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백에 대한 중의학 연구 동향-4
Ⅳ. 고찰
1. 내경 이전의 혼백 관념
혼백의 개념은 오랜 역사의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어두웠던 시대의 사람들이 정신이 육체의 산물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육체 속에 깃들어 육체를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영혼을 상상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8,9). 혼백이 형체를 떠나 존재할 수 있는 정신활동으로 사람이 죽은 뒤에 형체가 없어져도 혼백은 남아있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형질은 없어져도 혼백은 남는데 이것이 사람이 궁극적으로 돌아가는 곳이라고 보았다9).
역사연구에서 ‘인류는 늦어도 석기시대 중기 혹은 이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이미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의식하고 사고하게 되었고, 아울러 잠과 꿈을 겪으면서 이로 인해 비현실적인 정신세계 곧 영혼의 세계를 상상해 내고 죽음이 잠과 같다고 생각하여 잠자며 꿈꿀 때 영혼이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면서 현실 생활 중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면 사람이 죽는 것은 오래 잠자는 것으로서 영혼이 육체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고 밝혀졌다9).
이런 영혼 관념은 원시인의 생각 속에 영혼 귀신으로 가득한 세계를 점점 형성시켜서 개개인만이 아닌 일반 인류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은상(殷商)시대에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으며 갑골문에 이미 혼백이라는 글자가 있어 귀신의 의미로 쓰였다. 그러다가 춘추전국에서 진한(秦漢)시기에 이르러 사회가 더욱 발전하여 진한시기에 이르러서는 귀신, 혼백을 구별하여 쓰게 되었는데 여씨춘추(呂氏春秋) 금색(禁塞)의 비신상혼(費神傷魂)을 고유(高誘)가 주를 달면서 ‘혼(魄)은 사람의 음정(陰精)이며, 혼(魂)은 사람의 양정(陽精)이다.’라 한 것으로 볼 때 음양으로 혼백을 구별하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에 혼백을 인체 기능 및 생명활동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생기기 시작하여 예기 교특생(禮記 郊特牲)에서는 혼기(魂氣)는 하늘로 올라가고 형혼(形魄)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하였으며, 주례춘관 대종백(周禮春官 大宗伯)의 가공언 소(賈公彦 疏)에서 ‘사람의 호흡으로 들고 나는 기가 혼(魂)이며, 눈과 귀를 밝게 하는 것이 백(魄)이다.’라고 하였다8,9). 좌전 자산(左傳 子産)에서는 ‘인생시화위혼(人生始化爲魄), 기생백(旣生魄), 양왈혼(陽曰魂)’이라 했는데 공영달(孔潁達)은 이를 주소(註疏)하면서 ‘처음 형체가 갖추어 질 때 형체의 영(靈)을 백(魄)이라 하고, 백(魄)이 생긴 뒤에 백(魄) 속에서 스스로 생긴 양기(陽氣)의 신(神)을 혼(魂)이라 한다. 혼(魂)과 백(魄)은 신령(神靈)의 이름으로 형기(形氣)를 따라 존재하므로 형기(形氣)가 다른 만큼 혼백(魂魄)도 다른 것이라고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체(形體)에 붙은 령은 백(魄)이 되고 기(氣)에 붙은 신(神)은 혼(魂)이 된다. 형체에 붙은 령이라는 것은 처음 났을 때의 이목심식(耳目心識), 수족운동(手足運動), 제호위성(啼呼爲聲)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백(魄)의 령이다. ‘기에 붙은 신이라는 것은 정신성식(精神性識)으로 점점 아는 것이 있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8,9).
이렇게 은상시기로부터 혼백이라는 명칭이 귀신이라는 의미로 쓰여 왔으며 춘추시기에 이르러서는 혼은 양정으로 보고 기에 붙은 신이라 하였고, 백은 음정으로 형에 붙은 령이라고 보아 혼백을 음양으로 나누어 보는 관점이 생기게 되었다8,9).