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병 강요-2
(3)동명소음同名少阴
위에서 우리는 감수坎水와 리화离火를 말했는데, 이들을 사람 몸에서는 어디에서 맡아보는 것일까? 모두 소음少阴에서 맡아본다. 수화水火는 원래 서로 섞일 수 없지만 사람의 몸에서는 서로 잘 섞일 뿐 아니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데, 왜 그런 것일까? 아래서는 이 문제를 토론해 보겠다.
①수화자水火者,혈기지남녀야血气之男女也
수화水火가 둘 다 같이 소음少阴으로 불리는데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몸에서 수화水火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수화水火가 반드시 서로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수화는 서로 기대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데, 떨어지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왤까? 《소문素问·음양응상대론阴阳应象大论》에 잘 설명되어 있다. 수화가 무엇인가? 수화는 바로 음양阴阳이다. 음양은 무엇인가? 음양은 바로 남녀男女이다 그래서 사람에서 수화는 바로 사람의 음양이자 사람 몸의 남녀이다. 한 쌍의 남녀가 한 집에 사는 것이 무엇인가? 당연히 부부이다. 부부는 서로 의지하고 화합해야 한다. 예전에는 부인이 시집가면 남편의 성을 따르는 습속이 있어 부부가 있었는데 같은 집에서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으며, 더구나 그 이름을 소음이라고 한 것은 매우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음양阴阳、남녀男女、수화水火는 화합和合해야 하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은 앞에서 태음을 이야기할 때 일찌기 《역易·계사系辞》의 “천지인온天地氤氲,만물화순万物化醇。남녀구정男女构精,만물화생万物化生。”라는 구절을 끌어 이야기 했었다. 화합하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인온氤氲하고, 어떻게 구정构精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소문素问·상고천진론上古天真论》에서는 “음양화阴阳和,고능유자故能有子。”라 했다.
위에서 말한 인온氤氲과 구정构精은 안과 밖으로 구별되는데, 바깥으로 보면 인온은 대우주천지大宇宙天地에서 천기天气가 하강하고 지기地气가 상승하는 것으로 이 교섭으로 만물이 화순化醇하여 나오는 것이다. 우리 지구 위의 모든 식물과 동물의 생명이 이 인온의 결과로 생겨났다. 구정构精은 남녀부처男女夫妻 사이의 구정构精인데 이 구정으로 “만물万物”들이 화생하여 새로운 남녀男女를 만들어 낸다.
위의 이 구정构精은 현대에 들어 비교적 문명화된 “성행위性行为”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유교에서는 이를 “색色”의 문제로 뭉뚱그려 이야기하고 있다. 공자는 일찌기 “식색성야食色性也。”했고, 또 “음식남녀饮食男女,인지대욕존언人之大欲存焉。”이라고도 했다. 성性은 무엇인가? 성性은 바로 자연적이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는 두 개 방면을 포괄하는데, 하나는 바로 먹는 것이다.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절대로 안 된다. 사람은 먹어야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늘 민이식위천民以食为天이라고 하여 먹는 것을 하늘과 같이 말할 만큼 중요하게 보았다. 다른 하나는 바로 색色으로, 남녀 사이의 일인 성행위性行为를 말한다. 이 쪽도 똑 같이 중요한데, 만일 이 행위가 없다면 인류가 벋어 나갈 수가 없다. 더군다나 색色은 번연繁衍하는 것 외에도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는 우리가 《소문素问·생기통천론生气通天论》에서 “범음양지요凡阴阳之要,양밀내고阳密乃固,양자불화两者不和,약춘무추若春无秋,약동무하若冬无夏,인이화지因而和之,시위성도是谓圣度。”-무릇 음양의 요체는 양이 치밀하여 음을 잘 지키는데 있으니 이 둘이 어울리지 못하면 봄은 있되 가을은 없는 것 같고, 겨울은 있으되 여름이 없는 것 같으므로 잘 어울리게 하는 것인데 이를 성도라고 한다.-라고 한데서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음양阴阳은 “인이화지因而和之”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지 못하면 봄, 여름은 있는데 가을 겨울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봄, 여름만 있으면서 가을, 겨울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로 이어지는 자연의 흐름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다만 음양의 어울림은 어지러이 해서는 안되는데, 어지러이 어울리면 넘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어울림은 깊은 이치를 품고있어 많이 살피고 찾아야 하는 것인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백岐伯이 어찌 “성도圣度”라고 했겠는가?
