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중의思考中醫

한의학의 학습과 연구-12

臥嘗 齋 2025. 1. 28. 10:23

4. 경전은 왜 배워야 하나?
(1)낡은 것을 버리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니다.
앞에서 우리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경전을 이야기하였는데 그것은 경전이 비록 오래 되었지만 반드시 철지나 뒤떨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서 경전을 쉽게 부정하고 버리지 않도록 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요즈음에 2000여 년 전의 경전을 중시하는 것이 쓸 데 없는 낡은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롭다거나 낡았다는 것에 대한 개념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장중경은 상한잡병론의 서문에서 “오랜 옛날에는 신농, 황제, 기백, 백고, 뇌공, 소유, 소사, 중문이 계셨고, 그 한참 뒤로도 장상군, 편작이 계셨으며, 한나라에 들어와서도 공승양경과 창공이 계셨지만 그 뒤로는 뛰어난 의학가가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라고 하였다. 장중경이 이 글 속에서 보여주는 자료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왜 경전이 막 생겨날 때나 혹은 경전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 명의나 대가들이 더 많고, 그 시대와 멀어질수록 드물거나 없어지게 되는 것일까? 이런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지금 경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시간상으로 경전의 시대와 갈수록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경전을 잘 배운다고 해서 실제로 경전의 내용에 가까이 갈 수가 있을까? 가까이 간다는 것은 이런 훌륭한 의학가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배움을 통해 마침내 뇌공, 소유, 소사가 될 수 있다면 이 아니 좋을 것인가! 우리가 경전을 배우는 근본적인 의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장중경은 서문 중에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의 의사들은 경전의 뜻을 새겨 앎을 늘리려고 하지 않고 전해오는 집안의 몇 가지 특기만을 이어 옛것만 지키려 한다.” 이 문단에서 우리는 중경이 이미 1700여년 전에 무엇이 옛것만 지키는 것(守舊)이고, 무엇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創新)인지를 또렷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의 의사들 가운데 집안에서 전해지는 그 정도의 경험만을 지키는 사람을 수구라 하였고, 이와 반대로 “경전의 뜻을 새겨 앎을 늘려갈 수 있는 사람을 창신이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전을 배우는 것은, 내경, 상한과 같은 저작물을 배우는 것은 완전히 ”그 앎을 넓히는 것(演其所知)“이다. ”넓힌다(演)“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넓히는 것은 미루어 이끌어내고(推演), 크게 늘리고(擴大), 펼쳐나가며(發展), 이어간다(延續)는 뜻으로 우리들을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의 테두리에서 펼쳐나가며, 틀을 깨어 넓힘으로서 그것들을 드날리고 빛내며 늘려나갈 수 있는 것인데 그 것이란 바로 경전의 뜻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늘상 한의학은 창신 하여야만 비로소 살길을 틀 수 있다고들 하는데 무엇에 기대어 창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경전을 연구하는 것을 옛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고 새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낱 입으로만 읊는 것이 아니라 이런 관점을 받아들여야만 이 과정이 창신인지 아닌지를 깨닫고 느낄 수 있으며, 임상경험을 통해서도 인증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늘 학문을 할 때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되 옛것도 싫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이것도 공자님의 생각 중 하나이다. 공자가 말씀한 학문을 하는 하나의 요점에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는 구절이 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새기고 깨우친 뒤에 학문을 한다면 양의학이든 한의학이든 어떤 학문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배운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배운다는 것은 지나간, 지금보다 먼저의 것을 배우는 것이니 사실상 이미 있어왔던 것으로 다만 오래된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것만 배워도 괜찮을까?
공자는 배우기만 하는 것은 두서가 없어 아무 쓸 모가 없다고 하였다. 많은 것들을 배워 지식을 수북이 쌓는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살아있는 백과사전이 될 뿐이 아니겠는가? 학문은 지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옛사람들의 생각은 이치에 맞다. 그래서 공자는 배울 때는 반드시 생각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는 것은 짜 맞추는 것으로, 각종의 자료들과 부속들이 서로 부딪혀서 이어지고 녹아들어 새로운 무엇으로 태어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과정은 사실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인 것이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들의 습성이지만 새로운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옛것으로부터 나온다.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무너지기 쉽다고 했는데 자재가 없다면 어떻게 건물을 지을 수 있겠는가?
