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만산 상한론 강의

제6강 상한론을 배우는 방법과 태도 2-2

臥嘗 齋 2019. 3. 10. 00:35

어느 해인가 내가 유도주劉渡舟 스승님과 공농병학원工農兵学員들을 데리고 북경北京 경서문두구京西門頭溝의 광구鑛區에서 개문판학開門辦學할 때였습니다. 내가 말하는 개문판학이란 말을 현재의 학생들은 무슨 말인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을 겁니다. 그 때는 우리가 수업을 시골 기층基層 백성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해야 했는데, 이는 그 때의 그런 형식의 제도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광부들의 집에 들러 치료를 해주곤 했었는데, 20일 전 출산한 어떤 광부의 며느리가 열흘 전부터 열이 나고 온 몸이 아프다고 하여 우리가 치료하러 그 집에 갔었습니다. 당연히 기혈양허氣血兩虚하여 피부에 영양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고 처음에 팔진탕八珍湯을 삼일 분을 주었는데, 효과가 없이 계속 아프다고 해서 다시 인삼양영탕人蔘養榮湯을 주었지만 여전히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유도주 스승님과 한 방에 묵었으므로 이에 대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 유노, 제가 산후신통産後身痛한 환자를 보고 보기양혈補氣養血하는 처방을 썼는데 왜 효과가 없을 까요? 감기증상이 따로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요." " 무슨 처방을 썼나?" "팔진탕도 써 봤고, 인삼양영탕도 써 봤습니다." "상한론 중의 처방 계지가작약생강각1냥인삼3냥신가탕桂枝加芍藥生薑各一兩人蔘三兩新加湯을 썼어야지. 이 처방은 계지탕桂枝湯에 작약芍藥을 더 많이 넣어 양혈유근지통養血柔筋止痛하고, 생강生薑을 더 많이 넣어 약을 체표體表로 끌고 나오게 하며, 따로 인삼을 더 넣어 익기益氣하도록 하는 약일세. “
그런데 내가 그 약을 쓰려고 보니 산모가 산후에 땀을 많이 흘려 움직이면 바로 땀투성이라 내가 생각하기에 생강을 많이 쓰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생강은 매우 매워 내가 평소에 식사할 때 생강을 꺼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생강을 싫어할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래서 생강은 세 조그마한 조각으로 잘라 줄여 넣고 다른 약은 원방대로 세 첩을 처방하였는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처방해 주신 그 신가탕을 환자에게 썼던 사흘까지 쳐서 제가 치료한 지 9일이 되었는데요. 원래 열흘 동안 아팠고 다시 또 9일이니 모두 해서 스무날인데도 아직 온 몸이 아픈 게 안 풀렸습니다. 선생님 약을 먹고도 효과가 없어요." "그 처방 내가 보게 가져와 보게." 그래서 그 처방을 드렸습니다. "생강 세 조각 큰 거 세 조각 넣었나?" "작은 거 세 조각이요." "왜 이렇게 적게 넣었지?" " 산후에 땀을 많이 흘려서 신산辛散한 약을 많이 넣기가 겁나서요. 또 생강은 너무 맵잖아요." "자네는 신가탕新加湯에 생강을 쓰는 까닭을 아나? " "약을 체표로 끌고 가기 위해서 아닌가요?" "그런데 요만큼 써서 되겠나?" "땀을 아직 흘리는데요?" "자네 지금 보기양혈하는 약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약이 표부에 이르게 되면 오히려 땀을 흘리지 않게 되네. 이 약은 기표肌表의 기혈을 보익함으로써 피부에 영양을 주어 신통身痛을 치료하는 것일세." "생강을 얼마나 쓸까요?" "15g 쓰게. 자네가 직접 15g이라고 분명히 써 넣고, 무게를 달고 나서 썰게." "선생님, 너무 맵지 않을까요?" "자네는 지금 요리를 하나? 약을 처방하나!" 선생님께서는 늘 내가 처방을 낼 때마다 약 맛이 어떤지 입맛이 어떤지를 너무 신경 쓴다고 나무라곤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환자가 어떤 약이든 약을 먹고 못 견딜 정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을 앓는 것이 벌써 괴로운데 아무리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는 해도 약의 맛과 입맛을 안 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한 번도 쓰지 않은 약이 있는데 바로 오령지五靈脂입니다. 그게 치료효과가 아무리 좋대도 달인 약이 누린내가 진동하는데, 환자에게 동물의 변을 먹인다는 것이 내게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지요.
아무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죠. 15g의 생강이 든 약을 환자가 다 먹고 나자 땀을 덜 흘렸고, 이틀째 먹고 나서는 몸이 덜 아프다가, 사흘째 먹고 나서는 몸이 아프지 않다고 했습니다.
돌아와서 내가 환자가 나았다고 했더니 "그렇겠지. 이 처방에 생강을 원래대로 넣었더니 효과가 있지? " 하셨습니다. "선생님. 제가 인삼양영탕, 팔진탕을 쓴 게 잘못된 건 아니죠?" "자네가 내장內藏의 기혈氣血을 부양扶養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네. 그녀는 지금 기혈이 부족해서 기부肌膚에 영양을 주지 못한 상태라, 그 약들은 표부로 약 기운을 끌고 나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신통이 치료되지 않았던 것이지."
그래서 "지상득래종각천, 절지차사요궁행纸上得来终覺浅,绝知此事要躬行"인 거죠. 그 뒤로 부터 나는 신가탕新加湯으로 영혈榮血이 부족하여 기부肌膚가 실양失養한 신동통身疼痛을 치료할 때 생강을 너무 적게 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임상에서의 경험이 없으면 어떻게 스스로의 지식으로 만들 것이며, 중경이 원방에 생강을 더 넣은 이유를 어떻게 마음에 세길 수 있겠습니까.

