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소양병 강요-1
제칠장 第七章 소양병강요少阳病纲要
一、소양이란 무엇인가?-소양해의少阳解义
이 소양장少阳章도 편제篇题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겠는데, 편제의 다른 내용들은 이미 앞 두 장에서 토론했으므로 여기서는 소양이 포함하고 있는 뜻을 네 개 방면으로 간추려 이야기하기만 하겠다.
1.소양의 본 뜻은 무엇인가?-소양본의少阳本义
무엇을 소양少阳이라 하는가? 소少는 작은 것으로 아직 커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양의 원래 뜻을 글자대로 바로 풀어보면 소양이란 지금 막 생겨나 아직 커지지 않은 양을 말한다. 《소문素问·음양류론阴阳类论》에서는 소양을 “일양一阳”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이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소양의 첫번째 꺼풀이 가진 뜻이다.
두번째 꺼풀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사방제군四方帝君 가운데 소양이란 호를 가지고 있는 동화제군东华帝君을 말한다. 동화제군은 동방의 일들을 맡아보는데 소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도가에서는 소양을 동방东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양이 동방과 상관있다는 말은 당연히 춘삼월春三月과 그리고 인묘진寅卯辰과 상관이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자리매김은 소양의 본성과 매우 부합하여 옛말에 '의자医者、도자道者,기규일야其揆一也'-의医와 도道는 헤아림이 같다.-라 한 것이 참으로 헛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세번째 꺼풀은 소양이 목화木火 두 가지의 성질을 가지고 작용한다는 것이다. 소양은 일양으로서 처음 생긴 양이라 아직 커지지 않은 양이라 불리고 동화제군이라 불리므로 목의 성질로 작용하지만, 내경內经의 운기편运气篇에서는, 또 소양을 분명히 상화로 확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중성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체용体用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역易》의 선후천팔괘先后天八卦를 보면 리괘离卦는 화火로 후천팔괘 중에서는 바른 위치인 남방南方이라 남방화南方火라고 한다는 것은 모두들 아는 사실이지만 이 또한 쓰임의 관점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선천팔괘先天八卦가운데서 리화离火는 오히려 동방东方 목위木位에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바로 본체本体, 근원根源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화火는 어디에서 오는가? 화는 목木에서 온다. 옛날에는 현재처럼 성냥, 라이타, 펄스 점화기등 여러방법, 여러 형태의 불을 붙이는 도구들이 없었다. 옛 사람들은 무엇으로 불을 붙였을까? 나무를 마찰하여 불을 얻었다. 그래서 불이 나무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면 더 이른 시기에 나무를 마찰하여 불을 얻는 방법조차 몰랐을 때는 불을 어디서 얻었을까? 그 때는 불을 벼락으로 부터 얻었는데, 경칩惊蛰후 부터 봄 우레가 울기 시작하는데, 그러다가 벼락이 마른 나무에 떨어지면 불이 붙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원시적인 불씨이다. 번개는 봄에 속하고, 봄은 목에 속하므로 이것이 곧 나무와 불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다. 번개가 봄에 속하고 용龙도 봄에 속하므로 번개가 동방에 속하며 용도 동방에 속한다. 중국민족이 스스로를 용이라 하면서 그들이 용의 자손이라 하는데 그러면 이 용은 무엇일까? 공룡일까? 절대로 아니다! 용은 허구의 동물일까? 실재로 존재할까? 우리는 번개가 칠 때 옛 사람들이 그린 용의 모습을 흘깃 본 것도 같은데, 용과 번개 사이에는 아주 실재적이며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용의 전인이라는 사람들이 분명히 알고 있어야할 문제이다. 옛 사람들이 목화木火,소양화少阳火를 용뢰지화龙雷之火라고 부른 것은 자연에서 화火가 나온 곳과 관계가 있다. 용뢰화龙雷火,목화木火,목중유화木中有火,화출목중火出木中이 곧 소양少阳이 가진 이중성이다.
