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 비아그라가 처음 나왔을 때 보건주보에 기고했던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1. 비아그라의 출현
얼마 전에 비아그라의 출현으로 전 세계가 술렁거렸고, 고개 숙인 남자들은 엄청난 축복으로 앞으로의 즐거운 생활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으며, 그 부인들도 ‘좋은 세상을 만나 이제야 남들이 모두 누린다는 행복을 맛볼 수 있겠구나’하고 속으로 좋아들 하였음 직하다.
그런데 바로 얼마 뒤에 비아그라를 먹고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신문의 해외토픽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다. 이 무슨 청천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비아그라도 맞는 사람이 있고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이 약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또 한 번 위신을 세우자고 목숨까지 걸어야 한단 말인가?
한의학에서는 모든 약을 독(毒)이라고 한다. 독이란 ‘그 놈 참 지독하다’고 할 때의 독하다는 말로 우리가 일상 먹는 음식물들은 독하지 않고 순하므로 오래 먹어도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약이란 특별한 이상상태를 교정하기 위하여 잠시 쓰는 것이므로 그 사람의 신체적 상황과 어울리지 않으면 알게 모르게 해로울 수 있으며, 심할 때에는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즈음 인삼이니 녹용이니 영지, 꿀, 알로에 등을 심심풀이 땅콩처럼 상복(常服)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단이 우선하지 않을 때에는 말 그대로 독이 될 수 있으므로 매우 조심해야 한다.
2. 질병과 약
병이 있기 때문에 약을 먹는다는 것은 상식이며 이렇게 생각할 때 만약 누군가가 완전히 건강하다고 진단되었는데도 약을 먹겠다고 하면 만류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이 있을 수 없기에 사람들은 좋다면 자기 몸에 맞던 안 맞던 기를 쓰고 약을 먹으려고 한다.
허약한 사람은 보약을 찾는데 그 보(補)란 도운다 깁는다는 뜻으로 모자라는 것을 보충한다는 의미이며,더럭더럭 아픈 사람은 보약과 상대되는 개념인 병을 공격하는 공약(攻藥) 또는 병의 기운을 덜어낸다는 뜻인 사약(瀉藥)을 써야 한다.
그런데 병이라는 것은 허약하지 않을 때에는 대체로 발생하지 않고 허약할 때는 병이 발병함으로써 그 결과로 허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실제 처방에서 순수하게 보하는 약만 쓰는 경우나 순전히 병을 다스리는 약만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또한 한약은 자연이 만든 그대로를 쓰며 그래서 여러 가지 성분이 안정되게 어울려 있으므로 비록 병을 쳐내는 성분이 많더라도 어떤 부분은 보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몸을 도우는 보약이라도 병을 공격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
3. 인체에 가장 필요한 것
그러면 비아그라는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한의학적인 진찰을 통하면 이 약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을까? 모처럼 희망을 가지고 복용하였다가 전혀 아무런 변화를 보지 못하여 자신감을 더욱 잃어 버린 사람이 그 까닭을 내게 물어 온 적이 있는데, 그 때 나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사람이 사회적인 활동을 영위하는 것은 외부의 환경을 자기에게 알맞게 바꾸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서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인데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돈이라는 것을 벌어 외부의 환경을 조절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하여 사회활동을 한다. 어떤 사람은 이 견해를 천박하기 짝이 없고, 인간은 돈이 아니라 스스로의 도덕적인 완성을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분노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면 내부의 환경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정(精)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아주 순수하고 미세한 필수적 생명물질이라는 뜻이다. 사람들 사이에 거래되는 돈처럼 인체내의 정은 그 쓰임새가 아주 무궁무진하여 이것이 충족되어 있으면 활력이 넘치며,빨리 늙지도 않고, 전염병이 유행할 때도 쉽게 걸리지 않을 것이며, 상처를 받아도 쉽게 나을 수 있도록 한다. 정말 정은 돈과 역할이 비슷하다 못하여 같다고 느껴진다.
정(精)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인체 내의 신장에서 만들어지고 또 쌓이는데 한의학에서의 신은 양방에서 말하는 신장(콩팔)과는 개념이 다르다. 이 정(精)은 명문(命門)을 거쳐서 인체에 배포되는데 명문은 목숨줄이라는 뜻이며 신장과 명문은 사회에서는 돈줄인 은행에 비유할 수 있다 .
