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이란 무엇인가?-3
(2)주도문제主導問題
앞에서의 토론으로 이런 음이 양이 생겨남에 따라 자라나고, 양이 스러져 감에 따라 음이 갈무리되는 관계를 살펴보았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더욱 구체적으로 두 개의 주도문제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생긴다. 첫 번째 주도는 음양 사이에는 협동이 주도가 되며 대립과 제약이 주도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부창부수夫唱婦隨의 관계이기도 하다. 현실생활에서 음양의 예는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남녀로, 가정에서는 부부가 된다. 만약 한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늘 서로 맞서서 한 사람은 북쪽을 보고 한 사람은 남쪽을 보면서 사사건건 다툰다면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딜 것이며, 그렇게 견디기 조차 힘들다면 어떻게 가정을 꾸려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가정에서의 부부관계처럼 음양의 관계는 주로 협동해야만 한다.
두 번째 주도는 음양 사이에서는 양이 주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실제로는 이미 첫 번째 주도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주도는 음양 사이에는 양의 변화가 주도적이며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음은 양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 이 주도관계는 자연과 사회에서 두루 느낄 수 있다. 앞의 소문에서 말한 ‘양생음장, 양쇄음장陽生陰長, 陽殺陰藏’은 사실 우리가 늘 말하고 있는 생生, 장長, 화化, 수收, 장藏이다. 생장화수장으로 일 년 사이의 만물의 변화 즉 춘생春生, 하장夏長, 추수秋收, 동장冬藏을 나타내고 있지만, 더욱 실질적이고 더욱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양의 변화이다. 양이 춘생春生, 하장夏長, 추수秋收, 동장冬藏함으로써 만물이 생生, 장長, 화化, 수收, 장藏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동중서董仲舒는 그의 저서 춘추번로春秋繁露에서 “물수양이출입, 수수양이종시...양자세지주야, 천하지곤충, 수양이출입, 천하지초목, 수양이생락, 천하지삼왕, 수양이개정.物隨陽而出入, 數隨陽而終始...陽者歲之主也, 天下之昆蟲, 隨陽而出入, 天下之草木, 隨陽而生落, 天下之三王, 隨陽而改正.”이라고 매우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지 그렇지 않은 지 자연을 살펴보라! 확실히 바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초목이든, 곤충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두들 확실히 춘하추동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 그렇다면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오는가? 춘하추동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태양의 시운동視運動으로 결정된다고 모두들 알고 있다. 태양이 황도黃道를 한 바퀴 돌아가는 움직임에 따라 일 년의 춘하추동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춘하추동은 시간의 변화도 반영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양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무엇을 봄이라 하는가? 봄은 실제상으로 양기가 생生의 상태에 있을 때의 시간대이고, 순서에 따라 여름은 양이 장長의 상태에, 가을은 양이 수收의 상태에, 겨울은 양이 장藏의 상태에 있을 시간대이다. 그러므로 양의 변화가 춘하추동을 만들고, 춘하추동의 변화에 기대어 만물이 변화하는 것이 그들 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인 측면으로 볼 때 양인 남자가 주도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더욱 명확하여 모두들 눈으로 익히 보고 있는 사실이므로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십이소식괘를 가지고 음양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괘상의 변화를 살펴보았는데, 혹 여러분들은 음양을 따로 나누어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알기 쉬웠을 수도 있다. 비유컨대 복괘에서 건괘에 이르는 이 양적인 면에서의 변화는 누가 보아도 양이 날로 늘어가고 음은 날로 사위어가므로 내가 많아지면 네가 줄어드는,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그러한 대립이 더욱 선명하게 두드러진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양이 날로 늘어난다는 것은 양이 생겨나 풀리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지만 음이 날로 줄어드는 것을 양이 늘어남에 따라 다른 독립된 존재인 음이 천천히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음양을 이해하면 근본적인 문제가 생겨버린다. 