경전을 배우는 것 또한 이와 같아 무엇을 얻으려면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배우기만 한다면 어찌 수확을 거둘 것이랴. 당연히 헛힘만 쓰고 혼란스러울 뿐이다. 요즘 매우 많은 사람들이 내경, 상한을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한 옆에 치워 놓지 않으면 묶어서 다락 위에 던져 놓으니 어찌 가슴이 쓰리지 않겠는가? 이렇게 귀한 보물을 그들은 쓸 모 없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는가?
경전을 배우려면 생각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생각해야 한다.
(2)모든 변화가 경전에 담겨 있다.
경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데 이는 실제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내가 겪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하겠다.
1998년 전반기에 우연히 남녕南寧 근처의 빈양현賓陽縣에 살고 있는 료병진廖炳眞이란 한의사 한분을 알게 되었는데 나는 그분을 료노廖老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료노는 수 십 년 동안 의료활동에 종사해서 여러 질병들에 대해서 남다른 치료경험이 있기도 했지만 특히 더욱 탄복했던 것은 그의 의사로서의 처신과 고매한 인격이어서 그분을 자주 찾아뵈었다. 그리고 료노께서도 나를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로 생각하셔서 깨달으신 것들을 남김없이 모두 내게 일러주셨다. 한번은 료노가 내게 뱀에 물린데 대한 치료를 말해 주셨다. 예전에는 떠돌이 의사들이 뱀에 물린 상처를 치료하면서 흔히들 완전히 치료해 주지는 않았다. 이렇게 덜 치료하여 다시 치료받게 하려면 환자들이 알아차릴 수 없게 감쪽같은 방법이 필요했다. 뱀독을 치료하면 금방 상태가 호전되어 목숨에 지장이 없어지면서 많은 증상들이 사라지지만 한 가지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으면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상처부위가 곪아들어 그 의사에게 약을 다시 지어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2~3개월에서 1년여까지 끌게 되며 심하면 더 길게 끌고 가기도 하였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의사가 환자를 낚아 환자가 의사를 먹여 살리게 하는 방법이라고들 했다. 그런데 이런 폐단을 없애는 비법을 료노가 그의 아버지뻘 되는 의사들에게 알아내었다. 그 비법은 소금을 먹지 않는 것인데, 환자에게 며칠 동안 소금기를 먹지 않도록 하면서 다시 독을 풀어내고 새 살을 돋게 하는 약을 먹이면 상처가 얼른 아물고 다시 곪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환자들이 몰라 진이 빠지게 고생하였다는 것이었다.
료노의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것이 바로 내경에서 나오는 이론이었다. 소문. 금궤진언론에서 “북쪽은 검은 색으로 신장腎臟과 통하여 이음二陰에 구멍을 내고 정기를 신장에 간직하므로 병은 계溪에 있고, 그 맛은 짜고, 그 무리는 물이고, 그 가축은 돼지며, 그 곡식은 콩이며, 그 계절은 겨울로 진성辰星-수성水星-과 통하므로 병이 골骨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소리는 우羽이며, 그 숫자는 육이며, 그 냄새는 썩는 냄새다.” 신腎계통의 냄새는 썩는 냄새이므로 모든 썩어 문드러지는 성질을 가진 병변은 신과 상관이 있다. 그리고 신병腎病은 소금을 꺼릴 필요가 있다. “소금을 많이 먹으면 신을 손상케 한다.”는 것은 내경에서 가르치는 말일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는 상식이다. 뱀이 문 상처가 썩어문드러지는데 소금을 며칠 꺼리면서 몇 첩의 보통 한약을 지어 먹으면 상처가 바로 아문다는 것은 아주 신비하면서 또 매우 간단한 사실이다. 경전에 실린 것은 이와 같아 드러내지 않으면 매우 신비하지만 드러내면 또 이렇게 간단하니 이것이 바로 지극한 도리는 오히려 번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우리가 날로 쓰면서도 모르고 있는 것인데 떠돌이 의사들도 자기들이 감춰놓은 한 가지 수단이 원래 내경에 실려 있다는 것은 결코 몰랐을 것이다.