위에서 말했던 인온氤氲, 구정构精, 음양화阴阳和는 만물万物을 화순化醇케하고, 번연생식繁衍生息케 하는 것을 빼고도 또 다른 하나의 중요한 작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밖을 어울리게 함으로써 안도 어울리도록 이끄는 것이다. 외화外和로 내화内和를 이끌어내어 몸 안에 있는 음양阴阳、수화水火가 서로 기대고, 뭉쳐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이래야만 비로소 “음평양비阴平阳秘,정신내치精神乃治”할 수 있고 비로소 생화生化가 그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잘 어울린 남녀의 구정构精, 이런 음양합阴阳合은 후대를 퍼뜨리는 것 밖에 외화外和를 이룸으로써 내화内和를 이끌어내므로 사람의 심신건강 문제에도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핵심이 되는 문제는 이 과정은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반드시“성도圣度”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古代의 “방중술房中术”이 바로 이 문제를 전문적 토론하는 학문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안먹고 살 수는 없다. 밥 먹는 것 에 더하여 똑같이 중요한 것이 바로 남녀男女이다. 그래서 음식위생饮食卫生과 남녀위생男女卫生은 사람의 심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 문제이고, 또 우리가 인류를 연구하는데 두 개의 기본적 출발점이다. 인류에게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공자는 “식색食色” 두 글자에 담아내었으니 이로써 공자의 학문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위에 말한 것을 한데 모아보면 사람은 음식饮食과 남녀男女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음식의 작용은 사람의 음양阴阳、수화水火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고, 남녀는 바로 몸의 음양과 수화를 잘 섞어 어울리도록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렇다면 일반인들은 음식남녀를 다 잘 해결할 수 있겠지만, 스님이나 도사등 출가出家한 사람들은 남녀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수련修炼을 거치면서 풀어야 한다. 도가道家의 공부功夫 중에 우리는 자주 차녀영아姹女婴儿,용호교구龙虎交媾,수화상제水火相济,취감전리取坎填离등의 어귀들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이들은 모두 내화内和의 방법이다. 그들은 직접 내인온内氤氲,내구정内构精의 방법으로 사람 몸에서 수화水火、음양阴阳의 화합을 실현한다.
②음양수화하이상구 阴阳水火何以相媾
사람 몸의 수화는 잘 어울려 섞여야 하며 잠시도 떨어져서는 안된다. 다만 일반적인 이치에 따르면 수水는 음阴이라 중탁重浊하여 하강下降하는 것이고, 화火는 양阳이어서 경청轻清하므로 상부上浮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내려가는 것은 내려가 버리고 올라가는 것은 올라가 버리므로 둘 사이는 갈수록 멀어지게 되는데 어떻게 상화相和、상구相媾할 수 있는 것일까? 이로 볼 때 수화水火의 상구相媾는 확실히 매우 교묘한 과정을 거쳐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易》에 “본호천자친상本乎天者亲上,본호지자친하本乎地者亲下.”-하늘에서 비롯된 것은 위와 가깝고, 땅에서 비롯된 것은 아래와 가까이 지낸다.-라 했다. 앞에서 우리가 일찌기 감리坎离가 만들어질 때를 강의하면서, 리离는 화火인데 리중허离中虚의 가운데 그 한 효를 어디에서 가져 왔다고 했던가? 곤坤에서 가져 왔다고 했다. 감坎은 수水인데 감중만坎中满의 그 한 효爻는 어디에서 가져왔다고 했는가? 건乾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감중만坎中满은 천天에 뿌리가 있으므로 “본호천자친상本乎天者亲上”이요, 리중허离中虚는 지地에 뿌리가 있으므로,“본호지자친하本乎地者亲下”라고 한 것이다. 바로 이런 요인때문에 위에 있는 것이 아래로 내려올 수 있고, 아래에 있는 것이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수화水火의 서로 돕게 되고, 비로소 감리坎离가 서로 이어지게 된다. 이래서 한의학은 매우 깊이 파고들면 “역易”이란 학문의 힘을 빌려야 한다. 보통 수준에서는 “역易”이 없어도 되지만 학문이 깊어지면 “역易”을 몰라서는 어렵다. 손사막孙思邈이 왜 “부지역부족이위대의不知易不足以为大医”-역을 모르면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없다.-라고 했겠는가? 여러분이 소의小医만 되어도 좋다면 “역易”을 몰라도 아무 탈이 없다. 그 당시 돌팔이들에게 “역易”이 무슨 필요가 있었겠는가? 당연히 필요없었다! 그렇지만 대의大医가 되려면, 한의학의 깊은 경지에 이르려면 반드시 “역易”을 알아야만 된다.
