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학습과 연구-2
2-이론과 임상
(2) 한의학 이론은 임상보다 뒤떨어졌는가?
최근 10년 사이에 한의학계에서 숱하게 제기되었던 문제는 바로 ‘한의학은 이론이 임상보다 뒤처져 있는가?’ 라는 것이다. 어떤 과학이던지 이론이 앞서고 실제 운용은 천천히 따라가게 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몇 십 년 사이에 한의학은 마주하고 있는 이 어려운 국면을 왜 돌파해 낼 수가 없었을까? 임상치료효과는 왜 그냥 그대로일까? 고열이 내리지 않으면 최후에 항생제를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까? 한의학 이론은 이미 2천여 년 전에 형성되었고 이 기간 동안 획기적인 진보나 변화는 없었기 때문에 이론이 뒤처지게 되었고, 그래서 임상에서 더 많이, 더 효과있게 지도하도록 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한의학은 이론이 임상보다 낙후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의문들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모두들 오늘날 우리들의 뒤처진 임상과 낮은 질병 치료수준은 뒤떨어진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과 정반대로 한의학이론은 뒤처진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크게 앞서 있다. 이것은 다른 전통학문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근대의 저명한 학자인 량수명梁漱溟선생은 유교문화, 도교문화, 불교문화 같은 동양의 전통문화가 모두 한참 앞서 무르익은 인류문화라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한의학의 상황도 대체로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앞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앞선 정도의 차이가 너무 커서 현대의 관점으로 볼 때에도 뒤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아직도 앞서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의학이라는 체계 속에서 이론이 임상보다 뒤처진다는 문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셈이다. 여러분들이 만약 이론이 임상보다 뒤처져 있다고 본다면, 그래서 이론이 어떤 부분에서 임상을 지도하지 못한다고 본다면 묻겠다. 당신은 정말 한의학이론을 잘 익히고 있는가? 내경의 이론을 당신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가? 100% 다 파악하고 있는가? 아니라면 20~30%는? 만일 20~30%에도 못 미치고, 심하게는 평생을 한의학으로 생활했는데도 음양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이론이 임상보다 뒤쳐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요즘 사람들은 한의학 이론을 너무 간단하고 소박하게 여긴다. 너무 소박하여 깊은 산골의 농사꾼같기도 하다. 사실 소박하다고 뭐가 나쁜가? 소박한 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경지인 것을! 반박귀진(返璞歸眞)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만일 당신이 한의학 이론을 참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지 혹은 많아야 비슷한 인식만 갖고 있다면 어떻게 한의학이론이 앞서있는지 뒤떨어진 것인지 말할 수 있겠는가?
위에서 말한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만약 이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면 오늘날 한의학이 당면하고 있는 이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우리들이 지금 보고 있는 비교적 낙후한 임상수준은 어떤 원인으로 비롯되었나? 만일 그 원인을 이론의 낙후로 잘 못 보아 이론방면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하면 그 때는 정말로 시대의 흐름에서 물러나 앉아 뒤처질 수 밖에 없다!
본과 졸업 후에 내가 부속병원에서 임상을 하고 있을 때가 생각난다. 한 번은 60세 된 여성 폐렴환자를 맡게 되었다. 입원할 때 체온은 39.5°C, WBC는 2만에 육박했는데, 그 중에 중성백혈구neutrophilic granulocyte 가 98%였고, 오른 쪽 폐에서 커다란 음영이 보였다. 양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중증의 폐렴환자인 것이다. 노인이 중증 폐렴일 때는 위험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한의학의 치료효과를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한의학적 치료를 선택하였다.( 저자는 한방과 양방을 다 배운 분인 모양입니다 .–역자 ) 변증을 해보니 肺熱이어서 청열清熱하는 처방을 투여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약을 복용한 지 얼마 안되어 설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약 먹은 지 2시간 만에 설사를 하더니 나중에는 약을 먹고 10여분 뒤에 바로 설사를 했다. 설사한 것을 보니 거의 약물이었고 입원한지 사흘이 되어도 체온이 전혀 떨어지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다른 증상도 하나도 좋아지지 않았다. 병원규정으로는 다음날까지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양약을 쓰게 되어 있었다. 이 때의 나는 마음이 환자보다 더 급해져서 스승님께 가르침 받기 위하여 달려갔다. 스승님께서 사정을 다 들으시고 이는 ‘태음양명표본동병(太陰陽明標本同病)으로 양명은 열하고 태음은 한한 것인데, 양명의 열은 내려야 하므로 찬 약을 써야 하지만 태음이 이를 받아주지 못하여 설사하게 되는 것’이라 하셨다. 그래서 태음과 양명을 나누어 치료해야 서로 간섭하지 않게 되므로 내복약은 전처럼 그대로 쓰되, 여기에 다시 이중탕理中湯 재료에 사인砂仁을 더하고 이를 빻아 술로 버무린 뒤 데워서 배꼽에 붙이므로써 태음을 따뜻하게 하도록 하라고 하셨다. 나는 바로 말씀대로 약을 만들어 그 날 저녁 9시경에 배꼽에 붙이도록 하고 약 1시간쯤 지난 뒤 전에 썼던 그 약을 먹였는데 설사가 다시 나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회진할 때 보니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하룻밤 사이에 다른 증상들도 부쩍 좋아져 있었다. 이 병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알의 양약도 쓰지 않았는데 일주일 만에 폐렴이 모두 흡수되어 퇴원하게 되었다.
이 증례의 환자가 내게 미친 영향은 너무 깊어 내가 십여 년이 넘게 임상을 하는 동안 효과가 바라던 대로 나타나지 않을 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꿈에라도 이것이 한의학 자체의 문제 라던지 이론의 문제라고 의심한 적은 없었다. 이 사례에 비추어 본다면 이론이 임상보다 낙후되었는지 아닌지는 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보인다. 이것만 해결되면 우리는 마음 턱 놓고 대담하게 이론을 믿고 실행할 수 있으며, 환자를 치료하면서 어려운 고비가 닥치더라도 스스로의 깨달음이 모자란 것이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여 이론을 탓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문제가 정말 이론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확실히 이론이 뒤떨어진 것이라면 이 이론을 죽자고 붇잡고 있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내가 보고 겪은 대다수의 상황에서는 문제가 이론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인식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