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상한론의 성서배경과 유전-5
매우 유감인 것은 일본이나 중국대륙이나 대만의 고궁박물관에 -작년 재작년 두 번을 대만에 갔을 때 특별히 고궁박물관 측에 송판 상한론이 있는지 물어 보았더니 두 번 다 없다고 하더군요.- 모두 송판 상한론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송 대에 송판 상한론이란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까요? 이는 명明 대의 조개미趙開美란 분의 덕택입니다. 송 대에 국가교정의서국에서 상한론을 교감각인校勘刻印한 시기는 송 치평治平 2년 즉 1065년으로 약 천 년 전입니다. 천 년인데 이 책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판본사板本史에서는 이 책을 무엇이라 부를까요? 그것을 송판 즉 송판상한론 이라 부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치평본 상한론 이라 하기도 합니다. 송판 이래도 좋고 치평본이래도 좋지만 찾을 수 없어요.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명 대의 조개미가 만력萬曆27년 즉 1599년(에 펴낸 판본입니다. 1065년에서 1599년 까지 약 500년의 역사가 흘렀죠. 조개미의 시대에 이르러 이미 이 송판상한론은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각가書刻家이자 의학가이며 출판상出版商이기도 했던 조개미가 펴낸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가장 먼저 서각한 책은 무엇일까요? 그건 《주해상한론注解傷寒論》 입니다. 주해상한론은 먼저 말했던 성무기成无己가 상한론을 기초로 주해를 붙여 주해상한론이라 한 것입니다. 그 뒤 또 송영공宋英公이 상한론을 연구하던 과정 중에 상한론을 증후에 따라 분류하여 사람들이 배우기 쉽도록 쓴 《상한류증傷寒類證》을 서각해 냅니다. 그리고 또 금궤 요략《金匱要略》을 서각합니다. 이 세 책을 서각하고 난 다음에 한 친구가 그에게 책 한 권을 들고 와 보여주면서 “조선생! 이게 뭔지 좀 봐 주세요.” 하여 보았더니 바로 송판 상한론이었습니다. 내가 금방 말했죠. 송나라 황제가 상한론을 대자로 펴낸 뒤 백성들이 사볼 수 있게 다시 소자로 대량으로 각인발행刻印發行 했다고 했죠? 그는 소자본 상한론을 본 것입니다. 어쨌던 이는 송판상한론인데 이 상한론을 보자마자 그는 성무기의 주해가 송판상한론의 원래 모습이 아니고 어떤 내용은 빼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성무기의 주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이죠. 그래서 그는 다시 송판 상한론을 서각하고 번각송판상한론《翻刻宋版傷寒論》 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 네 부의 서각을 끝낸 뒤 그의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제가 장중경의 네 부 저서를 다 서각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이 책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뭐라고 할까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중경전서仲景全書라고 하게” 하셔서 “좋군요!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그 이름이 아주 좋습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보는 것은 조개미가 만력 27년-1599년 각인한 중경전서 중 번각송판상한론 입니다.
그렇지만 그 시대에는 사진기술도 없고, 또 복사기술도 없어 송판상한론을 그대로 베껴 새길 수 밖에 없어서 한 페이지에 몇 줄이 있는지 , 한 줄에 몇 자가 들어가는지 모두 모방하였고 심지어는 글자의 획이 어느 방향으로 쓰여져 있는지 까지도 송판을 모방하였습니다. 그래서 송판과 거의 꼭 같았습니다. 조개미가 새긴 중경전서의 저작중 하나인 번각송판상한론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송판상한론의 원래 모습을 대체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개미도 상한론의 유전 과정 중 공적이 매우 뚜렷한 의가입니다.
조개미가 서각한 중경전서 중에 오늘날까지 세상에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 책은 몇 부나 될까요? 다섯 부뿐입니다. 북경 도서관에도 한 부가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못보게 했습니다. 좋은 판본이기에 이미 밀봉보존하고 있어 필름으로 만들어진 것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의연구원中醫硏究 院 도서관에 있는 한 부는 우리 대학의 소개 편지를 보인 뒤에야 볼 수 있었는데,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보게 했고 만년필은 잉크 방울이 떨어질까 봐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내가 그 책을 본 지가 벌써 십 년이 되었군요. 뒤에 범행준范行准선생이 댁에서 소장하고 있던 중경전서 한 부를 중의연구원도서관에 기증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소식을 듣고 두 번째로 중의연구원도서관에 가서 범행준선생이 기증한 그 책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꺼내 비교해 보니 범행준선생이 기증한 책과 원래 소장하고 있던 책이 같은 판본이어서 중의연구원은 두 부를 소장하게 된 셈입니다. 다른 한 부는 심양瀋陽에 있고 또 다른 한 부는 남방의 광주廣州 어디엔가 있다고 합니다. 이 심양과 광주에 있다는 책들은 내가 보지 못하였고 다만 북경의 세 부만 보았습니다. 북경의 세 부는 모두 같은 판본입니다. 내가 오늘은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못했지만 내일은 북경도서관의 그 필름을 카피한 뒤, 이게 음화라 마이크로필름판독기로 보도록 되어 있지만, 내가 확대해서 다시 영인기로 출력한 것을 가져다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영인물을 보시면 조개미가 서각한 중경전서의 상한 잡병론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송 대 국가교정의서국에서 지금까지 약 천년의 역사가 흘렀습니다. 우리나라는 1982년에 국무원이 고적정리古籍整理 영도소조를 만들어 방영方颖부총리를 영도소조領導小組 조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모든 방면의 고대 서적을 모두 정리하였는데 의서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상한론을 정리하는 임무는 우리 학교에 맡겨졌는데 그 때는 임응추任應秋선생이 살아 계셨고, 유도주劉渡舟선생도 살아 계셨는데 이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임응추 선생께서 병이 들어 곧 돌아가셔서 유도주 선생님께서 이 일을 주도하시게 되었고 당연히 나도 참가 했었습니다. 뒤에 전초진선생님도 들어오시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판본이 대해 계통적인 고증을 하였는데, 북경도서관의 책을 보고, 카피하고, 중의연구원도서관에서 이 책들을 보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상한론 정리연구라는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서 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조개미의 번각송판상한론을 기초로 한어 비교, 교정, 주석하여 1991년에 《상한론교주 傷寒論校注》를 출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