내경의 이런 도리가 바로 군자의 도인 것이다.
또 하나의 일이 있는데 그것은 료노가 골암(骨癌)을 치료했던 경험이다. 골암은 모든 암 가운데 동통이 가장 심하고, 또 이 동통은 멎게 하기 가 매우 어려워 마취제를 쓴다 하더라도 효과가 그리 좋지 않다. 그렇지만 료노는 이 동통에 대해서 특별히 효과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는데 비록 골암이 마지막에 모두 치료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동통만은 매우 빠르게 사라져서 환자의 고통을 대부분 없애줄 수 있었다. 료노는 어떤 약을 썼을까? 그 방법은 약간의 약제 중에 한 가지 특수한 물질을 넣은 뒤 달여 환부를 씻는 것인데 이렇게 몇 번을 씻어주면 차차 동통이 사라진다. 이 물질은 매우 영험하여 이것을 넣으면 금방 아픔이 멎지만, 넣지 않으면 이런 효과가 전혀 없다. 이렇게 특수한 물질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관의 밑바닥 널판에서 자라나는 물질이다. 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했는데 광을 파고 시신을 넣은 관을 묻는다. 그 뒤 시신은 점차 썩어 문드러지고 여기서 생긴 액체가 관의 바닥 널판에 스며들어 널의 나무와 함께 썩어 가는데 앞의 그 물질은 이런 썩은 기운을 받아 생겨나게 된다. 모두들 눈을 감고 잠깐 깊이 생각해 보자! 썩은 냄새 중에 사람의 시신이 썩는 냄새보다 지독한 것이 있을까? 그래서 보통 썩을 부腐란 글자를 말하는 것은 이쯤에서 그쳐야만 한다. 이 물질이 이런 썩은 기운을 받아 생겨났다면 앞에서 말한 내경의 가르침으로 볼 때 신과 매우 친밀하고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골암에 썼을 때 그렇게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이다. 나중에 료노에게 누가 이런 방법을 가르쳐 주던가요?하고 물어보았다. 이 방법은 전수받지도 않았고, 이론적인 근거도 없어서 료노도 그 이유는 말해 줄 수 없었다. 그는 골암이 괴이한 병이고 앞의 그 물질도 일반적인 것이 아니기에 이상한 물질로 이상한 병을 치료해보자고 생각하여 써보았던 것으로 이런 신기한 효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내가 앞에서 말한 내경의 글을 펼쳐 보여주자 그는 그제야 그 이론적 근거가 원래 내경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앞의 이 두 가지 사례가 비록 비교적 특수하기는 하지만 모두 내경의 가르침에 그 근거가 있다. 이 과정이 비록 사정이 발생한 뒤 그 결과에서 유추하여 피동적인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피동적 과정이 우리들에게 경전의 풍부한 내용과 잠재력을 느끼도록 하고, 우리가 경전의 한 마디라도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만약 우리가 경전을 이렇게 믿게 되면 그 뒤에 피동이 능동으로 바뀌어 경전을 이용하여 능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많은 문제 들이 칼로 자른 듯 풀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경 속에서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반드시 찾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외에도 한 가지 연관된 사정을 하나 더 이야기하겠다. 몇 년 전 두 권의 책이 사람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는데, 하나는 미국사람이 쓴 ‘학습혁명The Learning Revolution’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의학자 하루야마 시게오春山茂雄 박사가 쓴 ‘뇌내혁명腦內革命’으로 특히 후자는 세계적인 뇌 연구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뇌내혁명’ 은 어떻게 하면 대뇌의 효율을 높여 뇌세포의 거대한 잠재력을 깨울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런 초점은 또 어떻게 대뇌의 α파를 끌어내느냐와 endorphin의 분비를 왕성하게 하느냐에 집중된다. 엔돌핀의 분비가 늘어나면 대뇌가 더욱 자주 α파 상태에 들게 되는 둘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에 주목하여 하루야마박사는 운동방면과 음식방면, 심신조절 방면에서 효과있는 방법을 숱하게 가다듬어 내 놓았다. 하루야마박사는 연구에서 음식방면에서 있어서는 일본에서 상식하는 식품 중에 일본인이 매우 좋아하는 식품 하나를 엔돌핀의 분비를 가장 많이 촉진한다고 꼽고 있다. 이 식품은 낫도라는 것으로 중국의 청국장과 비슷하여, 콩을 발효시켜 만든 것인데 일본인의 매일 아침 식탁에 꼭 오르는 식품이다. 이 식품이 왜 대뇌기능에 이렇게 독특하게 작용하는 것일까? 경전을 펼치면 바로 알 수 있는데 이 답안 역시 내경 속에 있다.