음이 날로 줄어가는 것은 복괘 이후로 음효가 건괘에 이르러 전혀 없어질 때까지 천천히 줄어드는 것을 보아 확실하다고 여겨지지만 우리는 건괘가 맡아보는 이 달에 양만 있고 음은 아주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음이 하나도 없다면 고양孤陽이 아니겠는가! 내경에서 고양불생, 고음부장孤陽不生, 孤陰不藏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우리가 여름 석 달을 보면 만물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한결같이 번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음양을 이렇게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하는 음이 날로 줄어든다는 것은 양기가 솟아 퍼져서 늘어남에 따라 양의 재고가 날로 줄어들게 되는 것인데 앞에서 우리는 이미 양의 재고량이 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많이 풀려남에 따라 재고는 자연히 줄어들게 되고, 더 이상 풀릴 것이 없을 때 또 다시 거둬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먹을 뻗고 나서 다시 당긴 다음이라야 또 쳐낼 수 있는 것과 같아서 쳐 내는 것과 거두는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이 음양의 소장消長관계이다. 그러므로 비록 소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실은 그래도 하나의 문제 즉 양기의 변화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십이소식괘의 또 다른 측면은 음적인 면에서의 변화인데 이 또한 오해가 생길 소지가 매우 많다. 구괘 이후로 음효는 날로 늘고 양효는 나날이 줄어들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음이 나날이 늘고 양이 날로 줄어드는 음성양쇠陰盛陽衰의 과정으로 본다. 우리가 괘상으로나 겉으로 보이는 걸로 보아서는 그런 것 같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이런 관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왜 이런 관점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구괘 이후로 즉 하지 이후로 음이 생겨나면서(일음시생一陰始生) 양기는 풀려나다가 거두어져 갈무리된다. 그러면 이렇게 수장收藏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주먹을 뻗었다가 거두어들이는 것은 다시 뻗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양기가 거두어지는 것은 다시 펼쳐지기 위해서다. 만약 거두어 갈무리된 뒤 양기가 오히려 줄러든다면 어떻게 다시 풀려날 수가 있겠는가? 실제로 풀리는 과정에 양기가 약간 소모되어 줄어들기 때문에 갈무리는 목적은 이렇게 줄어든 양기를 다시 채우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양적으로 본다면 이런 가을 겨울의 과정, 이런 양기가 거두어져 갈무리되는 과정, 다른 밀로 우리가 앞에서 말했던 ‘음성양쇠陰盛陽衰의 과정에서는 양기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채워져 늘어나게 된다. 이래야만 비로소 거두어졌다가 다시 솟아올라 풀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몸으로 말하자면 낮에 일을 하는 과정은 사실 양기가 펼쳐지는 과정이고, 밤에 쉬는 것은 양기가 거두어지는 과정이다. 왜 쉬는가? 그것은 낮에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더 왕성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인데 만약 쉬는 동안 양기가 도리어 줄어든다면 어떻게 힘차게 일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잠자고 쉬려고 할 것인가? 우리가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앞의 문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음양이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나누어 보면 남자와 여자처럼 확실하게 따로 떨어진 둘 같지만 모아 본다면 실질이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음양의 문제를 나누어서만 본다면 둘을 하나로 보지 못해서 문제의 알맹이를 보아낼 수가 없다. 한열寒熱을 예로 들면 한열은 물과 불이라 그 둘을 한 덩어리로 보기는 어렵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라, 어떻게 하더라도 하나로 모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렇게 다르게 보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너무 딴판이라 그런 것인데, 한 걸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양기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양기가 에너지와, 열에너지와 매우 비슷하다고 하였다. 봄과 여름에는 왜 날씨가 더워지나? 그것은 양기가 풀려나기 때문인데 뜨거운 것이 퍼져 나오니 날씨가 더워질 수밖에 없다. 