3가지가 고시되어 있다. 이런 질병들은 전염병예방법의 적용을 받으므로 서로의 건강을 위하여 국가의 관리에 자진해서 따라 주어야 한다.

 2. 한의학에서의 전염병

 한의학에서는 전염병을 역(疫), 역려(疫癘), 시기(時氣), 온역(瘟疫)등의 명칭으로 표현해 왔다. 은나라 때의 갑골문에 이미 학(瘧), 개(疥) 등 전염병의 명칭을 500여가지를 찾아볼 수 있고, 한의학 최고 원전인 한(漢) 대의 내경(內經)에도 '서로 전염되기 쉬우며 증상이 비슷하다' 고 한 전염병의 특징과 부합된 기술이 있을 뿐 만 아니라 '병든 뒤에 치료하려하지 말고 병들기 전에 치료해야 한다'는 치미병( 治未病)의 사상이 나타나 있다.  한의학의 원전으로 내경과 쌍벽을 이루는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도 그 저자인 장중경이 당시 동한 말기에 각종 전염병이 유행하여 그의 일가친척 200여명 중 2/3이 병사하자 이것을 이를 안타까이 여겨 그 이전 시대 의학자들의 집적된 경험과 스스로의 견해를 결합하여 이룩한 각종 열성병과 전염병을 주로 다룬 전문적 저술인 것이다.

 한의학에서 전염병을 뜻하는 술어인 역려는 지독한 전염병이라는 말인데, 강렬한 전염성과 유행성을 가진 외부의 발병 원안아 있으면서, 발병이 매우 빠르고 증상이 위독하며 환자끼리의 증상도 비슷하여 심하면 한 가문이 모두 죽어가는 엄중한 질환으로 호흡기나 소화기를 통해 전염되는 질환이다.

 전염병이 발생하여 발전하고  변화해 가는 양상은  내인(內因)-개체의 내재한 요인 즉 체질, 심리상태,영양 등과 외인(外因) 즉 발병인자의 성질 및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곧 병사(病邪)가 인체를 침입하면 정기(正氣)가 그에 대항하는데 이러한 정기와 사기의 투쟁과정을 거치면서 질병 증세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역려의 발생 조건을 개괄하면 세 방면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여기(癘氣)라는 병원(病源)의 작용으로 잡기(雜氣)라고도 하는데 정상적인 자연환경이 아닌 이상기후나 부패한 음식등에서 생기는 것이다. 둘째로는 인체 정기의 상황이다. 정기는 생체의 활력으로 이것이 충족되어 왕성하면 병에 저항하는 능력도 아울러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다 같은 환경에 노출되어도 병에 걸리는 사람이 있고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이 정기의 강하냐 약하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세번째는 외계의 환경인데 극변하는 기후변화와 공기, 수질 등의 오염이 여기에 속한다. 외부의 조건이 비록 전염병의 직접적인 발병인자는 아니지만 이런 물리적인 요소가 인체의 정기를 훼손하여 약화시킴으로써 국부 및 전체의 항병능력을 떨어뜨려서 "여기'에 대한 감염성을 크게 높이는 것이다.

 3. 전염의 종류

전염이란 여기 즉 병원체가 인체에 침입한 뒤에 개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으키는 각 과정을 종합하여 일컫는 말이다. 이런 전염과정에서 뚜렷한 임상적인 병변이 나타나면 곧 역려 즉 전염병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역려의 발전과정과 결과는 여기의 독성과 수량 및 인체 정기의 정황에 달려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염의 유형 및 결과는 다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여기가 소멸되거나 체 외로 배출되는 것으로 이를 한의학에서는 정기내존 사불가간(正氣內存邪不可干)이라고 하는데 정기가 출실하기 때문에 병사가 넘볼수 없다는 말이다. 둘째는 보균자인데 정기가 사기를 완전히 배제할 만큼 강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 이를 다시 세분하면 건강보균자, 회복기 보균자 및 잠복기 보균자로 나눌 수 있다. 셋째로는 잠복성 감염으로 잠복기보균자 중에 병원체의 활력이 환자의 정기가 약해지면 병을  재발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한 상태에 있는 경우이다. 정기가 아직은 병사를 진압할 수 있어 음양이 잠시의 평형상태를 유지하므로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언제든지 정기가 허약해지면 평형이 깨어져서 항병능력이 저하되므로 대량으로 증식하여 질병의 발작을 가져온다. 물론  이런 경우에 정기가 더욱 강화되므로써 무증상의 보균상태로 변하거나,병원체가 소멸, 배출될 수도 있다. 네째가 현성 감염으로 각 전염병의 특유한 증상들이 드러나는 엄중한 상황이다. 이는 여기의 종류와 경중에 따라 급성, 아급성, 만성 등의 각종 다른 진행을 보인다. 이들은 모두 구별이 있으나 여기와 정기 곧 사정(邪正)의 증가와 감소에 의해 서로 바뀐다.