열독제주,심입연습阅讀诸注深入研習
이 정도까지 배우면 매우 훌륭한 임상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좀 더 깊이 상한론을 연구하고 싶거나, 전문적으로 상한론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려면 계속해서 여러 학자들의 저서와 상한론에 대한 주해를 읽고 난 뒤 연구에 매진해야 합니다.
처음 상한론을 전면적으로 주해한 사람은 금 대金代의 성무기成無己인데, 그는 《주해상한론注解傷寒論》을 썼습니다. 이 책의 출판 연대는 금金 황통皇统 4년으로 서기로는 1144년입니다. 송 대 국가교정의서국의 임억, 손기, 고보형이 송 치평2년 서기1065에 상한론을 교감校勘, 각인刻印했는데 100년이 채 안된 79년 뒤 성무기는 송판 상한론을 기초로 상한론 전문에 전면적인 주를 달아 주해상한론을 지었습니다. 주해상한론이 출판되자 의학자들은 이 책이 원문도 있고, 주도 달려 있어 읽기가 쉬웠으므로, 이 성주본成注本 상한론을 후세에 명 대, 청 대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여러 번 찍어냈는데 특히 명 대에는 송판 상한론의 원래 모습이 어떤지 아는 사람들 까지도 거의 없어졌으며 이 성무기의 주해상한론은 ‘성본成本’이라고 불렸습니다. 상한론 판본의 유전에 있어 성주본 상한론은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본 상한론을 상한론의 기본 판본으로 삼아오던 것이 문화혁명이 끝나고 난 다음까지 이어져 중의약대학의 일회 연구생들에게 사용한 교재용의 원본도 성무기의 주해상한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무기의 주해상한론은 비록 상한론으로 상한론을 해석하는 이경해경以經解經의 방법을 채택하였지만 우리가 오늘날 상한론을 깊이 연구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참고서입니다.
성무기의 상한론이 세상에 나온 뒤 상한론에 주를 달거나, 여러 각도로 상한론을 연구한 훌륭한 의학자, 뛰어난 저작들이 천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런 저작들은 어떤 것은 이론방면으로, 어떤 것은 임상의 측면에서, 어떤 것은 다른 여러 분과학의 관점에서 상한론에 대한 여러 방위, 여러 각도, 여러 층차의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런 저작들의 이런 지식들은 상한학술을 풍부하게 하고 발전시켜 《상한론傷寒論》이란 하나의 책을 ‘상한론학’으로 까지 발전시킨 것이므로 우리가 상한론학을 연구할 때 이런 저서들은 반드시 모두 한 번 봐야만 합니다.
나는 이런 많은 저서들 중에서 몇 가지 책을 여기에서 추천하려 합니다. 하나는 성무기의 주해상한론이고, 또 하나는 명 대 방유집方有執의 상한론조변傷寒論條辨이며, 또 다른 하나는 청 대 가운백柯韻伯의 상한래소집傷寒來蘇集인데, 다시 하나를 더하자면 청 대 용재경龍在涇의 상한관주집傷寒貫珠集을 들겠습니다. 과거 우리가 대학원생 입학시험에서, 지금은 이 항목이 없어졌지만, 그 때는 대학원생에게 참고서를 미리 지정해 줄 적인데, 상한론을 제외하고 이 네 가지 책을 모두 대학원생입학고시의 참고서로 지정하여 주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전국통편교재全國通編敎材를 따르는데, 오판교재五版敎材에는 참고자료가 하나 있습니다. 인민위생출판사에서 나온 겉면이 초록색인 그 책으로 이것도 역시 참고가 될 수 있고, 현재 우리가 여기 가지고 있는 상한론 육판 교재六版敎材에 맞추어 나온 "중의약고등총서中醫藥高等叢書 <상한론傷寒論>"은 육판 교재의 참고자료로 나온 것인데, 모두 참고서로 사용할 만합니다.
학습방법에서 가장 마지막이 "급취증장, 부단진취汲取衆长,不断進取" 입니다. 내가 이 강좌의 처음에 일찌기 영화감독이 영화가 유감의 예술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내가 쓴 이 책들도 책마다 유감의 창작이며, 강의마다 유감의 강연이라고 느낍니다. 왜 이렇게 말 하는고 하니 많거나 적거나간에 혹은 강의할 때 말실수도 했고, 혹은 내가 인식하고 있는 어떤 지식에 잘못알거나 치우친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계가 있는 것이라 지금의 인식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몇 년이 지나 지식이 더욱 확충되면 사람들은 ‘아! 그 때 내가 왜 이렇게 말했을까! 잘 못 말했구나. 정말 학무지경學無止境이로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상한론을 배우는 과정에서 ‘내 관점이 정확해’라고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가 현재 지금 도달해 있는 수준이 최고야! 여기서 더 발전할 수는 없어.’라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인식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니, ‘학무지경’이며, ‘산외유산山外有山, 천외유천天外有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워가는 과정에서 임상가들의 장점과, 이론 연구자들의 장점을 모두 흡수하여 끊임없이 진보하여야 하며, 절대로 발전을 멈추거나, 자만심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중의약대학에서 한 번 시험 삼아 다른 분의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거의 매 강좌에서 선생님들의 강의에 이상한 곳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내 강의를 녹음해서 듣거나, 녹화해서 보아도 역시 매 강좌마다 이상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중에 내 강의의 녹음, 녹화를 듣거나 볼 때 모두 옳다고는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착오가 있으며, 심지어 허다한 말실수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럴 때 여러분들이 이해하시고,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상한론의 개론에 관한 여섯 개의 문제를 모두 강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