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병 강요-11
三、태양병시상太阳病时相
이 대목은 주로 제9조第 9 条인 “태양병욕해시太阳病欲解时,종사지미상从巳至未上。”의 내용에 근거해서 강해讲解하겠다. 。
1.근후기시谨候其时,기가여기气可与期
(1)병기 못지 않게 중요한 조문-여병기병중적조문与病机并重的条文
《상한론》 397조의 조문 중에서 긴 것은 백자百字가 넘고 짧은 것은 열 몇자 밖에 안되는데, 이것으로 장중경이 상한론을 지으면서 실질적인 뜻을 중시하였고, 형식에는 별로 얽매이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불구일격不拘一格”-한가지 격식에 구애되지 않음-한 문장 중에서도 12조의 형식상 매우 비슷한 조문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지위之为”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제강조문과 또 “욕해시欲解时”의 형식으로 된 조문이다. 앞의 것은 각 경마다 한 조문으로 모두 여섯 조문인데 병기조문病机条文이라고도 불리며, 뒤의 것도 각 경经마다 한 조씩 모두 여섯 조문으로 ,우리는 이를 시상조문时相条文이라 한다. 병기病机、시상时相이 한 경에 각각 한 조문씩이므로 2x6하여 열 두 조문이다. 이런 문장 형식 상 대칭되는 12조 원문은 《상한론》의 397 조 원문 중에서 확연히 두드러진다. 이런 특수한 조문은 반드시 어떤 특수한 의의를 가지게 된다. 안타깝게도 역대의 학자들은 앞 여섯 조 병기조문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뒤 여섯 시상조문时相条文에 대해서는 크게 중시하지 않았는데, 이는 중경의 깊은 뜻을 그냥 흘려버리는 것이다.
《소문素问·지진요대론至真要大论》에서 병기病机 개념을 언급하면서 “근후기의谨候气宜,물실병기勿失病机.”“심찰병기审察病机,물실기의勿失气宜.”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병기病机를 토론하려면 气宜를 알아두어야 하고,기의气宜를 토론하려면 또 병기病机를 단단히 잡아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둘 중 하나가 빠져도 안된다. 《상한론》의 연구에 있어서도 이처럼 병기病机와 기의气宜를 한 손에 하나씩 다 놓치지 않도록 꽉 잡아야 한다. 우리가 제강조문만 강조하고 있는 것은 병기를 붙잡은 한 쪽 손만 본 것일 뿐이다. 그러면 다른 쪽 손은 무엇을 잡아야 하나? 다른 손으로는 이 욕해시欲解时조문을 잡아야 한다. 비록 이 욕해시 조문이 겨우 “시时”만 말하고 있지만 바로 《소문素问·육절장상론六节藏象论》에서 “시립기포时立气布……근후기시谨候其时,기가여기气可与期,”라 말한 것처럼 이 시时를 말할 때 이미 기气가 그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래서 욕해시 조문을 시상조문时相条文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바로 기의气宜 조문인 것이다. 우리가 제강조문만 말하고 욕해시 조문을 설명하지 않으면 병기病机가 어떻게 온전해 질 수 있겠는가? 이 병기는 어정쩡한 반 쪽짜리 일 뿐이다. 그래서 제강조문이 반드시 시상조문과 서로 모아 살펴봐야 하며, 그래야 병기가 비로소 완전해진다. 그래야만 비로소 병기가 완전히 하나로 모아진 모습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상한론》의 이런 특별한 격식을 갖춘 여섯 쌍의 조문이 하나는 병기를 말하고 하나는 기의를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소문素问·지진요대론至真要大论》의 “심찰병기审察病机,물실기의勿失气宜。”가 말하는 자세한 뜻이 무엇인지 남김없이 눈 앞에 좍 펼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금용金庸의 무협소설 《소오강호笑傲江湖》에서 고수들이 손속을 펼칠 때 어떻게 손을 썼는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아무런 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했던 글을 보았는데, 우리가 장중경이 편찬한 경전을 보면서 이 분이야말로 정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천의무봉天衣无縫의 경지에 이르셨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지에서 쓰여진 이 《상한론》을 우리가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면서, 감탄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2)시를 풀어 본다.-시석时释
갑甲、글자의 구성은 어떠한가?-조자造字
“시时”란 글자는,간체简体에서 형부形符가 일日이고,성부声符는 촌寸인데, 번체繁体에서는 형부形符가 같으며, 성부声符는 시寺가 된다. 일日의 뜻은 매우 명확하여 바로 태양太阳을 말한다. 의미하는데 시时,時자가 일日을 형부로 삼은 것은 시时,時가 태양의 운행과 크나큰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시寺는 무엇인가?《설문》에서는“정야廷也,유법도자야有法度者也.”-마당이니, 법도가 있는 곳이다-라 했다. 하나는 태양太阳, 하나는 법도法度로 붙여서 시時가 되니 이 시란 글자에 포함된 의미는 참으로 깊어 음미해 볼 만하다고 생각된다.우리가 이 글자를 time으로 분석해도 이런 뜻을 지닐 수 있을까?