한의학 개론을 배웠던 사람들은 ‘신은 뼈를 맡아보고 골수를 만들고, 골수는 뇌와 이어진다.-신주골생수, 수통우뇌腎主骨生髓, 髓通于腦’라고 하여 모두들 신경계통에 속하는 뇌는 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뇌의 기능을 좋아지게 하려며 한의학적인 사고로 보자면 신의 기능을 좋게 해야 하는 것이 하나의 기본적인 방향과 원칙이다. 이렇게 방향을 확실히 정한 뒤에는 목적을 달성하기가 쉬워진다. 다시 앞에서 말한 소문. 금궤진언론의 그 이야기- 신의 곡식은 콩이며, 그 냄새는 썩은 냄새이다.-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신의 곡식이 콩이라는 것은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모두들 콩알을 보기만 하면 분명히 알 수 있을 텐데 콩의 겉모양과 신은 똑 같으면서 다만 크기가 다를 뿐이지 않는가? 그래서 콩과 신은 보통이 아닌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여기에 더하여 이 콩을 발효시키면 둘 사이의 관계는 더욱 깊어진다. 왜 그럴까? 발효란 사실 썩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발효된 뒤의 콩은 그래서 신에 더욱 강하게 작용하며 이런 강한 작용이 뇌에도 더욱 세게 작용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경전의 각도에서 하루야마 박사의 연구를 해석하여 증명한 것이다.
우리들은 앞의 이 짧은 몇 마디의 경전 문구로 세 가지의 사례를 설명할 수 있었다. 당연히 죽 이어서 다른 사례를 들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경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맞닥뜨린 사례가 아무리 복잡하고 그 변화가 어지러워도 경전을 벗어날 수가 없으니 이것은 ‘모든 변화가 경전을 벗어나지 못한다-만병불리기경萬變不離其經’ 는 것을 말해 준다.
(3) 경전을 읽으면 지혜가 열린다.
ㄷㄷㅉㅉ경전의 의의를 이야기하면서 나는 경전이 지식문제에 지나지 않고 지혜와의 관게가 더욱 밀접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경전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약간의 지식을 늘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경전의 의의는 별로 대단하지 않다. 지식이 많아진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가 생기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학문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경전을 읽으면 오히려 확실하게 지혜와 학문을 끌어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늘 학문은 경전을 읽으면서 시작된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현대의 뇌과학 연구에서 사람의 좌뇌는 논리 뇌로 언어문자, 논리적 사고를 맡아보아 사람은 좌뇌를 아주 많이 사용하는데 반하여 우뇌는 직관 뇌로 대부분의 시간에 놀고 있다고 본다. 물론 과학은 논리를 중시한다. 요즈음의 뇌과학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점점 눈을 우뇌라는 미개발지에 눈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앞에 든 하루야마의 "뇌내혁명"도 비교적 이 점에 대해 많이 기술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비교적 대뇌에서 α파가 많이 나타날 때는 우뇌가 깨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란 것이다.
나는 상술한 좌뇌, 우뇌에 대해서 또 다른 개념으로 묘사하고 정의하기를 좋아한다. 우리가 말하는 논리 뇌인 좌뇌를 현대 뇌로, 직관 뇌인 우뇌는 전통 뇌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좌, 우뇌의 관계가 실제로는 현대와 전통의 관계라고 본다.
