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병 강요-8
4. 양명의 치방에는 어떤 것이 중요한가?-양명치방요의阳明治方要义
양명의 본성으로 우리는 세 가지를 말했는데, 바로 통通、강降、량凉이라고 했으며, 그리고 양명이 병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통하지 못하고, 강하지 못하고, 량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양명병의 치료방법에서 그 핵심은 어떻게 통, 강, 량을 을 잃어버리게 된 것인지를 알아내어, 다시 양명이 통, 강, 량하게 하는데 있다. 우리는 양명의 대표방인 백호탕과 승기탕에서 위에 말한 작용들이 충분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삼승기탕은 성질이 모두 량凉하고 또 모두 통강通降하여 잘 쓰게되면 양명의 본성을 금방 회복시킨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쉽다. 그렇다면 백호탕은 어떤가? 한의학을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이 이름을 듣고 이상하고 드문 이름이라 생각하겠지만 알고나면 이 “백호白虎”라는 이름이 너무 꼭 맞아떨어지는 적당한 이름이라고 느끼게 된다. 백호는 사실 바로 서쪽을 나타내는 말로, 바로 신유술申酉戌이 되며, 바로 가을 석 달을 말한다. 양명병에 왜 서방백호西方白虎를 써야 하며, 왜 신유술申酉戌,추삼월秋三月월을 써야 하는가? 모두들 양명병의 주요 원인이 화열火热로, 이 화열이 불통不通,불강不降을 일으킨 것이다. 현재 백호가 와서 가을 석 달의 기운을 불러왔으니 기운이 서늘해지고 개운해져서 다시 온열温热하지 않게 되므로, 양명의 성질과 작용이 자연히 회복된다. 이렇게 백호는 서방을 대표할 뿐 만 아니라 추삼월도 드러내는 말이므로, 이는 욕해시欲解时인 신유술申酉戌과 한 덩어리가 되어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이런데 한의학에서 병을 치료하려고 처방을 내는 것이 시간을 처방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로 시간을 처방하는 것이 확실하다.
백호탕을 우리는 몇 개의 방면으로 볼 수 있다. 먼저 그 약재인데, 백호탕에서는 네 가지 약을 쓰고 있는데 이 넷이 무슨 의미일까? 하도河图에서 지사생금地四生金하고 천구성지天九成之라 했다. 사四는 금金의 수이며, 서방西方의 수数이므로 이것과 처방의 이름은 서로 맞고, 신유술과도 맞다. 그 다음으로 군약君药인 석고石膏는 백색미신色白味辛한데 흰 것은 서방의 색이며, 매운 것은 서방의 맛이므로 이것도 처방이름과 맞고, 신유술과 맞아 떨어진다. 다음으로 여러 약들의 용량을 보면 군약인 석고가 한 근斤,신약臣药인 지모知母가 여섯 냥两인데 ,“일一”、“육六”은 어떤 수인가? 하도에서 천일생수天一生水,지륙성지地六成之라 한 것으로 보아 “일一”과 “육六”이 감수坎水의 수이자 북방의 수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백호白虎는 원래 화열火热을 쓸어내려 식히는 약인데 화열은 한수寒水로 식히고 북방으로 식혀야 한다. 서방西方으로써 북방의 수를 쓰는 것은 자子가 그 어미를 도우는 것일 뿐 아니라 금수金水가 상생相生하는 것이다. 다만 이 한 손속으로 백호의 위력이 몇 배나 더해진 것이다. 좌사약佐使药인 갱미粳米를 여섯 홉 쓴 것도 이런 뜻인데, 또한 갱미는 생진生津하기 위해 쓰인 것이므로 역시 수수水数인 육을 쓰는 것이 맞다. 남은 것은 감초甘草 두 냥을 쓴 것인데 “이二”는 무슨 뜻인가? “이二”는 남방화南方火의 수数인데 화를 빼낸다면서 왜 화수火数를 써야 했을까? 석고石膏、지모知母는 다 매우 찬 약이라 비록 화열을 청사清泻하는 효능은 있지만 중양中阳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감초甘草 두 냥을 써서 평화롭게 중양中阳을 보살피게 한 것이다. 이 처방은 서북西北에 치우치면서도 중토中土의 작용을 거스르지 않도록 한 것이다.
백호탕도, 세 승기탕도 모두 그 효능을 모두어보면 이 신유술申酉戌의 작용을 실현하도록 만들어졌는데 양명병은 왜 신유술에 좋아지는 것일까? 이치는 매우 분명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써 먹으려면, 한의학의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시간을 처방하는 것을 참으로 받아들여 써 먹으려면, 한동안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열린 마음으로 넓게 보아 이 시간치료와 한의학 전체를 빈틈없이 한데 엮어야만 그때서야 우리가 받아들여 쓸 수가 있다.