2.소양경은 무엇을 뜻하는가?-소양경의少阳经义
십이경락에서 소양으로는 수소양手少阳과 족소양足少阳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족소양足少阳의 의의가 훨씬 더 두드러진다. 족소양은 몸의 양 옆에 퍼져 있고, 족태양은 몸의 뒷쪽에 퍼져 있으며, 족양명은 몸의 앞쪽에 퍼져 있다. 《소문素问·음양이합론阴阳离合论》에서 “태양위개太阳为开,양명위합阳明为合,소양위추少阳为枢。”라 했는데, 이런 개합추开合枢의 관계는 위에서 말한 경락의 분포와 바로 맞아떨어진다. 소양이 양측면에 있는 것은 바로 문짝이 두 개인 큰 문에서 지도리가 양 쪽에 있는 것과 같으며, 지도리가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맡고 있는 것처럼 소양도 태양, 양명의 여닫이를 맡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어보면 좌左는 양阳이 되고,우右는 음阴이 되어 양阳은 열고 음阴은 합하므로 좌소양左少阳은 주로 태양이 열리도록 하는 것을 맡아보며, 우소양右少阳은 주로 양명이 닫히도록 하는 것을 맡아본다. 그래서 좌소양에 병적인 변화가 생기면 주로 태양에 영향을 끼치므로 태양과 합하여 치료해야 하는데 상한론 속의 시호계지탕柴胡桂枝汤은 이 때문에 만들어진 처방이며, 우소양의 병적 변화는 주로 양명에 영향을 끼쳐 양명과 함께 치료해야 하므로 상한론 속의 대시호탕大柴胡汤과 소시호가망초탕小柴胡加芒硝汤은 이 때문에 준비된 것이다.
3.소양부의少阳府义
소양부少阳府는 주로 담胆과 삼초三焦를 포함하는데, 담은 육부의 하나이자 육부 가운데서 매우 기이하고 별난 부府이다. 왜 기이하고 별나다고 하는 것일까? 육부 가운데 위, 대장, 소장, 삼초, 방광은 단지 육부의 성질로만 쓰이는데 유독 이 담만 기항지부奇恒之府로서의 성질을 같이 가지고 작용하기 때문이다. 장藏과 부府의 성용性用으로 보면 장은 음이 되고, 부는 양이 되어 둘 다 모두 치우친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오장은 장정기이불사 藏精气而不泻하고 육부는 전화물이부장传化物而不藏하는 것이다. 하나는 쟁이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으며 하나는 내보내기만 하고 쟁이지는 않는데 오로지 담胆만이 다른 장부와 다르게 육부의 성질을 가져 흘려버리기만 하고 쟁이지는 않으면서 또 오장의 성질도 함께 가져 쟁이되 흘려보내지 않는다. 한 장부에 두 가지 성질을 갖추었으면서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가운데 바르게 있는데 이것은 오장육부에서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특성이다. 바로 이 때문에 《소문素问·육절장상론六节藏象论》에 “범십일장凡十一藏,취결우담야取决于胆也。”라 했고 바로 이 때문에 《소문素问·영란비전론灵兰秘典论》에서 담胆을 “중정지관中正之官,결단출언决断出焉”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담이 이렇게 “중정지관中正之官”이란 이름으로 불린 것은 아무렇게나 붙여진 것이 아니라 참으로 불편불의不偏不倚하여 중정中正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그냥 사이부장泻而不藏하거나 혹은 그냥 장이불사藏而不泻하는 것으론 이런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조금이라도 치우치면 중정이 아니기 때문인데 오직 이런 중정이란 전제가 갖추어져야만 비로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기능을 쓸 수 있어진다. 중정하지 않은데도 결단할 수 있을까? 중정하지 못하여 한 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그 쪽을 편들게 마련인데 이것을 결단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를 결단이라고 하지는 못한다! 이것은 순사무폐徇私舞弊라 하고, 탐장왕법贪赃枉法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문素问·영란비전론灵兰秘典论》에서 내린 담胆이 하고 있는 이런 기능에 대한 자리매김은 중요한 생리적 의의가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의도 가지고 있다.