4. 어르신과의 대화
어느 날 고희를 넘긴 어르신께서 진료받으러 오셔서 비아그라에 대해 물으시기에 이런 비유로 대답해 드렸다.
“한 마을에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는 두 개의 우물이 있는데, 한 우물은 물이 가득 차 있고 다른 우물은 바짝 마르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하필 이 수량이 풍부한 우물에는 양수기가 시원치 않아 물이 쫄쫄 흘러나오고, 저 말라 가는 우물에 달린 양수기는 성능이 매우 좋아 물이 콸콸 흘러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우물을 들여다 볼 수 없기에 이 성능 좋은 양수기가 달린 우물을 좋다고들 생각했지만 이 우물은 곧 물이 바닥나 버렸습니다.
요즘 우리주변에 잔고 없는 신용카드를 함부로 긁어 옷을 사 입고, 좋은 차를 타며 우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이 바로 이런 우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대로 오래 갈 수 없겠지요. 반대로 돈을 쌓아 두고도 다 떨어진 옷에 피죽을 먹으며 궁상을 떨고 이웃의 괴로움에도 모른 척하는 사람은 바로 양수기가 시원치 않은 우물과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체로 볼 때 먼저 말한 경우를 신음(賢陰)이 부족하다고 하고, 뒤의 경우는 신양(賢陽)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물론 신양과 신음이 동시에 부족한 사람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좀 더 치료가 어려워 상당기간 동안 치료하여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비아그라는 신음은 충분하지만 신양이 부족한 사람에게 써야 하는 약으로서 이러한 사람에게는 대단한 효험을 볼 수가 있겠으나 그득찬 우물물도 펑펑 쓰면 마를 날이 있기 때문에 적당히 써야 합니다. 만약 신음이 부족한 사람이 이 약을 지나치게 쓰게 되면 정력을 단숨에 고갈시켜 신정(腎精)이 부족한 증상표현이 줄줄이 나타나고 심하면 사망하게 됩니다.
저는 비아그라라는 약의 효능을 듣고 반드시 이 약 때문에 목숨을 앓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고 짐작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물물이 어느 정도 차 오를 때까지 신음을 보충하는 약을 오랫동안 먹으면서 그 동안에 퍼 쓰는 것을 아껴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습니다 .
어르신께서는 비아그라같은 약을 찾으실 것이 아니라 신음과 신양을 같이 보충하는 약을 드시면서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적당한 운동과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고, 무리한 육체노동과 급격한 외부환경의 변화를 삼간다면 혹시 회춘(回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회춘이라야 자연의 법칙을 어기지 않아 폼에 해가 없이 오래 건강하고 즐겁게 사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알겠소. 나도 무슨 분수를 몰라 비아그라를 써 본 것이 아니고, 하도 좋다 길래 한 번 써 보았다가 몸이 안 좋아 이젠 쓰지 않는구먼. 의학의 이치도 자연과 사회의 이치와 다를 것이 없음을 기르쳐 주어 고맙소. 앞으로는 선생의 가르침대로 섭생할 것이니 내 몸을 잘 돌 봐 주시오.”
5. 한의학과 수명
내가 근무하고 있던 국립의료원의 어떤 의사 한 분이 나에게 한의학이 국민건강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 만약 한의학이 정말 유용하고 한약이 그렇게 효과가 좋다면 왜 옛날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그렇게 짧았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에 들어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은 문화수준의 향상으로 위생관념이 좋아지고 의식주가 적당하여 그런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럼 옛날 왕(王)들은 어째서 장수하지 못하고 일찍 죽은 사람이 그렇게 많으냐고 물어 왔다. 왕(王)들은 정사(政事)로 정신을 많이 쓰고 숱한 후궁들로 정력을 낭비하여 정을 고갈시키고, 운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정을 생산하지도 못하는데 어찌 오래 살 수가 있었을까? 적당한 운동과 담박한 음식이라야 정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역대의 제왕들은 대개 쾌락에 너무 탐닉하여 자기 스스로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지 못하였다. 주위의 어의(御醫)들이 옳은 길을 가르쳐 드렸을 테지만 왕들의 일시적인 쾌락욕구에 아부하여 우선 힘을 쓸 수 있는 약을 처방한 일부 어의도 있었을 것이다.