③ 건곤위체乾坤为体,수화위용水火为用
“역易”을 알려면 반드시 먼저 팔괘八卦를 알아야 하고, 팔괘를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먼저 선천과 후천을 알아야 한다. 선천과 후천의 관계는 바로 체용体用의 관계인데, 선천先天이 체体가 되고, 후천后天이 용用이 된다. 선천괘에서는 건곤乾坤이 남북南北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후천괘로 오면 이 구조가 바뀌어, 원래 건곤의 자리였던 남북을 감리坎离가 차지하게 된다. 리화离火는 건위乾位를 차지하여 천화동인天火同人을 나타내고, 감수坎水는 곤위를 차지하여 지수사地水师를 드러낸다. 수화水火의 형성을 강의할 때 왜 감수는 곤이 체가 되고, 리화는 건이 체가 된다고 했었나? 그것은 바로 이런 특수한 선후천先后天 관계때문이었다.
팔괘八卦는 팔방八方에서 사정四正과 사우四隅로 나뉜다. 동서남북东西南北이 정正이 되고 나머지는 우隅가 되는 것이다. 선천괘에서는 건곤乾坤이 남북에 있어 정正이 되고, 감리坎离가 동서东西로 정正이 되지만, 후천팔괘后天八卦가 되면 건곤乾坤이 바른 자리에서 모퉁이로 물러나고 감리坎离가 동서东西의 바른 자리에서 훌쩍 뛰어 남북의 바른자리로 옮겨가서 머문다. 팔괘가 이렇게 선후천에서 자리잡음이 달라지는 것으로 우리는 괘卦가 비록 여덟로 나뉘지만 “역易”에서 특별히 중시하는 것은 감리수화坎离水火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팔괘 중에서 오직 감리坎离 두 괘만 선후천에서 모두 바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천에서는 감리가 위정纬正이었고 후천에서는 감리가 경정经正이 되었다.
역易은 선천이 체体가 되고 후천后天이 용用이 된다. 그리고 건곤은 체중体中의 체体가 되고 감리坎离는 용중用中의 용用이 된다. 그런데 감리는 선천과 후천에서 처음부터 끝가지 정위를 차지하므로 역易에서 중시하는 것은 용用이다. 왜 그럴까? 선천은 바뀌기 어렵고, 후천은 바뀌기 쉽기 때문이다. 역易이란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변역变易이다. 역易은 변혁变革을 중시하며 역이 바로 지금 현재를 중시하는 정신이 이로써 훤히 드러난다.