돌이켜 양명을 보면 양명이 중시하는 것이 온열温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후세의 온병温病은 사실 바로 양명편에서 발전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것이 이치에 닿는 말일까? 나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가로방향으로 보면 양명의 앞은 온병의 위분卫分이고, 뒤쪽은 영혈营血이며, 세로방향으로 보면 위는 상초上焦이고, 아래는 하초下焦이다. 위기영혈卫气营血과 삼초三焦라는 온병이론의 핵심부분이 바로 양명편 속에 있는 것이다. 장중경은 한寒만 이야기했고, 섭叶-섭천사、설薛-설기, 설생백-、왕王-왕리, 오吴-오유성, 오국통-등은 온温만 얘기했을까?그런 게 아닌 것은 분명하다. 다만 “술업유전공术业有专攻”-학문과 직업에는 전문분야가 있다.-이란 것은 또 긍정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앞에 내놓았던 화제인 중용中庸을 생각나게 한다. 중용中庸은 왕도王道를 말한 것이지 신장臣将-신하와 장수-의 도가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중용은 영도자를 상대로 한 말이지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한 말이 아니다. 학문을 하던지, 전문가가 되려 할 때도 중용할 수 있겠는가? 중용의 태도를 가지고 학문을 하고, 전문가가 되려 한다면 그건 정말로 “중용불가능야中庸不可能也”다. 여러분이 만일 학자로서, 혹은 전문가로서 중용의 태도를 지키려 한다면, 틀림없이 여러분은 별 것 아닌 평범한 무리 중 하나가 되어 아무 것도 이루어내지 못 할 것이다.
오늘 아침에 봉황위시凤凰卫视에서 방영한 양진녕 교수의 중요한 강연을 보았는데, 제목이 '아름다움과 물리美与物理'였다. 이 강연에서 양교수는 20세기 물리학의 두 중요인물重要人物인 디렉狄拉克Paul Adrien Maurice Dirac,1902年8月8日-1984年10月20日과 하이젠베르그个是海森堡Werner Karl Heisenberg,1901年12月5日—1976年2月1日에 대해서 말했었다. 그들에게서 우리는 두 종류의 조화될 수 없는 스타일과 접근방식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연구하는 주제는 그 당시에 보기에는 거주류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고, 특히 디렉은 상대론적 파동 방정식인 디렉 방정식을 발표한 뒤에 더욱 더 많은 물리학 대가들에게서 놀림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이 증명하듯이 그들의 “이단异端”적인 연구가 20세기 물리학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시켰으며,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전문가든 학자든 반드시 정해진 방향이 있어야 하고 방향을 설정하고 나면 줄기차게 달려가야 하는데, 이렇게 한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 사실은 바로 “공단攻端”-실마리를 치는 것-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집단执端”실마리를 잡는 것-이 되는 것이다. 실마리를 잡지 못하면 이리 저리 기웃거리며 망설이게 되는데 그러면서 어떻게 무엇이든 이룰 수 있겠는가? 중간에 그만 두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학문을 하던지 전문가가 되던지 혹은 무엇을 하던지 간에 반드시 한 곳에 힘을 모아, 잡은 한 끄트머리에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지금 한의학을 하는데도 이처럼 현저히 다른 두 길이 놓여있다. 하나는 현대에 치중하여, 현대의 분자생물학에 치중하면서 모든 것을 현대의 입장에서 해석하여 현대의 눈으로 한의학을 인식하고 개조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통에 치중하여, 경전에 오로지 힘을 쏟으면서 모든 것을 전통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전통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전통에 치중하여 몰입하더라도 한의학도가 되기전부터 이미 현대식 교육을 받아왔으며 현대사회에서 살아왔으므로 현대과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에 전통학문의 고수가 되었을 때 혹시 전통과 현대가 서로 어긋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해내고 약간 전통을 조절하여 현대에 적응시킬 수 있고, 심지어는 현대를 가르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이 한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한의학의 바탕이 되는 전통에 비판적이면서 현대과학을 거의 맹목적으로 믿고 그 시각으로 한의학을 연구한다면 전통에 대한 공부가 모자라므로 한의학의 진수를 깨달아 현대에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현대과학을 전공하여 대가가 된 사람이 한의학을 다시 공부하여 전통을 현대와 접목하여 고수가 되기는 더욱 어려운데 그것은 전통의 바탕이 모자라서 이미 현대과학적 사고에 젖어버렸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고수가 대과학자가 될 수 없듯이 대과학자라도 한의학의 대가가 되기는 정말 어렵다. 이들은 그 벌써부터 한 끄트머리만을 잡고 매달려 달려왔으므로 전통의 고수이면서 대물리학가가 될 수는 없다. 양진녕교수는 현대물리학 더 구체적으로는 이론 물리학 중의 한 분야를 전공한 대가로써 동양전통문화, 동양전통한의학에도 매우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 양교수처럼 이렇게 대물리학자로 노벨상을 수상했던 천재라면 한의학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물고기와 곰발바닥을 둘 다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영도자领导者나 정책政策의 제정자制订者일 경우 정황은 완전히 달라 물고기와 곰발바닥을 다 얻어야만 하고, 반드시 그 양 끝을 잡아야만 한다. 