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중의思考中醫

한의학의 학습과 연구-7

臥嘗 齋 2025. 1. 28. 10:15

2.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
아래에서는 내용 구조의 관점에서 위의 문제들을 계속 살펴보려고 한다. 현대 문화는 세계를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두 가지 범주로 명확하게 나누고 있다. 현대 과학에서 연구하는 범위는 주로 물질세계에 한정되어 있고 정신세계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유물주의는 물질세계를 제일성第一性으로 두고 정신세계를 제이성第二性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물질세계는 또 어떤 범주의 것에 소속되어 있는가? 이 한 점은 우리가 잠시 그대로 두고 먼저 옛사람들은 이 세계를 어떻게 나누었는지를 살펴보자. 고대에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구별이 있어 “형이상자위지도形而上者謂之道, 형이하자위지기形而下者謂之器”라 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세계는 형이상과 형이하로 구분되었는데, 그 하나가 도이었으며, 다른하나는 기였던 것이다.
무엇이 기인가? 기器는 바로 형질形質이 있고, 구조가 있는 것이므로 형이하로 불린다. 현대과학이 연구하는 물질세계가 바로 이 형이하의 기세계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현대과학이 탐구하는 범위가 이렇게 형이하의 범주라면 그러면 형이상은 무엇인가? 형의 위에 것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형체가 없는 것이다. 이런 형체가 없는 형이상의 것은 도라고 불려진다. 도세계의 것이 정신세계인가? 이 문제는 아직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이 둘의 사이에는 범주상으로 서로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이런 구별은 그 관건이 형形에 있다. 소문素問에 이 형이란 것에 대해 구체적인 묘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합이유형氣合而有形-기가 합하여 형체를 이룬다-인데, 어떤 사람은 이를 기취이유형氣聚而有形이라 하기도 한다. 형은 어떻게 구성되었다고 하고 있나? 기가 모여서, 기가 합하여서 형을 이루었다고 한다. 곧 기가 합해진 뒤 형질이 있으므로, 이것이 바로 형이하의 것, 기세계의 것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가 아직 취합聚合되기 전에는 어떤 상태일까? 이것이 형체가 없는 형이상의 상태일 것은 틀림없다. 이런 나눔으로 보면 현대과학이 토론하는 영역은 실제로 기가 취합된 이후의 영역이다. 물리학은 물질의 구조, 조합을 연구한다. 그래서 기본입자라는 개념이 있는 것이다. 물질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분자로 구성되고, 분자는 원자로 구성되며, 원자는 또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된다. 그 뒤로 양성자Proton, 중성자Neutron, 중간자Meson가 있는데 중간자의 뒤는 또 무엇인가? 쿼크Quark이다! 쿼크는 현대과학이 현재 발견한 가장 미세한 구조이지만 이것이 아무리 미세하다고 해도 형이하의 범주에 속하는 것에 틀림없다.
쿼크라는 이름은 매우 유머러스하게 지어져 과학자들이 물질의 최종 구조를 찾는 심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쿼크는 원래 서양 신화 속의 신비한 새로 쿼크, 쿼크하고 운다고 한다. 이 새는 거의 울지 않지만,한 번 울게 되면 태양이 서쪽으로 떨어져 세상이 암흑으로 변해 아무 것도 볼 수 없어진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이제까지 발견된 가장 미세한 물질에 쿼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찾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으로도 보이는데 더 이상 찾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고 캄캄해져서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이 점에서 모두들 이런 방식으로 물질의 최종 구조를 찾는다면 언제 이 구조를 발견하게 될 것인지 상상해 보자. 앞으로 언제가 될지 요원하다! 이렇게 언제가 될지 몰라 희망을 갖기 어려운 문제에 옛사람은 머무르지 않고 다만 “부유형자생우무형夫有形者生于無形-형이 있는 것은 형이 없는 것에서 생긴다.”라고 하면서 이런 형의 끝, 가장 형이하의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자는 “천하만물생우유, 유생우무天下萬物生于有, 有生于無”라고 이야기하였다.