역易이 감리수화坎离水火를 중시한다는 것은 수화水火를 말하는 것이 곧 건곤乾坤을 말하는 것이며, 수화水火를 말하면 남녀를 말하는 것이며, 수화를 말하는 것이 바로 음양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 된다. 그리고 소음少阴이란 이름인데, 수족 소음少阴의 경经은 이미 수화水火를 다 아우르고 있어, 소음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이 소음少阴에 이르면 대개 건곤乾坤、기혈气血,수화水火、음양阴阳이 뒤흔들려서 음양이 헤어지게 된다. 그래서 병이 소음에 이르면 사증死证이 많다.
④감리수화 坎离水火,입명지근立命之根
감리수화坎离水火의 작용은 어째서 이렇게 중요하며, 어떻게 홀로 사정四正에 자리잡을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정흠안郑钦安이 《의리진전医理真传》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건곤육자乾坤六子,장소개득건곤성정지편长少皆得乾坤性情之偏。유중남惟中男、중녀中女,독득건곤성정지정独得乾坤性情之正。인품천지지정기이생人禀天地之正气而生,차감리소이위인성입명지근야此坎离所以为人生立命之根也。”-건곤의 여섯 아이들이 맏이와 막내가 모두 건곤의 치우친 성정을 갖고 태어났다. 그러나 오직 가운데 딸과 아들이 건곤의 바른 성정을 가지고 태어났다. 사람은 천지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으므로 이것이 바로 감坎과 리离가 사람의 명을 세우는 뿌리가 되는 까닭이다.-라고 한것이 바로 그것이다. “인품천지지정기이생人禀天地之正气而生”이라는 도리로 우리는 매우 쉽게 감리坎离가 왜 인생입명人生立命의 뿌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경经에서 "선언천자善言天者,필응우인必应于人"이라 했는데 이를 사람을 잘 알면 반드시 사회社会생활도 잘 할 수 있다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니 이천 년 동안 계속된 봉건사회封建社会에서 대대로 임금들이 가운데 아들이 아닌 큰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그것이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소음少阴이 수화水火 두 방면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위에서 우리가 수화水火、음양阴阳、남녀男女、건곤乾坤 등 네 개 방면을 이야기하면서 살펴보았다. 사실 이는 우리가 《주역周易》을 떠들어 보기만 해도 바로 매우 뚜렷이 알 수 있다. 《주역周易》은 어떤 구조인가? 건곤乾坤이 으뜸이므로 첫 괘가 건乾,두번 째 괘가 곤坤이다. 그러면 역易은 무엇으로 끝을 맺고 있나? 역易의 끝은 둘인데 하나는 상경上经의 끝이고, 하나는 하경下经의 끝이다. 상경은 감리坎离로 끝나는데 하경은 어떻게 끝날까? 이것도 감리坎离로 끝난다. 다만 수화기제水火既济、화수미제火水未济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역周易》 전체의 구조에서 건곤乾坤이 처음이 되고 감리坎离로 끝을 맺어 건곤으로 체体를 삼고, 감리로 용用을 삼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소음少阴이란 한 단어일 뿐이지만 사실은 이로써 이미 건곤乾坤、천지天地、음양阴阳、수화水火를 모두 다 쓸어담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역易에서 건곤乾坤이 처음이고, 감리坎离가 끝이 되는 이 구조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육경병을 토론할 때 반드시 궐음이 가장 마지막 한 경经이지만 육경병의 가장 증요한 마지막을 소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한다. 이 관문을 넘을 수 있으면 큰 문제가 있을 수 없지만, 넘을 수 없다면 매우 귀찮아진다. 그래서 이 삼음편三阴篇에서는 소음편을 가장 힘을 기울여 깊이 살펴 보아야만 한다.