그 밖에 담의 글자 구성으로 보면 담胆의 성부声符로 “단旦”을 쓰고 있는데, “단旦”은 무엇인가? 해가 뜨는 것을 단이라 하는데 해가 동녘에서 솟아올라 온 누리를 비추므로 단은 밝은 것이 된다. 그리고 오직 밝아야만 결단할 수 있다. 흐리멍덩하고, 돈과 권세에 온통 마음을 뺏기고 있다면 어떻게 중정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옳은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밝아야 갈 수 있고 밝아야 결단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담이란 글자에는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담胆은 중정지관中正之官으로 밝음을 주관하며 또 청정지부清净之府가 되는데 담의 이런 기능은 '청정렴명清正廉明'이란 네 글자로 간추릴 수 있다. 또 사실상 이 청정렴명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이 "결단决断"이 참된 의의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담胆이란 문제를 토론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순수한 생리학生理学、생명학生命学、생물학生物学의 문제 뿐 아니라 매우 중요한 사회적 문제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생리현상을 꿰뚫어 보면서 사회문제를 확실히 비추어내고, 사회현상의 연구를 거치면서 오히려 생리를 더 깊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소문素问·영란비전론灵兰秘典论》이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는 사회의학 모델이다.
이제 우리는 이어서 “삼초三焦”라는 부府를 살펴 보기로 하자. 삼초의 관직을 《영란비전론灵兰秘典论》에서는 “결독지관决渎之官,수도출언水道出焉。”이라 했는데 결독决渎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결决은 소통疏通하는 것이며, 유행流行하게 하는 것이며, 닫힌 것을 여는 개폐开闭이므로 《영추灵枢·구침십이원九针十二原》에 “폐수구闭虽久,유가결야犹可决也。”라고 했다. 그러면 독渎은 어떠한가?독渎은 《설문说文》에서 “구야沟也。”라 했는데, 구沟는 독渎의 의미를 작게보아 말한 것이고, 크게 보면 이아尔雅에서 “강하회제위사독江河淮济为四渎”이라 한 것처럼 큰 곧 강수江水、하수河水、회수淮水、제수济水라는 큰 물을 이른다. 그러므로 결독决渎은 바로 구거수로沟渠水路를 소통류행疏通流行하여 물길이 잘 흐르도록 한다는 말이므로 “결독지관决渎之官,수도출언水道出焉”이라 한 것이다. 이렇게 물길이 시원하게 흘러야 비로소 물은 만물을 해치지 않고 이롭게 한다. 그래서 결독지관이란 신체의 건강과 국민의 생계에 모두 매우 중요한 일을 기관을 말하는 것이다.
결독하는 일을 왜 삼초에서 담당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상당히 복잡할 뿐 아니라 론쟁이 되고 있는데, 나에게는 이를 완전히 깨끗하게 밝혀 낼 능력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여기서는 단지 앞에서 말했던 삼초의 개념을 가지고 이와 연관된 생각들을 조금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삼초에서 “초焦”를 먼저 살펴보자. “초焦”의 뜻은 비교적 분명한데, 화火자를 깔고 있으므로 불과 관계가 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불 위에 놓고 구우면 초취焦臭 곧 탄 냄새가 난다. 그러므로 초焦는 불의 냄새이므로 초焦는 바로 화가 작용하여 나타난 모습이다. 우리가 운기运气를 보아도 운기의 소양상화少阳相火는 곧 삼초三焦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삼초와 불의 관계가 매우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독의 역할을 삼초가 맡아보며 물길을 여는 작용이 삼초로 완성된다는 것은 무슨 문제를 설명하는 것일까? 이것은 물의 기능과 용도가 반드시 불의 도움을 받아야 완성된다는 말로 이 또한 우리가 태양편에서 다루었던 이론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고 있다.