그 양 끝을 잡고 가운데를 쓰는 것이 중용中庸의 경지이며, 왕도를 이룩해내는 경지이다. 영도자가, 정책의 제정자가 이렇게 하지 못하고, 전문가 처럼 한 끝만 잡고 다만 한의학의 현대화만 장려하면서 한의학이 전통화하는 것을 막으면 앞으로 이 한의학은 결딴이 나버리고 미래가 없어진다. 모두들 지금 한의학이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닌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아주 간단한 례를 들어보면 전에는 중국에서 한의사가 승급하려고 시험을 치를 때 언어방면에서는 외국어나 한의원전해석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였다. 전통을 깊게 파고 들었던 사람이라면 외국어를 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여 외국어 대신에 고문古文시험을 보게 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여러분이 현대화에 오로지 몰두하고 있었다면 외국어 실력이 좋을 것이 당연하니 외국어 시험을 보도록 한 것이다. 이런 정책은 중용의 맛이 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전통을 즐거이 연구하고, 즐거이 경전에 빠져든다면, ‘그래 좋아! 그러면 네가 좋아하는 전통을 열심히 연구해 봐.' 라고 하는 것이다. 전통이라는 이 길에 초록색 불이 켜지게 되면 여러분은 전통을 연구하는 것이 잘못된 선택인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떨쳐버리고 전념할 수 있게 된다. 현대적인 관점으로 한의학을 바라보고 연구하기를 좋아한다면 '좋아! 그러면 한 마음으로 현대화에 힘써 봐.'라고 하는 것니다. 이럴 때 물고기가 마음껏 뛰노는 바다처럼, 새가 거침없이 나는 하늘처럼 더 넓은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지도자로서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관점을 달리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에는 전문가였더라도 지금은 더 이상 전문가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지도자가 되었으므로 해야할 일은 현대화를 바라는 사람에게도 앞날에 대한 희망을 주고, 전통을 파고드는 사람에게도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연구비를 현대화로 가는 길에만 뿌릴 것이 아니라 전통의 길에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 만약 참으로 이런 환경이,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 진다면 틀림없이 한의학의 생존을 위하여 한의학이 어려움을 벗어나 가장 좋은 조건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한의학에서 고문古文 시험은 더 이상 치를 수 없어 진급하려면 반드시 외국어시험을 봐야 한다. 아니면 한의학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주임主任으로도 교수教授로도 될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한의학을 전공할 때 외국어를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이런 정책의 변화가 우리에게 전통이란 길에 켜진 록색 신호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중요한 소식을 알려주고 있는 현실이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한의학 현대화는 이미 대세가 되어 도도히 흐르고 있으며, 사람들도 모두 바라고 있어 이런 역사의 조류를 막을 수는 없다. 이 책을 시작하면서 나는 분에 넘치는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면서 좀 더 똑똑해 지게 되어 이런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한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 한의 현대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전통적인 한의학으로 가길 원하는 사람은 지극히 일부이다. 나하고 같이 박사과정을 밟았던 많은 학우들이 광주广州、심천深圳으로 가지 않았으면 북경北京、상해上海로 갔고, 어떤 사람은 외국으로 나가 모두 현대화의 길로 달려가 버렸는데 다만 산야촌부山野村夫인 나만 낙후된 광서广西로 돌아 왔다. 내 동창들과 나의 경우에서 여러분들은 현대의 한의학 상황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모두들 현대화를 바라면서 북경과 상해로는 성이 덜 차 뉴욕이나 런던으로 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휴가를 길게 받으면 모두들 어디로 가는가? 모두들 황산黄山、태산泰山、구채구九寨沟로 가고 산촌이나 농촌으로 달려 간다. 현대와 전통은 사실 이런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전통을 고집하는 동지들에게 모든 한의사들이 전통에 매달리길 바라지말고 여러분도 전통을 아무도 찾지 않을 거란 걱정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우리가 도시나 농촌을 현대와 전통의 두 끝으로 본다면 반드시 물극필반物极必反할 날이 올 것이다. 북경대 영어과 교수 고정곤辜正坤이 “인터넷과 중서문화网络与中西文化”란 강연을 했었는데 강연을 맺으면서 고교수는 완전한 인터넷시대가 되면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아오는 움직임이 생기고 그 때 도시의 유일한 쓰임새는 그 폐허와 유적을 후세 사람들이 보고 낙후되었던 그 시대 사람들이 일찌기 오염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고교수의 이 맺음말이 후세에는 전통으로 회귀한다는 하나의 예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당연히 내가 가리키는 회귀는 물질 상의 회귀가 아니라 일종의 정신 상의 회귀, 사상 상의 회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