중국의 한나라 때는 재야 의학자인 방사(方士)라는 사람들이 비아그라 비슷한 약을 제조하여 왕에게 바침으로써 왕이야 나중에 빨리 죽든 말든 우선 총애를 받으며 한 밑천 잡은 사람들도 있었다. 현대의 한의사들은 이런 독한 약은 금기시하여 잘 쓰지 않는다.
가장 먼저 나온 한약에 관한 책으로 신농본초경을 꼽는데 여기서는 상약(上藥), 중약(中藥), 하약(下藥)으로 나누고,상약은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며 건강하게 하는 약으로 오래 써도 좋은 약이며, 중약은 병이 있을 때에 나을 때까지 쓸 수 있으나 너무 오래 쓰면 몸에 약간은 해로운 작용을 미칠 수 있는 약이며, 하약은 아주 독하므로 잠깐 쓰고 말아야 하는 약으로서 장복할 때 에 는 몸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치므로 대단히 조심하여 써야 할 약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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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올바른 건강관리
요즈음도 비아그라의 인기는 엄청나서 수입이 정식으로 허가되지도 않았는데도(요즈음은 수입되어 전문의의 처방으로 복용할 수 가 있다.) 상당한 양이 국내에 반입되었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어떤 이는 약을 복용하고 만족스런 효과를 보았다고 하나, 혹 이런 사람이라도 한의학적 시각으로 볼 때 계속 장복한다면 앞에서 말한 바대로 얼마 안 가서 여러 이상한 질병에 시달리어 수명이 단축 될 것이 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약에 대한 맹신은 전 세계에 소문이 나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까지 가서 곰 쓸개나 발바닥 혹은 사슴 뿔을 허가도 받지 않고 불법 포획하는 등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있고 국내에서도 뱀의 씨가 마를 정도로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이도 모자라 태국에 가서는 코브라 쓸개를 먹는 등 법석을 떤다. 홍콩(요즈음은 중국도 여행이 자유로우니 북경 등도 포함될 수 있겠다)에 효도관광 가셨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우황청심원이다, 녹용이다 하여 외화를 낭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로 우황청심원은 이름은 같지만 처방 내용이 다른 나라와 판이하게 다르며, 우리나라 것 이 가장 효과 가 있음을 밝혀 두고자 한다.
병은 발병하는 이치가 있으며, 약은 병에 작용하여 병을 낫게 하는 이치가 있는 것이니 세상에어떤 사람에게도 잘 맞는 약이나, 어떤 병에도 잘 듣는 만병통치약은 결코 없다. 오래 동안 원인이 쌓여 발병하였거나 환자의 원기가 허약하다면 치료기간이 오래 걸리고 금방 생긴 병이나 힘이 팔팔한 젊은이가 아픈 경우는 비교적 치료기간이 짧다. 질병의 치유는 긍정적이며, 낙관적,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치료가 빠르며, 부정적, 비관적, 폐쇄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의 치료 기간은 상대적으로 오래 걸린다.
비아그라를 써 보고 싶은 사람들이여! 전쟁을 할 때 대포를 만들었는데 나라의 물자가 부족하여 대포를 많이 만들지 못했거나, 대포가 몇 번 만 쏘면 열을 받아 비틀린다든지, 대포알이 부족하다든지, 포신에 이물질이 끼어 있다든지 대포의 사정거리가 짧다든지 한다면 그 전쟁을 이기기 힘들지 않겠는가?
무엇인가 부족하거나 아플 때는 우선 그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여 그에 알맞게 처치하여야 한다.
염증이 있거나 먼저 병균을 쫓아내야 할 실증(實證)의 경우는 양수기에 이물이 끼어 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그것을 빼내는 사약을 써야 하고 기혈과 신정이 허약하여 비실비실 힘이 없는 경우는 우물물이 잘 고이지 않는다든지 양수기의 성능이 좋지 않다든지 우물물이 너무 말랐다든지 하는 등과 같은 허증(虛證)이므로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는 보약을 쓰는 등 그 증세에 알맞은 치료방법을 사용하면 몸의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기대했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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