간체简体로 보면 시时는 성부声符가 촌寸이 되는데 촌寸은 옛날부터 길이를 재는 기본 단위로 쓰여왔다. 일日+촌寸이 시时가 된다는 말은 태양이 움직이는 거리가 시时라는 뜻이므로 이 글자의 의미는 더욱 간단하며 분명한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자연自然속으로, 실제实际속으로 돌아가서 이 시时가 태양의 운동으로 생기는지 아닌지, 태양 운동을 잰 거리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인지 아닌지를 보기로 하자. 우리 먼저 여러분에게 익숙한 춘하추동 사시를 보자. 사시는 어떻게 생기는가? 그것은 태양의 겉보기운동apparent motions of the sun으로 생긴다. 태양의 운동이 태양과 지구 사이의 관계를 바뀌게 하는데 이 움직임이 태양과 지구 사이의 어떤 특정한 상대적 위치구역에 있을 때 봄이 되며, 이에 따라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기는 것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로 보면 춘하추동 사시의 생성은 이 시时란 글자에 포함된 의미와 완전하게 들어맞는다. 사시가 생기는 것은 이 태양과 지구사이의 상대적 위치관계 때문인데 이 상대적 위치관계는 반드시 재어본다는 과정을 거쳐야만 확정할 수 있다. 그래서 시時자의 왼 쪽에는 일日을 놓고 오른 쪽에는 시寺를 두었는데, 시寺의 위는 토土로 땅을 나타내고 아래는 촌寸으로 길이의 단위를 나타낸다. 모두들 이 글자에 포함된 의미가 사시의 생성과, 또 사시의 확정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지 아닌지 자세히 생각해 보라. 이렇게 한 글자로 우리는 하나의 학과学科를 살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학과의 분과 및 내용까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자汉字가 가진 이런 매력은 이 세계의 다른 어느 글자도 비교되기 어렵다. 우리는 이런 문자를 늘 사용하고 있으니 자랑할 만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글자를 간단하게 만들어서 쓰기에 편하기는 하지만 이처럼 시时로 써서 시時에서 토土를 없앰으로써 태양과 지구의 관계를 나타내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춘하추동을 어떻게 확정할 수 있겠는가? 확정할 방법이 없다. 화성火星의 춘하추동은 어떤 개념일까?