앞에서 우리는 현대과학의 연구 영역이 대개 “형이하”의 범주에 속하며 이것이 바로 “유”의 범위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한의학은어떤 범위에 속하나? 한의학에 형이상의 성분도 있고, 형이하의 성분도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의학은 도와 기가 하나로 합친 학문이다. 노자건 내경이건 모두 형신합일, 형기합일을 강조하면서 형과 신이 같이해야 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의학이 탐구하는 것은 쿼크 이전의 것도 있고, 쿼크 이후의 것도 있는 것이다.
한의학이 도기道器가 하나로 합친 학문임을 증명하는 예는 수 없이 많다. 오장을 두고 말하자면 오장의 심, 간, 비, 폐, 신 중에 매우 중대한 구별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간肝, 신腎, 비脾, 폐肺에는 모두 육달 월月 방이 있지만 심心에는 이런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월月이라는 이 부수는 설문 说文에서 “육肉”부에 넣고 있는데 “육肉”은 당연히 형질形質이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간, 신, 비, 폐가 형이하의 범주에 속하며 하나의 형기 形器 구조에 속한다고 아주 명확하게 위치를 정하고 있다. 그런데 심은 어떠한가? 심은 이들과 다르게 육달 월이라는 구조가 붙어 있지 않은데, 이는 “형기形器”라는 징표를 붙이지 않은 것이므로 형이상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처럼  한의학에서는 오장의 위치비정을 간단하게 가볍고 느슨하게 한 것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전체 한의학에 대한 정위定位이며, 전체 전통문화에 대한 정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정위는 우리가 오행에 연계하여 인식할 수 있다. 금金、목木、수水、토土는 모두 형과 질이 있는 것으로 이런 것들은 모두 무게가 있어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쳐지게 된다. 그러나 화火는 어떠한가? 오직 이 화만이 우리가 형질로 묘사하기 어렵고, 오직 이 화만이 그냥 두면 위로 올라가는데 무게가 없거나, 만유인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본  것일까? 이것이 바로 이른바 형이상이며, 이것이 바로 도道이다.
한의학에서 간, 신, 비, 폐 만 알면 될까? 당연히 안된다! 심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 한의학은 형이하도 다루며, 형이상도 다루는 학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어느 것이 더 가볍고 어느 것이 더 귀중한 것인지 나눌 수 있을까? 이 답안도 매우 분명하다. 소문 영란비전론素問 靈蘭秘典論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 그곳에서 “심자군주지관, 신명출언 心者君主之官,神明出焉”이라고 하였다. “군주君主”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영란비전론의 다른 구절들을 인용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범차십이관자 부득상실야 .凡此十二官者,不得相失也.고주명즉하안, 이차양생즉수, 몰세불태, 이위천하즉대창故主明则下安,以此养生则寿,殁世不殆,以为天下则大昌. 주불명즉십이관위, 사도폐색이불통, 형내대상. 이치양생즉앙, 이위천하자, 기종대위, 계지계지! 主不明则十二官危,使道闭塞而不通,形乃大伤,以此养生则殃,以为天下者,其宗大危,戒之戒之!”-이 열 두개의 기관들은 서로 잘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주인이 밝으면 아랫사람이 안전하니 이렇게 삶을꾸리면 오래 살 수 있고 죽을 때까지 건강하며, 이렇게 천하를 다스리면 크게 번창한다.주인이 밝지 못하면 열 두 기관이 위태롭고 신하의 도리가 막혀 통하지 않게 됨으로써 형체가 크게 손상된다.이런 방법으로 삶을 꾸리면 재앙이 생기고, 이렇게 천하를 다스리면 그 왕조가 크게 위태로울 것이니 꺼리고 꺼려야 한다. – 이 오장의 관계로 부터, 이 열 두 기관의 관계로 부터 우리는 전통문화, 전통한의가 비록 도기합일道器合一의 통일체이지만, 형形과 기气가 서로 의지하고 형形과 신神이 합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중점을 도의 측면, 신의 측면, 기의 측면에 두고 있어 한의학은 도道로 기器를 부리고, 신神이 형形을 부리고, 형이상形而上이 형이하形而下를 다스리는 학문인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느냐는 문제를 의사의 등급을 나눈 실제의 예로 설명하겠다. 