현대 뇌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현대 뇌는 개인 경험의 뇌로 현세뇌라고도 할 수 있는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받아들인 일체의 정보가 저장되는 곳을 말한다. 만약 정보의 관점으로 이 좌뇌를 보면 그 정보량이 얼마나 될까? 바로 이 일생의 경력과 관계가 있다. 살아온 시간은 그 사람의 수명에 따라 달라지고, 겪었던 사정들은 그 사람의 체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국 그와 연관된 정보는 몇 십 년에서 많아야 백년 남짓하다. 이것이 좌뇌의 대체적인 정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 뇌는? 전통뇌의 정보는 엄청나게 많아 인류의 역사에서 겪어온 모든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모두가 우뇌의 발생과 연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뇌에 쌓여있는, 아니면 우뇌의 발생과 연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런 정보, 이런 경험들은 몇 십 년, 백년 정도가 아니다. 이런 정보와 관련된 세월은 몇 백 년, 몇 천 년, 몇 만 년, 심지어는 수 십 억 년 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보, 이런 경험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 문명의 총화일 수 있다. (이는 Richard Dawkins가 말한 meme와 비슷하다.) 티벳 불교의 관점으로 말한다면 이 우뇌를 복장뇌(伏藏腦)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복장뇌라 부르는가? 복은 감춰져 있다는 말이고, 장은 쌓인 보물이란 말로 인류가 이루어져 이제까지 살아온 모든 문명보장이 이 우뇌 속에 담겨있다는 말이 된다. 의식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가 겪었던 모든 의식보장이 우뇌에 갈무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뇌와 좌뇌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너무 커서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안타까운 것은 거의 모든 요즘 사람들이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대뇌만 알 뿐 전통뇌를 모르고 따라서 그것을 개발할 방법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우뇌를 인식하고 나아가서 우뇌를 개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이것은 참으로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서는 것으로 이런 기초위에서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과 개인의 매우 한정된 몇 십 년 경험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이 얼마만한 차이를 보이겠는가? 좌, 우뇌를 인식하고 연구한다는 것의 의의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얕보거나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는 절대로 헛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뇌내혁명의 연구로 이미 이 방면에서 희망의 싹을 보았다. 그리고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만한 것은 러시아 생물학자 알렉산더 카멘스키의 최근에 도달한 결론으로, 사람의 기억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신경기억 이외에도 유전기억과 면역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유전기억은 “자연계의 예비기금reserve funds”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앞에서 말했던 복장뇌와 매우 비슷한 의미가 있다.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대뇌의 구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좌뇌와 우뇌사이에는 뇌량Corpus Callosum이라고 하는 이 둘을 연결하는 구조가 있다. 뇌량은 좌뇌와 우뇌가 연결되어야 하며, 우뇌의 정보가 적당한 방법을 거쳐 옮겨지고 사용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전통과 현대의 결합은 필연적이며 그 바탕에는 생리적 구조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이 글에 ‘경전을 읽으면 지혜가 열린다’ 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경전을 읽으면 왜 지혜를 깨칠 수 있다고 했을까? 사실 그 의미는 앞에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다 드러나 있다. 경전을 효과있게 읽고 연구하면 우리의 복장(伏藏)을 캐내어 먼저 이야기한 복장뇌를 열어젖히는 것을 도울 수 있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인류문명의 공통된 보장이 끊임없이 개인에게 흘러들게 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만일 실현된다면 어떻게 지혜가 열리지 않고 학문이 없을 수 있겠는가? 모두들 이런 높이에서 경전을 인식한다면 경전의 의의가 드러나고 경전의 쉬게 익힐 수 있어질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예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큰 도리가 아닐는지!
당연히 현재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말한 우리의 관점에 찬동하지 않고 비웃기까지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통이란 말만 들어도 현대와 대립시키기를 좋아하고, 전통적인 것들이란 모두 현대적인 것들을 가로막는 것이므로 갖다 버려야만 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인식들은 전통을 진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통의 문 밖에서 전통을 이야기하고, 쳐다보기만 하고도 겁을 내는 이런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대만 대중사대(臺中師大)의 왕재귀(王財貴)교수는 “전통을 보따리 쯤으로 보는 사람들은 겁쟁이거나 집안 살림을 거덜 내는 건달이다! ”라고 아주 적절한 말을 했다. 바라건대 여러분들은 겁쟁이나 방탕아가 되지 않도록 힘쓰시라. 전통이 어떻게 빈 보따리이겠는가? 그것은 자산이다! 적당히 이를 투자하면 여러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키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