사시를 재고 일년 이십사절기를 재는데 가장 권위있는 경전은 《주비산경周髀算经》으로 여기에 그 방법이 자세히 기재되어 있다. 《주비산경》에서 “범팔절이십사기凡八节二十四气,기손익구촌구분육분분지일气损益九寸九分六分分之一. 동지귀장일장삼척오촌冬至晷长一丈三尺五寸. 하지귀장일척육촌夏至晷长一尺六寸.”이라 했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정오正午에 땅 위에 팔척八尺길이의 규표圭表를 세우고 그 규표가 땅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길이를 잰 뒤 그 길이로 팔절八节이십사기二十四气의 구체적인 시간을 확정하는 것이다. 귀영이 가장 짧은 하루 곧 그림자의 길이가 일척육촌一尺六寸인 그 날을 하지夏至로 하고 그 뒤 구촌구분육분분지일九寸九分六分分之一이 더 늘어났을 때를 그 다음 절기인 소서小暑로 하여 차례대로 셈해서 동지冬至가 되면 귀영이 가장 길어져서 일장삼척오촌一丈三尺五寸이 된다. 동지冬至뒤로는 그 앞과 반대로 구촌구분육분분지일九寸九分六分分之一씩 줄어들 때마다 다음 하나의 절기가 되는데 이러다가 하지夏至가 되면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런 시간의 확정과정에서 주의해서 살펴야 할 것은 첫째로 태양의 운행 곧 움직임이 정오正午가 되었을 때를 보고 재야 하고, 둘째로는 땅 위에 비친 규표의 그림자를 보아야 하는데, 이 그림자는 곧 해와 지구의 상대적인 위치관계를 반영하고, 음양의 관계를 반영하며, 양기의 석방释放된 정도와 수장된 정도를 반영한다. 그러면 세번째는? 위의 그림자 길이는 구체적인 척尺(촌寸)으로 재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 말한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시时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즘 번체를 간체로 바꾸었는데 문자를 간소화하여 쉽게 만들긴 했지만 이 시자의 경우 토土를 뺀 것은 음阴을 빼버린 것이다. 음양阴阳에서 음阴을 빼면 고양孤阳이 되지 않겠는가?양이 홀로 있으면 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문자의 간화简化를 생각할 때마다 걱정이 밀려들고, 마음이 아파온다. 글에 도道를 실으니, 문자文字는 문화文化와 문명文明과 정신精神과 도道를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문자로 문명을 인식하고 전승传承해 간다. 우리는 바로 이 문자로 지나간 삼천년三千年 아니 오천년五千年 동안 이루어진 문화의 정수들을 현재까지 싣고 왔으며, 앞으로도 실어갈 것이다. 지금 우리가 문자라는 이 “차车”의 바퀴 하나를 빼거나 심지어 두 개 까지 빼버리면 이런 문화결정文化结晶을 실어나르기 매우 어려워진다. 오늘날은 그래도 우리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옛날 책들을 읽었었고, 몇 자 번체를 알고 있어 문화전승의 장애가 아직은 뚜렷이 나타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몇 십년 몇 백년이 지나면 어떤 상황이 될까? 전통문명의 전승이 이 문자의 간소화로 인해 끊어져 버릴 수 있다. 한자의 간소화는 확실히 엄청난 일이므로 절대 어떤 사람들, 어떤 권력자들의 한 때 충동에 맡길 수는 없다. 이는 전통문명 모두를 저당잡히는 행위이므로 대충 넘어가서는 안된다.
을乙、시의 뜻을 알아 보자. 시의时义
시时에 대해서, 동양사람들의 시时에 대해서, 전통문화传统文化의 시时에 대해서 모두들 매우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이 시는 질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 서양문화에서 말하는 시时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서양문화의 시는 수학적인 개념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한 반면에, 전통문화의 시는 물리적인 의미를 더욱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시에는 태양의 운동과 위치, 태양과 지구의 관계, 음양의 관계, 기의 변화 등이 모두 여기에 들어 있다. 사시를 말할 때 봄을 말하면 바로 날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여름에는 날이 덥고, 가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춥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의 변화가 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시립기포时立气布”라고 말할까? 왜 “근후기시谨候其时,기가여기气可与期”하라는 것일까? 그 이치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시时가 바로 서면 음양阴阳이 바로 서고, 음양이 바로 서면 기气가 바로 서는 것이다. 그렇지만 서양문화 속의 이 “time”에는 이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이런 관점에서, 시时가 포함하고 있는 이런 의미에서 부터 파고들어가서 전통한의학에 현대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전통한의학은 실질적으로 진정한 시간의학时间医学이 되는데 , 이를 시상의학时相医学이라 부를 수도 있다. 몇년전 시간생물학时间生物学Chronobiology이란 학문이 생겨나자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에도 시간의학时间医学이 있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한의시간의학汉医时间医学”,혹은 “시간한의학时间汉医学”에 대해 연구하여 한의학 속에도 시간의학적인 요소가 있다고 보게 되었다. 이런 인식들을 논리적으로 추리해 나간다면 한의학의 어떤 부분이 시간의학의 범위에 들어가고 어떤 부분이 그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지 반드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것 뿐인 것일까? 우리가 음양오행阴阳五行이 한의학의 핵심이라는 것을 승인하고, 장상경락藏象经络이 한의학의 핵심이라는 것을 승인하기만 하면 한의학은 완전무결하고, 철두철미한 시간时间(시상时相)의학医学이다. 절대로 일부분 만의 시간의학인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