내경内经에서는 의사의 등급을 상공上工과 하공下工으로 나누고 있다. 상공은 매우 뛰어난 의사를 일컫는 말일 것인데, 그렇다면 하공은 어떤 의사일까? 당연히 매우 보통이며 일반적인 의사일 수 밖에 없다. 상공과 하공을 좀 더 내재적인 요소로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영추靈樞에서“상공수신上工守神,하공수형下工守形”이라고 아주 구체적인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신은 무엇인가? 신은 형체가 없는 것으로 도의 범주, 형이상의 범주에 속하는데 상공이 지키는 것이 이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런 범주의 것들을 지켜낼 수 있고, 이런 측면에서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으면 상공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이미 형성된 것들을 지켜내고, 형이하의 측면에서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한다면 하공 밖에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문 사기조신대론 素問 四氣調神大論에서 “시고성인불치이병 치미병, 불치이란 치미란, 차지위야 是故聖人不治已病治未病,不治已亂治未亂,此之謂也。부병이성이후약지, 난이성이후치지, 비유갈이천정, 투이주추, 불역만호! 夫病已成而后药之,亂已成而后治之,譬猶渴而穿井,鬪而鑄锥,不亦晚乎!”-이런 까닭에 성인은 이미 병이 든 뒤에 치료하지 않고 병이 들기 전에 치료하며, 이미 세상이 어지러워 진 뒤에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어지러워 지기 전에 미리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다스린다는 말이 바로 이를 가리킨 것이다. 병이 든 뒤에 약을 쓰거나, 세상이 어지러워 진 뒤 다스리려 하는 것은 목이 마른 뒤 우물을 파는 것이나, 전쟁이 벌어진 뒤 무기를 만드는 것과 같으니 어찌 늦은 것이 아니랴!-라고 하였다. 수신守神은 바로 미병未病을 치료하는 것인데, 미병은 아직 형체를 이루지 않은 병으로 병이 아직 형체를 이루지 않았을 때 알아내어 없애면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형체를 이루기를 기다렸다가 심지어 그것이 뿌리를 내려 뽑아 낼 수 없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없애려면 쉽지 않아 힘만 들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은 당연하다.

어떤 질병이라도 모두 미병에서 이병已病으로 발전하며, 형체가 없다가 형체가 생기게 된다. 양의洋醫식으로 말하자면 어떤 기질성 병변이라도 모두 비기질성 단계에서 발전해 온 것이다. 비기질성 단계에서 치료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일단 기질성 들어가면 치료는 상당히 어려워진다. 이래서 의사는 병을 잘 치료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병을 잘 알아내는 것이다. 질병의 미병단계에서 아직 형체를 갖추기 전 인 단계에서 그것을 발견하여 발전하는 것을 막아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 편작이 제 나라 임금의 얼굴색을 보고 병을 알아낸 것처럼 병이 아직 피부에 있을 때 발견하여 피부를 치료하면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장중경은 시중대부 벼슬을 하는 왕중선을 진찰하면서 20년 후에 일어날 병을 진단해 내어 그에 마땅한 치료조치를 이야기하였다. 이것이 바로 조그만 단서에서 앞으로 들어날 큰일을 짐작하는 견미지저见微知著의 공부이며, 작을 때 막아 차츰 크게 번지지 않도록 하는 방미두점防微杜渐의 공부이다. 말기 암일 때가 되버린 뒤에 발견 한다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바로 지금 현대의학의 진단기술은 총체적으로 볼 때 아직은 이병已病을 진단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이런 진단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이미 형체를 이룬 병을 진단할 수 있을 뿐이므로 미병 곧 아직 형체를 이루지 않은 단계의 병에 대해서는 현대의 진단으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다만 유전자 진단단계에 다다라 갓난 아이를 검사하거나 심지어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하여 장래의 질병을 발견하는 이런 단계에 도달하면 미병未病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현대의학은 전체적으로 볼 때 전통 한의학 쪽으로 향해 발전해 가고 있다.