 4. 전염의 과정

 전염병의 각 과정은 곧 사정이 서로 다투는 과정으로 사란 여기에서 곧 '여기'이며 병원체로 발병원인이다. 정은 '정기'로 생명력으로 각 장부, 기관의 생리기능을 보호하고, 외부에서 침입하는 사기를 방어하여 병사를 소멸시키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기를 북돋우고 병사를 소멸시키는 두가지가 큰 원칙인 것이다. 발병 초기에는 대개 정기가 왕성하고 사기도 왕성하므로 증세가 심한데 이 때는 사기를 쳐내는 것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 시기를 지나 중기 혹은 말기가 되면 투병의 결과 정기가 손상된 경우가 많으므로 사기를 쳐냄과 동시에 정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은 나았는데 사람은 죽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기게 된다. 회복기에 접어들면 병사는 대부분 사라지고 정기는 많이 쇠약해진 상태이므로 치료의 중점은  정기를  북돋우는데 둘 수 밖에 없다. 이는 남은 사기를 청소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으로 정기를 회복시키면 남은 사기는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전염병의 변증론치(辨證論治)는 주로 위기영혈 변증(衛氣營血辨證) 및 삼초변증(三焦辨證)을 대원칙으로 삼아 그때그때의 증상(症狀) 및 체징(體徵)에 따라 귀납, 분석함으로써 치료방법을 확정한다. 한약에는 각 전염병의 '여기'의 종류에 따라 각각 특별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약물이 있으므로 한방으로 혹은 한양방 협진으로 양호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5. 전염병의 예방법

 한의학에서는 일찍부터 모든 질병의 예방 및 방역적인 측면을 중시하여 왔는데, 제도적으로도 당나라에서는 이미 전염병 환자의 격리시설인 '여인방'을 두어 환자를 격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명대 중엽이후의 사람인 이시진(李時珍)1518-1593 은 그의 저서인 본초강목에서'전염병환자가 있을 때 그 의복을 시루 위에 찌므로써 가족 간의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하여 증기 소독을 권하였으며, 두진(痘疹)-천연두와 마진(痲疹)-홍역의 예방법도 수록하였다. 또 명 나라때 인두접종법(人痘接種法)이 발명되어 천연두의 유행에 대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 부터 전염병환자의 의복을 태우거나, 전염병으로 죽은 환자의 시신을 화장함으로써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여 왔다.

 현대의학에서는 17세기에 레이우엔후크(Anton van Leeuwenhoek1732~1723)가 현미경을 발명하고 미생물을 관찰한 이래로, 19세기 후반부터 전염병의 병원체가 속속 발경, 확정되었고, 파스퇴르(Louis Pasteur1822~1895), 코흐(Robert Koch 1843~1910), 베링(Emil von Behring1854~1917)등 의학 역사에 길이 빛날 학자들에 의해 세균학, 면역학이 확립되어 전염병 치료에 획기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이러한 현대의학의 강세적인 유입과 일본 강점 시기 이후에 행해진 한의학에 대한 말살정책으로 한의학은 상당기간  침체기를 겪게 되어 일반 대중에게 한의사는 급성병에는 속수무책으로, 질병의 회복기나 만성질병에서 혹은 허약한 사람에게 보약이나 지어주는 사람 쯤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올바른  한의학적 방법으로 정확하게 변증치료를 하면 급성병에도 탁월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은 고금의 수많은 의안들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근래의 여러 논문 들에서 밝혀지고 잇다.

 이제 다시 한의학의 중흥기를 맞이하여 한양방의 상호이해와 현진으로 국민의 건강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국립의료원 한방진료부 의무기정 성 우용

                                                                                 1992년 6월 '한방과 건강'에 기고했던 글을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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