초가 불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는데 왜 이를 “삼초三焦”라 부르는 것일까? 삼초三焦는 불의 성질이 셋이며, 불이 오는 길도 셋이라는 말이 된다. 좀 넓혀 말한다면 세 불은 곧 천화天火、지화地火、인화人火가 되고, 좀 좁혀 말한다면 상초의 불, 중초의 불, 하초의 불이 된다. 상초上焦의 불은 주로 심폐心肺의 양阳을 말하며,중초中焦의 불은 주로 비양脾阳을 말하고, 하초下焦의 불은 주로 신양肾阳을 말한다. 우리가 배웠던 《한의내과학》를 떠올려보면, 수종水肿을 배울 때 수액水液의 대사代谢는 주로 폐肺、비脾、신肾 세 장과 관계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확실히 주로 폐肺、비脾、신肾과 관련이 있다. 화의 성질과, 화의 래로来路가 세 개라 했었는데, 같은 이치로 화로 작동되는 수水의 출로出路도 세 개가 되어야만 한다. 이 셋은 바로 상초천수上焦天水,중초지수中焦地水,하초수수下焦水水이다. 자연에서 보자면 천수天水는 곧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인데, 인체에서는 폐肺가 오장의 하늘이어서 폐가 물의 윗 원천이 되므로 폐가 맡아보는 이 물은 천수天水와 서로 이어진다. 지수地水는 곧 지하수地下水로 땅 밑으로 흐르는 강물 계통이 곧 이 종류에 속하는데, 인체에서 비脾는 운화运化를 맡아보며 토土가 되므로 토극수土克水의 관계로 볼 때 비脾가 맡아보는 이 수水는 지수地水와 서로 맞다. 수수水水는 곧 강하호해江河湖海의 물로 인체에서는 신이 수장水藏이므로 신이 맡아보는 이 수가 수수와 서로 맞잡이가 된다.
앞의 이런 물 곧 상초수, 중초수, 하초수는 나눠보면 셋이지만 뭉뚱그리면 하나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물과 물 사이에는 늘 이어져 있어 고리처럼 영향을 주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세 물 중에 이 중초수가 더욱 중요한데 중초수는 지하수계통의 물로 바로 풍수학에서는 옛부터 “용맥龙脉”으로 불리고 있다. 용맥은 풍수학에서 관심을 두고 있을 뿐 만 아니라 현대 생태학生态学에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왜 어떤 지방은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울창하고 어떤 지방은 풀포기하나 자라지 못하고 심하면 사막으로 변하는가? 그것은 바로 “용맥龙脉”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문제이다. 용맥이 있으면 곧 지하수가 있으면 자연히 만물이 자라나고 산림이 우거진다. 용맥 곧 지하수가 없으면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하여 산과 들이 말라간다. 청산록수青山绿水라고들 하는데 이 말을 좀 깊이 생각해보면 녹수는 청산이 있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알 수 있다. 녹수가 있어야 비로소 청산이 있게 되며 녹수가 없다면 오직 불모지만 있을 뿐이다. 이 푸른 물은 때로는 개울물일 수도 있고,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수 곧 용맥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이 나무를 심어 수풀을 만들려해도 조건을 따져봐야 한다. 나무를 심은 곳이 이 용맥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만약 용맥이 있으면 심은 나무가 잘 자라 숲을 이루기 어렵지 않지만 용맥이 없으면 대개 헛수고로 끝난다. 그래서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려 해도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과학이 필요하고, 풍수가 필요하다. 풍수학 에는 용맥을 찾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 이 용맥을 지하수로 바꾸면, 땅 속을 흐르는 강으로 바꾸면 용맥을 찾는 방법은 과학이 된다. 사실 많은 고대의 학문들이 연구한 것은 모두 과학인데도 이름만 듣고는 아주 쉽게 미신으로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과학처럼 보이는 현대적인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도 고려해 볼 문제이다.
중초지수中焦地水는 모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요즘 중국의 서부를 개발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강조되어야 할 것이 생태환경이다. 그러나 만약 이 지수地水와 생태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하고 이렇게 끝없이 지하수를 뽑아 쓰기만 한다면 생태가 좋아질래야 좋아질 수가 없다. 그 밖에 지하수가 날이 갈수록 더욱더 무섭게 파괴되어 갔을 때 인체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한다. 현재 현대과학도 이미 사회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사회의학모델, 심리의학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의학모델, 생태의학모델도 좀 늦거나 빠르거나 간에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