(4)건곤생육자乾坤生六子
건곤乾坤이 여섯 자식을 낳았다고 하는 말을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자세히 생각해 보고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천지간天地间의 숱한 도리들이 사실 그 속에 다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건곤생육자乾坤生六子라 했는데 그것이 육자六子이지 일자一子가 아닌 것은 그 사이의 차별差别을 보여 준 것이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계사系辞》에서 “천지인온天地絪缊,만물화순化物化醇。”이라고 했다. 우리가 보기에도 천지간의 만물은 차별이 매우 커서, 식물계도 차별이 매우 크고, 동물계는 더욱 천차만별이다. 그러면 남녀의 구정构精으로 생겨난 육자六子는 어떨까? 한가지로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황제를 낳고, 어떤 사람은 거지를 낳으며, 어떤 사람은 재산이 한 나라에 맞먹는 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서발막대 걸릴 것 없는 가난하다. 참으로 주문주육취朱门酒肉臭,로유동사골路有冻死骨-높은 벼슬아치의 집에는 술과 고기냄새가 진동하는데, 길에는 얼어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있다.-이라고 읊은 두보杜甫의 싯귀诗句가 새롭다. 여러분이 잘 살펴보면 천지와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서로 닮았다는 것을 어디서든 느낄 수 있다.
건곤이 인온絪缊하여 육자六子를 낳고,음양阴阳이 교합交合하여 오행五行을 바꾸게 한다. 현재의 한의학 서적에서는 대개 음양오행阴阳五行을 나란히 놓고 말하는데, 오행과 음양은 결국 어떤 관계냐고 물으면 오히려 뚜렷하게 말하지를 못한다. 위의 토론을 거치면서 우리는 오행五行을 말해가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음양阴阳에서 오행의 변화를 찾게 되었는데, 이래야만 비로소 확실한 이론적 근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
건곤乾坤은 육자六子를 낳고 바른 자리에 있었는데, 후천에 이르러 쓰이기 시작할 때 건곤은 어디로 가는가? 사우四隅로 물러난다. 사우四隅가 사정四正보다 이선二线인 것은 확실하다. 공자孔子는 “역지위서야易之为书也,광대실비广大悉备. 유천도언有天道焉,유인도언有人道焉,유지도언有地道焉.”이라 했다. 건곤乾坤의 자리물림은 바로 노자老子가 말한 “공성신퇴功成身退”로 《노자老子·구장九章》에서 말한 “공성신퇴功遂身退,천지도야天之道也。”와 《노자老子·십장十章》에서 말한 “생지生之,축지畜之,생이불유生而不有,위이부지为而不恃,장이부재长而不宰,시위현덕是谓玄德。”이라 한데서 알 수 있다. 천지天地의 공로功劳가 큰가? 당연히 매우 크다! 육자六子를 낳았고, 만물을 낳았다. 그러나 육자가 일단 태어나서 수화水火가 집을 맡자 곧 이선으로 물러난다. 이런 덕德을 노자老子는 “현덕玄德”이라 했다. 천지는 왜 장구长久할 수 있는가? 바로 이 현덕玄德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老子·칠장七章》에서 “천장지구天长地久,천지소이능장차구자天地所以能长且久者,이기부자생以其不自生,고능장생故能长生”천지가 오래 가는데 오래 갈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살려고 힘쓰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산다.-이라고 했다.
한고조汉高祖 유방刘邦의 두 공신功臣인 장량张良과 한신韩信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장량张良은 황석공黄石公의 우수한 제자로 역易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한汉나라가 자리를 잡자 바로 은퇴隐退해 버렸다. 그런데 한신韩信은 어땠는가? 그는 장량张良처럼 제 때 은퇴하지 못하여 마지막에 목이 잘리고 말았다. 역사를 보면 그런 일이 늘 일어나고 있다. 모두들 역사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렇게 해내기는 매우 어렵다. 대개의 사람들이 성공한 뒤에는 물러나기를 바라지 않고 공을 내세워 승리의 열매를 따 먹으려고 한다. 《노자老子》에서 말한 “생이불유生而不有,위이부지为而不恃,장이부재长而不宰”를 해내지 못하고 스스로가 해냈다고 뽐내므로 장생长生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로써 역易에 담긴 내용이 광대실비广大悉备하여 그 속에 자연과학自然科学도 있고, 사회과학社会科学、인문과학人文科学도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易을 잘 연구하여 깨달으면 사람스럽게 사는 도리도 모두 그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