현재 대다수 사람들이 한의학을 이병已病의 수준으로 , 형이하의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런 수준에서만 한의학을 인식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당연히 한의학이 양의학보다 어떤 면에서고 간에 못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게 된다. 내가 늘 드는 비유가 있다. 만일 어떤 심근경색 환자가 심근경색이 발생했다면 어느 병원으로 보내겠는가? 한방병원인가, 양방병원인가? 내가 볼 때 100명이면 100명 다 양방병원으로 보낼 것이다. 장중경이 지금 살아있다 할지라도 그 역시 양방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보내라고 하지, 한의대 부속병원으로 보내라고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서양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어깨를 펴고 고개를 꼿꼿이 지켜들며,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확실히 한의학은 엉터리야! 내가 줄을 잘 못 섰어.’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것으로 둘 사이를 비교한다면 한의학은 확실히 별 게 아니어서 선선히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번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내가 어떤 환자의 관상동맥질환을 치료하고 있다고 하자. 만약 이 환자가 심근경색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치료하였거나, 더 나아가 미리 이 환자에게 관상동맥질환이 발생하지 않게 만들었다면, 이 질환이 발생한 뒤에 치료하는 것과 비교할 때  어떠할까? 국가, 사회, 가정과 환자 개인에게 어느 것이 더 이로울까? 100명 중에 100명이 다 미리 치료한 것이 더 낫다고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런 관점으로 비교한다면 우리는 한의학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한의학은 미병을 치료하려 하므로 장중경은 금궤요략의 “상공불치이병 치미병上工不治已病治未病”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이 의학의 출발점은, 그 종지宗旨는 미병을 치료하는 것이고, 목마르기 전에 우물을 파는 것이며, 싸우기 전에 무기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허다한 한의사들이 이병已病의 편에 줄을 서서 양의학과 경쟁하려고 하면서 심지어 한의응급의학 같은 분야를 파고 드는데 이는 제 주제를 몰라 내 단점으로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치는 것이다. 이는 목이 마른 뒤에 우물을 파고, 싸움이 시작된 뒤 무기를 만드는 셈이다. 어떻게 현대의 속도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위의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한의학은 이런 학문이어서 그 전체가 형이상에 치우친 면이 있다. 그래서 형이상의 관점에서 형이하를 다루며 치미병治未病의 관점을 주로 하여 치이병治已病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는 현재 도리어 한의학을 완전히 형이하의 수준으로 보아서 오롯이 형이하의 학문, 치이병의 학문일 뿐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는 과학 연구를, 현대화를 부르짖으며 현대적인 한의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완전히 현대과학이란 형이하의 체로 한의학을 걸러내는데,  걸러진 것이 바로 “essence”이므로 계승해야 할 것이고, 걸러낸 것은 “찌꺼기”이므로 버려져야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함께 이 체를 통과하지 못한 부분이 한의학의 어떤 부분인가를 생각해 보자! 바로 형이상의 그 부분인 것이다. 위에 이야기한 부분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원래 우리가 채택한 현대 한의 교육방식이, 우리가 골랐던 현대 한의학 교육방향이 단지 하공을 배양해 내는 길이었을 뿐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나의 관점이 너무나 치우쳤다고 이에 동의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현대적 방식으로 배출해 낸 학생들이 왜 한의학을 확실히 믿지 않느냐는 것을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왜 임상의사들이 조그만 곤란에 부딪혀도 한의학 속에서 그것을 처리할 방법을 찾지 않고 양약을 황급히 찾게 될까?  한 두 가지 약제를 처방하고 침을 놓고 뜸을 뜨는 것만이 한의학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처방이 아니라 수 많은 처리방법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원인을 지금이란 시대가 만들어 낸 객관적인 요인이란 인식을 제외한다면, 지금 한의학이 처한 이런 현상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나는 그 원인이 두 개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전통의 계승하기 위한 교육에서  생긴 문제이고, 하나는 한의학 스스로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룬 의학자들을 살펴보는 것 만으로도 그 문제가 한의학 스스로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전통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게 한 교육에서 문제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시대 조류에 발 맞추어 한의학에서 응급의학을 연구하는 것도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