가을은 왜 서늘하며, 겨울은 왜 추울까? 뜨거운 것이 더 풀려나오지 않고 거두어들여져 감춰지니 날씨가 추워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다른 말로 한열寒熱이란 양이 생장수장生長收藏하는데 따르는 하나의 겉모습으로 양기가 풀리면 더워지고 거두어들여지면 추워지는 것일 뿐 열이 아닌 한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이 문제를 하나는 실질로 말하고 하나는 현상으로 말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많이 생각하고, 제대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이 과정을 깔끔하고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면 음양 문제는 기본적으로 풀린 것이다. 소문에서 “음양자, 수지가십, 추지가백, 수지가천, 추지가만, 만지대불가승수, 연기요일야. 陰陽者, 數之可十, 推之可百, 數之可千, 推之可萬, 萬之大不可勝數, 然其要一也.” “지기요자, 일언이종, 부지기요, 유산무궁.知其要者, 一言而終, 不知其要, 流散無窮.”이라고 강조하였다. 이 “수지가십, 추지가백, 수지가천, 추지가만‘이란 사실 그 드러난 모습을 말한 것으로 현상에서 본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데 ”기요일야“라 하여 이렇게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나타난 모습이 그 실질로 말하자면 하나일 뿐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런 실질을 알면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데 그래서 ”능지일, 만사필能知一, 萬事畢“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이 실질을 모르면 반드시 유산무궁-끝없이 흘러가 흩어짐-하게 된다.
위에서 말한 이런 음양변화를, 이런 주도관계主導關係를 우리는 가장 원시적인 천문측산天文測算-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함-과정에서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여러분들은 주비산경周髀算經이란 책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가장 원시적으로 태양의 운동자취를 측량하는 방법을 적어 놓았는데 그것은 일 년을 24절기로 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것은 해가 중천에 뜬 정오에 팔척八尺길이의 규표圭表-막대기-를 해의 바로 아래쪽에 세워 놓고 규표의 그림자인 귀영晷影의 길이를 잼으로써 태양의 운동이 어느 곳으로 움직였는지를 살펴 24절기를 확정해 내는 방법이다.
주비산경은 우리에게 귀영이 가장 길 적에 일장삼척오촌一丈三尺五寸이 되고 가장 짧을 때는 일철육촌一尺六寸이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가장 길었을 때가 어느 날이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짧았을 때는 어느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귀영이 가장 길 때는 동지가 되어야만 하고, 이와 반대로 가장 짧았을 때는 하지가 되어야 한다. 귀영은 바로 정오의 그림자이다. 한 여름에 우리가 밖에 다닐 때는 나무 그늘을 찾거나 하늘에 한 조각 구름이라도 떠 있기를 바라는데 왜 그럴까? 그것은 그늘이 해를 가리고, 구름이 해를 숨겨주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금방 시원하다고 느끼게 되므로 우리는 귀영을 양陽의 저장상태貯藏狀態를 나타내는 잣대로 볼 수 있다. 왜 동지의 귀영이 가장 긴 것일까? 그것은 양이 가장 많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지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귀영이 나날이 짧아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저장된 양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으로 이렇게 되면 자연히 양기가 날로 드러나면서 가득하게 퍼져 나가게 된다. 그래서 동지가 지난 뒤로 낮이 점점 길어지고 밤은 차차 짧아지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감춤과 드러남, 거둠과 풀림이 번갈아 나타나는 변화이다.
이렇게 날로 짧아지던 귀영은 하지가 되면 일척육촌이 되는데 이는 동지의 일장삼척오촌과 비교하면 매우 짧다. 이때의 양기는 드러날 대로 드러나 거의 남은 것이 없을 정도여서 양기가 가장 많이 풀린 상태가 된다. 그러나 중양重陽은 필음必陰하게 되므로 귀영은 하지가 지나자마자 하루하루 늘어나면서 낮은 나날이 짧아져 가고 밤도 날로 길어진다. 양기가 남김없이 풀린 뒤로 또 차차 거두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귀영의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으로 우리는 일 년 사 계절의 변화, 24절기의 변화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바로 양기가 거두어들여지고 풀려나는 변화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이런 주도관계를 파악하면 음양의 수많은 변화들은 자연히 엮여 나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